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 윤창중 선배
글 : 崔秉默 편집장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기간 중 인턴 성추행 물의를 빚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제가 처음 만난 것은 《세계일보》에 재직할 때입니다. 저는 《서울신문》에 입사했다가 1988년 《세계일보》로 옮겼습니다. 정치부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윤창중 기자’도 다른 회사에서 옮겨와 함께 정치부에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의 외교부인 외무부를 출입하다가 정당 담당으로 옮겨 민주자유당의 김윤환(金潤煥), 박철언(朴哲彦)씨 쪽을 맡았습니다. 윤 선배는 당시 YS(김영삼) 진영을 주로 취재했습니다. 많은 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당시 정국의 ‘핵폭탄’은 YS였습니다. 민주투사였던 YS가 군부정권의 연장인 노태우(盧泰愚) 진영과 동상이몽(同床異夢) 속에서 손을 잡았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한 지붕 아래 있었지만 민정계와 민주계(YS계)는 물과 기름이었습니다. 겉으로도 냉랭했지만, 돌아서서는 노골적으로 상대를 적대했습니다. YS의 소련 방문을 앞두고 정무장관인 박철언씨가 동행(同行)이냐, 수행(隨行)이냐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을 비롯해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YS에게 집권당 대통령 후보를 물려준다는 이른바 대권(大權) 각서가 있다고 YS 진영이 언론플레이를 하자 내각제를 추진해 온 김종필(金鍾泌·JP) 진영은 내각제 합의 각서의 존재를 《세계일보》를 통해 흘린 적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치고수들의 일진일퇴 공방이었고 그 와중에서 저희 같은 정치부 기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한 정치의 현장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창중 선배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계일보》는 통일교 재단이 오너입니다. YS가 누구입니까. 기독교 장로입니다. 통일교가 《세계일보》의 논조에 당시까지만 해도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었지만 어쨌든 YS로선 호의적으로 대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언론기관으로 대접하지 않으려 했다는 얘기가 들렸을 정도입니다. 영향력있는 신문을 등에 업고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는’ YS가 《세계일보》 정도를 제대로 상대했을 리 있습니까. 그런데도 윤 선배는 이렇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 속에서 YS 진영의 핵심 기자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신문에 뒤지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열심히 뛰지 않았으면 그런 평가가 나올 리 없겠지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최병묵씨. YS로 끝났어.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를)준다고 했다는 거 아냐. 이거, 정말 극~비야. 아 정말 민정계 애들 왜 그래. 뻔~한 것 갖고 말이야. 똑바로 알아야 돼요.” 그는 말을 할 때 제스처를 크게 쓰고 때론 침을 튀겨 가면서 강조하곤 합니다. 약간의 과장법을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제가 YS의 ‘적(敵)’인 민정계를 담당했던 만큼 윤 선배는 안타깝다는 듯 여러 차례 저의 취재 내용을 ‘교정(矯正)’해 주려 노력했습니다. 취재하는 대상이 싸움의 당사자이다 보니 윤 선배와 제가 정반대의 내용을 들이미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같은 회사 같은 부에 근무해도 회식 등의 자리를 갖는 경우가 흔치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기자들 수가 많던 때가 아니라 회사 동료보다는 오히려 출입처가 같은 타사(他社) 기자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윤 선배와 술을 함께 먹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렇게 2년여 동안 한솥밥을 먹다가 《세계일보》 기자 전원 사표 사건(회사측이 통일교 관련 신문인 전교학신문과 세계일보를 통합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기자들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던 일) 이후 저와 윤 선배는 다른 신문사에 근무하게 됐습니다. 그 사이 윤 선배가 《문화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할 때 쓴 칼럼을 보고 그가 과거의 윤 선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어느덧 그는 보수세력의 전위부대, 투사(鬪士)가 돼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그동안 무엇이 윤 선배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으로 윤 선배의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어쩌다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됐는지 저는 지금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20여년 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의 정직했던 윤 선배로 돌아가 깔끔하게 이번 사건을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저는 윤 선배와의 좋은 기억만 간직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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