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정변[政變]은 항상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정변을 놓고서 혁명이니 쿠데타이니 하는 것은 그 정변에 대한 정의는 후세 사가들의 몫인 것이지, 그 시대가 지나지 않었음에도 그것을 혁명이니 쿠데타이니 하는 것은 실로 앞뒤가 맞지 않는 역설적일 뿐이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있는 대한민국의 지나간 역사를 보면, 정치상으로 엄청난 정변이 있어왔고, 그로인한 권력의 향배가 바뀐것도 어디 한두번인가? 지난 560년전의 예를 들어 본다면, 고려 무신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문신들을 박해를 했고, 오랜세월동안 백성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었고, 국력이 쇠진하자 그당시 군부의 지지를 받던 이성계를 주축으로 혁명을 한것이 바로 역성혁명인 왕씨고려에서 이씨조선으로 나라가 바뀐것이다. 그런대도 지금 우리는 이성계를 보고서 역적이니? 쿠데타이니?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당시 이성계의 군사정변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성계는 물론 그를 따르던 수많은 지지자들이 멸문을 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으로 불리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4,19로 인하여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망하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으니,
4,19는 혁명이 맞다는 것이다. 그런데 4,19 학생의거로 자유당은 무너지고 민주당은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은 것이고, 그것도 자기들끼리 권력을 나누어 먹기위해서 머리터지면서 싸움박질하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 장면정권이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소장파 군인들에게 정권을 탈취를 당하고, 민주당 정권은 붕괴된 것이고 박정희의 오일륙 군사정변이 성공을 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민간정부로 이양을 해서 18년 7개월동안 대한민국의 산업혁명을 가져왔고 수많은 업적을 쌓은것이면,
이것은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으로 반드시 역사에 기록을 하고, 5.16을 혁명으로 정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오일륙 혁명은 쿠데타로 불리우고, 지금도 박정희가 이룬 지대한 업적은 모두 역사의 기록에서 사장을 한다는 말인가? 더욱이 광주 5,18 을 민주항쟁이니 혁명이니 한다는 말인가? 민주항쟁의 말을 쓸려면, 그 말뜻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민주항쟁은 글자그대로 4,19 학생의거처럼 민간인들과 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나서
자유당 정권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서 맨몸으로 불의에 항거를 하다가, 자유당 권력에 총을 맞고 희생이 된 것은 민주화가 맞다. 그러나 광주민주항쟁은 말 그대로 항쟁을 하다가 서로간에 무기를 들고 싸운 군사정변이고, 쿠데타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10,26 사건으로 김재규에게 시해당한 이후, 최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 유고시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체재를 이어가는 기간이고, 엄연히 최규하가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이끌고 있는 사이
정권을 탈취하여, 대통령이 되고져 불순한 의도를 갖고있던, 그당시 김영삼 김대중 야당대표들이 최규하정권을 탈취하기위한 것이 바로 마산 목포 광주를 시발로한 시위가 도화선이 된 것이고, 그것을 최규하 정부가 대한민국을 지키기위해서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고, 결국은 계엄령하에서도 시위가 잦아들지 않고 경찰병력으로는 도저히 막을길이 없자, 광주인근의 군을 동원했지만 무기를 든 폭도로 변한 반란군을 진압하지 못하자, 정예 특수부대원들을 시위현장에 급파한 것이고, 시위진압과정에서 양측간에 충돌이 심하면서
광주사태는 내란으로까지 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는 남북간이 주적으로 총칼을 맞된지가 반세기가 헐신 넘었다. 그런 와중에 광주사태가 번진 것이고, 결국 한달만에 광주사태는 최규하정부에 진압이 된 것이다. 혹자들은 광주사태를 두고 전두환을 죽일넘 하는데, 그당시 전두환은 대통령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 일당들을 수사하는 보안사령관이었고, 실제적인 진압 명령은 최규하대통령이 했다는 것이다.
광주사태가 진압이 된 이후에 전두환이가 군부실세로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 그것도 정변이지만 성공한 혁명인 것이다. 나는 왜! 광주사태를 쿠데타로 보는가 하면, 민간인들이 경찰 관서의 무기고와 방산업체를 피습해서 무기와 탄약을 절취하고, 탱크까지 앞장세워서 중무장을 한 것은 바로 군사정변인 것이지, 이것은 민주항쟁이 아니다. 약 한달동안 광주사태로 피해를 본 민간인 사상자와 군경이 수백명이 되고, 그중에는 억울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사태가 발발하면서 광주는 대한민국의 영토안에서 별도의 지시를 받는 무정부지역이고 자기들말처럼, 광주 해방구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저들은 대한민국 최규하대통령의 지시를 받지 않은 해방구인 그들만의 지역이 어째서 민주항쟁의 성지라 하는가? 이것은 역사를 올바로 기록한다면, 역적의 땅인 것이다.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한 역도들이 일으킨 난을 지금에 와서 민주화 성지라 하고, 저들의 행사에 대한민국의 애국가도 재창하지 않고 저들만의 마음의 고향인
임을 향한 노래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박정희는 오일륙 군사정변을 일으키면서도 민간인 한사람 손가락 하나 다친적이 없고, 수많은 국민들이 군사혁명을 반겻다는 것이다. 그런 혁명은 군사쿠데타로 기록을 하고, 무고한 양민들 수백명을 희생시킨 광주 오일팔은 위대한 민주항쟁으로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가 되었다니, 참으로 개가 봐도 웃기는 짓이 아닌가? 나는 지금도 오일팔을 쿠데타로 정의한다. 그것도 미완성의 쿠데타로 말이다. 오일팔 사태는 최규하정권에게 진압이 되었고,
나중에 김영삼 김대중이가 이상한 수단과 방법을 이용을 해서 정권을 잡았고, 자기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편법으로 광주사태를 미화를 한 것이고, 오늘날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것이다. 광주사태가 민주항쟁과 민주화투쟁이 맞다면, 4,19 혁명이나 오일륙, 12,12사태도 반드시 역사에 성공한 혁명으로 기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동서분쟁의 골을 메우는길이고, 이반된 민심을 한곳으로 모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광주사태를 반드시 국민투표에 붙여서 혁명인지? 사태인지? 역사를 가름짖자는 것이다. [敬導 易術院]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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