기무라 칸(1) 알현
[天人問] 당신은 일본인들이 어느 정도 정직하고 예의 바르다고 생각합니까?
[拏頭答] 흔히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일본인은 정직하고 예의 바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그러나 저는 ”일본 국민 중 대다수는 정직하지만 정치가나 식자층의 일부는 예의 바르다고 우러러보아 줄 수 없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물론 저의 이 견해는 1억 2천 7백만여 명<2009년>의 일본인들 중 겨우 20명 내외의 일본인과 만나보었던가 잠깐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 사람의 견해니까 표준적인 대답이 될 수는 없겠습니다만.
2007년 12월 10일, 東京의 ミネルヴア書房은 《高宗․閔妃》란 책을 발행했습니다. 2010년 10월 7일, 저는 이 책을 샀습니다. 그 동안 저를 아주 답덥f하고 슬프게 만든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입니다. 문제점을 자세하게 다 말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임으로 오늘은 아주 중요한 「알현」중심으로만 거론하려고 합니다.
남의 나라 역사를 쓰는데 약간의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고 보지만, 저는 年表의 ‘謁見’ 과 ‘死去’, 이 두 단어는 실수가 아니라 교만심에서 생긴 고의라고 봅니다. 때문에 저자 기무라 칸(木村 幹) 씨는 수정판을 출판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정기간행물을 통하여 공개 해명을 해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저자는 이 두 단어를 잘못 사용한 것으로써 高宗임금님에게만 침을 뱉는 것이 아니라, 생존중인 한국인 독자들에게까지도 침을 뱉은 셈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391~404쪽을 보면, [‘고종․민비 연보]’란 것이 있고, 여기에 ‘알현(謁見)’이란 단어가 열두 번 나옵니다. 이들 열두 개의 ‘謁見’ 중에서 제대로 쓰인 곳은 겨우 두 군데, 즉 1)과 3)번뿐입니다. 1)은 명치일왕이라서, 2)는 미국 대통령이라서 올바른(정중한) 표현을 한 것일까요?.나머지 열 개의 알현은 고종황제에 대한 저자의 오만방자한 자세를 표출한 것입니다. 생각 깊은 모든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이라 봅니다. 참으로 유감입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876.6.2 修信使 金綺秀, 明治天皇에 謁見. 2) 1882.8.20 高宗, 日本公使 花房과 謁見.<394>
3) 1887.1.17 朴定陽, 淸國公使館を経ず、直接、アメリカ大統領에 謁見. 4) 1894.6.27 高宗, 特命全權公使大鳥圭介을 謁見. 5) 1894.10.28 高宗, 特派全權大使井上馨을 謁見. 6) 1898.11.4 高宗․閔妃, 井上를 內謁見(다른 사람들 없는 공간에서 둘이만 만남). 7) 1898.11.3 高宗, ロシア公使과 謁見. 8) 1898.11.25 高宗, 駐朝臨時代理公使日置益과 謁見. 9) 1898.12.17 高宗, 駐韓全權公使加藤增雄과 謁見. 10) 1904.3.18 高宗, 伊藤울 謁見. 11) 1905.11.15 高宗, 伊藤을 謁見. 12) 1907.7.18 高宗, 伊藤을 謁見.
「알현」은 보통의 시민사회에서의 윗사람, 즉 ‘교장’이나 ‘사장’ 수준의 윗사람이 아니라, 옛날의 왕 아니면 황제를 외국 사신이 만날 때 주로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일반시민들 사이라면 그냥 "お目にかかる(뵈다)" 정도로 충분한 것이지요.
어순(語順)이 같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경우, 主語인 아랫사람 단어가 윗사람 단어보다 먼저 나오는 아래와 같은 構文=語順이어야 옳다고 봅니다.
즉「 아랫사람(が,は) → 윗사람(に,を) (알현하다) 」꼴.
《高宗․閔妃》에서 만남의 주체는 신분이 낮은 일본 외교관 쪽이고, 객체는 윗사람인 “고종임금” 혹은 “고종황제”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열 문장은 妄言, 放言 중 어느 하나가 될 뿐입니다. 이런 망발이 이 책 말고도 더 있는지 없는지 궁금합니다. 만일 이런 종류의 책들이 더 있다면 일본출판계는 이웃나라에 대한 기본예절 부족, 도덕심 박약을 부끄러워해야 마땅합니다. 연표의 1919.1.21일자 기록에는 “高宗 死去”라는 무례막심한 표현도 있는데, 이것도 너그럽게 보아 줄 수 없습니다.
“高宗死去”라니!
불쾌하기 그지없는, 아주 악의적 표현이라고 추정됩니다. 한중일 3국에서는 왕 또는 황제의 죽음을 평범한 臣民의 죽음과 구별하여 “崩御(붕어), 昇遐(승하), 登遐(등하)”라고 일컫습니다. 일본어에서의 ‘死去’란 단어는, 한국인이 일반인들의 죽음에 쓰는 ‘死亡’과 같은 수준의 단어입니다. 木村 씨의 눈에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이웃집 아저씨 정도의 존재인가요? ‘謁見’과 ‘死去’ 이 두 단어의 표기는 결코 실수도 아니고, 한자단어에 대한 무식이나 인식착오도 아니고 우연도 어니라고 단언하고 싶습니다.
死去가 경어가 아닌 일반적인 단어임은 분명합니다. 즉 死去란 말은 자기 나라 임금이든 남의 나라 임금이든 왕이나 황제에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입니다. 마땅히 逝去(せいきょ)나 崩御(ほうぎょ)를 썼어야만 高宗임금님의 신분에 어울리는, 즉 합리적인 언어표현이라고 봅니다. 薨去, 薨逝란 단어가 한일 양국 사전에 같이 나오지만 널리 통용되는 경어는 아니므로 고종에게는 ‘逝去’나. ‘崩御’라고 표현해야 알맞은 것이지요.
우리 한국인들이 日王을 주어로 하여 「아키히토일왕이 한국 총리를 알현하다」이런 식으로 모욕해도 당신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일 것입니까?
글을 쓰는 사람은 지식인에 속합니다. 전기문이든 논설이든 수필이든 이웃 나라의 최고 지도자의 호칭 앞뒤에 붙이는 단어에 대해서는 세심한 배려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성숙한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孟子 성현께서 하신 말씀 「禮之端은辭讓之心」에서의 辭讓은 자기 낮춤, 곧 겸양(謙讓)이 아닐까요?
2013 년 1 월 4 일자 조선일보 A34면의서 [海外时论]에 쓴 기무라 씨의 글 「'성난 젊은이‘들과 마주하게 된 한일의 새로운 정부」라는 글에는 이상한 문자가 단 한 글자도 없고 예의 바른 문장 한 줄기로 되어있어 좋았습니다.
//130104+150605(작년 3월 4일에 태어난 손자 桐兒가 자신의 발로 걸어서 304호집 현관을 당당하게 통과, 할매와 할배를 향해, 손을 쭉 뻗쳐 쳐들어 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