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중에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 요새는 죽을 즈음에 하나님의 축복은 큰 아들인 에서에게 주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둘째 아들 야곱을 에서보다 더 좋아했다. 그래서 요셉에게서 하나님의 축복을 야곱에게 주게 하려고 어머니가 꾀를 낸다. 야곱이 임종할때 에서에게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맛있는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시는구나. 그 꿩을 잡아오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니 에서 너는 꿩을 잡아 오거라."
에서는 원래 사냥을 잘했다. 그는 맛있는 꿩요리를 바쳐서 자신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중요한 순간에 사냥을 나가버린다. 어머니는 야곱을 변장시킨다. 에서는 원래 팔에 털이 많았다. 그래서 야곱의 팔에 양의 털을 붙여서 눈이 좋지 않은 아버지 앞에 가게 한다. 목소리마저 에서의 흉내를 낸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갈취한다.
아버지는 팔목을 잡고서 털이 수북하자 에서라고 굳게 믿고 야곱에게 복을 내린 것이다.
돌아온 에서가 분노했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그렇게 바보같은 분이신가? 그 뻔한 것을 모르고 야곱에게 복을 준단 말인가?
그게 정의로운 하나님인가? 하고 의심을 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유대인의 선민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계약을 통해 자신들이 선택받았고 축복받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선해서 혹은 훌륭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그 사건 이전에 에서는 어느 날 사냥을 돌아왔을때 야곱이 맛있는 팥죽을 끓여서 먹으려고 하자 그것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야곱은 거절했다. 에서는 원하는 요구를 무엇이든 들어줄테니 자신에게 팥죽을 팔라고 부탁했다.
이에 야곱은 장자권을 달라고 했다. 원래 장자권은 사고 파는 개념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축복은 장자만이 받을 수 있으므로 절대 팥죽 따위에 팔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따.
그러나 에서는 당장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장자권을 주겠다고 약속한 후 팥죽을 건네받아 먹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광경을 분명히 지켜보고 있었다. 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부한 몹쓸 인간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이 양털을 붙이고 임종 직전의 요셉을 대면했을때 요셉을 더 눈멀게 해서 야곱이 에서처럼 느끼게 했다. 상식적으로 눈이 아무리 침침해도 아들의 목소리와 모습을 구분못하는 아버지가 있을 수나 있겠는가!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고 야곱의 자손들은 대대손손 축복을 받게 되었지만 에서의 후손들은 복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참 어떻게 보면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성경 구절이다. 속임수와 거짓말을 가장 경멸하는 현대 사회의 시각에서 볼때도 그렇고 인본주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위 상황은 너무 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때 그런 것이고 하나님의 생각이나 마음은 인간의 생각따위로 재거나 가늠하기 힘든 것이다.
어찌 보면 에서는 사냥을 하는 인물이었고 야곱은 양을 치는 목자였다.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을 팔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을 수도 있다. 수렵을 하는 자대신 목축을 하는 자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수렵은 알다시피 짐승을 죽여야 하는 일이다. 본성이 거칠고 사납다. 그러나 양을 치는 목자는 성질이 온순하고 여유롭다. 어머니가 야곱을 좋아한 것은 자신의 성격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야곱은 어머니처럼 복종하고 온순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반면에 에서는 아버지 요셉을 닮아서 반항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야곱은 팥죽으로 장자권을 산 부도적한 인물이었지만 하나님의 뜻과 부모님의 뜻에 늘 순종했다. 그러나 에서는 반대였다. 부모를 잘 섬기고 거역하지 않는게 야곱의 기질이었다. 사소한 명령도 이행할 줄 알았던 야곱이 하나님에게는 자신의 역사를 펼치시는데 적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반항적인 에서가 낙오되고 야곱이 택함을 받았고 그의 자손들이 흔히 말하는 이스라엘 민족인 것이다.
성경은 이렇듯 볼때마다 큰 감화를 느끼게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항상 내가 성경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내게 큰 지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