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레닌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정권 장악은 오직 폭력에 의한 방법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 폭력혁명론을 중국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시켜 성공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와 다른 공산주의 이론가들이 도시의 노동자들을 혁명세력으로 중요시한 데 반해 모택동은 농촌의 농민들을 절대시하였다. 노동자와 빈농들을 선동하여 권력쟁취의 포석으로 삼은 것이다.
모택동은 “강력하고 권력이 있는 적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적 내부에 있는 아무리 작은 모순이라도 이것을 용의주도하고 교묘하게 최대한 이용할 것. 모든 자본주의 단계 사이에 모든 이해관계의 알력(軋轢)을 조장시킬 것. 동맹들이 임시적이고 유동적이며 믿을 수 없고 조건을 붙이는 경우에도 동맹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기회를 이용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는 레닌의 이론을 실천적 지침으로 삼았다.
모택동의 '모순론' 포인트는 공산당에 의한 정권장악은 불상용적인 모순관계를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때문에 폭력의 방법에 의해서만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실제 모택동은 협상과 합작과정에서도 폭력에 의한 무장력 강화에 주력하므로써 결국 무력에 의한 정권쟁취에 성공했다. 그 중심에 '상대가 약하게 나올 때 치고, 강하게 나올 때 대화하는 체 하라'는 담담타타(談談打打) 전략전술이 있다.
모택동의 이론을 북한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해 세뇌화시킨 것이 이른바 '김일성 주체사상'이다. 사실 폭력에 의한 정권쟁탈은 북한에서도 일관되게 주장해온 노선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남조선 혁명론'도 그 혁명의 성격이 '민족혁명'과 ‘계급혁명’을 동시에 추구하는 혁명이므로 '인민정권(공산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폭력 이외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폭력의 필연성에 대해 “주권쟁취의 결정적 형태는 혁명투쟁에 의한 폭력적 방법이다. 폭력투쟁없이 어떤 평화적인 방법으로 주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섞은 환상일 뿐이다. 역사는 아직까지 어떤 식민지통치나 민족지배층도 혁명적 폭력에 의하여 타도되었지, 스스로 주권을 내놓은 실례는 없었다(북한정치사전, 1973.)"라고 밝히고 있다. 기본전략이 폭력의 방법에서 파생됨을 암시하고 있다.
북한은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항상 비평화적(전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주체사상에 기초해 주장하는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 이론을 다룬 책자에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조선혁명을 책임진 공산주의자로서 남조선에서 미국을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어느 때든지 한 번은 꼭 그들과 해방전쟁을 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라고 폭력에 의한 정권쟁취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다.
‘남측이 우리를 공격하면 반드시 우리는 백배천배로 보복한다’ 1차 연평해전(1999. 6.)과 2차 연평해전(2002. 6.), 2010년 말 서해 NLL 해상에서 발생한 세번째 남북 해군간 교전 대청해전 이후에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북한 정권 서해함대 사령부의 보복결의 내용이다. 실제로 6·25남침전쟁 이후의 수많은 테러 사례 등을 감안해 볼 때 ‘폭력에 의한 정권쟁탈’은 북한 정권의 기본전략임이 입증되고 있다.
한 나라의 선진화는 통치자의 의지와 실천에 따라 천천히 또는 서둘러 진행될 수도 있다. 우리 정치환경은 어떠할까? 역시 '천천히‘를 주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리빨리'를 외치는 이율배반의 모습이다. 비단 대북문제가 아니라도 박근혜 정부가 독주하는 인상을 받지 않으려면 카이사르 이후의 난국을 통치하는 데 성공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격언을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황상 한반도신뢰프로세스도 조급증을 보이면 북한 전략에 이용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북한은 대화구도로 국제사회를 안심시킨 뒤 핵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1994년 1차 북핵은 대화전략으로 묵인 받았다. 2002년 2차 북핵은 핵능력을 정교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2013년 3차 북핵 때도 패턴은 다르지 않다. 최근 북한이 다시 꺼낸 대화카드를 경계해야 할 이유다. 홍시는 홍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