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의사지 이자의 얼굴을 보면 어느 누구도 의사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표정은 꼭 화적처럼 생겨 처먹어서 요사이 신문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정당의 대표를 닮아 처먹었다.
수염은 며칠째 깍지 않고 항상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나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는데 영 밥맛이다.
저나 나나 늙어가는 마당이지만 그래도 제 놈은 이제 겨우 환갑을 앞둔 애숭이 아닌가?
그리고 아무리 시골의 의사라고는 하나 그놈의 잘난 가운 정도는 빨아 입어야 하는데
하얀 가운이 검은 가운이 될 때까지 입으려는지 온갖 색깔들이 흉물스럽게 추상화처럼 얼룩져 있다.
이 인간이 오늘 무슨 심사로 나를 보자고 전화까지 했을까?
뭐, 보나 안보나 " 주사나 한 대 맞고 약이나 사나흘 치 갖고 가시요" 하겠지.
망할 이인간이 지어준 약은 내가 한 번도 처방대로 먹어 본적이 없다. 나도 믿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놈의 약은 안 먹어도 낫고 먹어도 낫는 약이기 때문이다.
아마 요놈의 의사라는 인간의 머리속에는 분명히 이런 생각이 있을 것이다.
"이 시불 영감탱이야...너가 살면 얼마나 사냐? 자꾸 나를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아무렇게나 지내다가 저 세상으로 곱게 가거라" 하고 생각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불 의사를 보게 되면 항상 먼저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 좀 죽게 해 주슈, 이제 내 나이도 칠십인데....."
아니면 "의사 양반 ,주사한방으로 깨끗이 갈수 없으까이...내가 지금은 정신이 그래도 있지만 앞으로 벽에 똥이나 처바를까 걱정이야, 그러니 나를 좀 저세상으로 가게 해줘?"
그래도 이 자는 별 대꾸도 없고 늘 청진기를 나의 마른 가슴에 대어보고 등허리에 대어보고는 진료가 끝이다.
그리고는 어렵사리 말하는 간단한 진료소견이 전부다.
"영감님, 기관지에 가래가 찼습니다, 약을 먹어야 겠네요"
"소화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약을 지어 드릴게요" 하는 말이 전부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대기실에서 이삼십 분 기다렸는데도 코배기도 보이지 않는다.
한참 후에 그가 어기적거리며 나의 앞에 털썩 앉는다.
그는 전과 다르게 얼굴에 웃음까지 띄며........
"영감님, 축하합니다. 드디어 원하시는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전번에 이곳에 오셔서 검사한 엑스레이 필름입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그가 건네는 필름을 받아 보았다. 무슨 시커먼 그림 속에 흉물스런 하얀 갈빗대만 보일 뿐이다.
"그래, 이게 도대체 어쨌다는거요?"
나의 가슴이 마구 뛰어댄다.
"아, 전번에 오른쪽 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엑스레이 검사를 했잖습니까? 그때 받았던 검사 결과 입니다. 요기 밑에 자세히 보시면 시커먼 것이 있지요? 요것이 신장입니다. 바로 신장주변에 보면 동그란 것이 몇개 보이시지요? 그게 바로 암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평생 죽을 때 까지 낫기가 힘들지요"
아, 의사놈의 이야기를 들으니 앞이 캄캄 했다. 병원 안이 온통 새까맣게 보이고 온몸이 굳어버리는 듯하다.
그런데 이 인간은 악마구리 새끼처럼 실실 웃음을 지어가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영감님께서 맨 날 천국 가고 싶다고 해서 아마 하나님이 좀 일찍 부르시는 모양입니다. 하하하..."
이 자식은 남의 일이니까 이렇게 쉽게 말하는군, 아,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나는 겨우 힘을 내어서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요, 잘됐지요 뭐......그런데 언제쯤에나 죽게 됩니까?"
"노인이라서 당장 죽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시간이 좀 걸리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좀더 사는 길이 있긴 있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몇 십년을 더 살수도 있고......"
"아니..? 그게 뭐요? "
나의 눈앞은 갑자기 환해졌고 악마 같은 의사 놈이 갑자기 천사처럼 보여 졌다.
"아니 영감님께서는 이때까지 맨날 죽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니야, 그냥 해본 소리요....절대 그렇지 않아, 늙으면 다 하는 소리잖아........그래, 어떻게 해야 되는 거요?
내가 말이요, 아직은 손주 며느리를 보고 죽어야 하거든....얼마 전에 그놈들이 약혼을 했다구....."
나는 염치불구하고 의사 놈의 그 더러운 가운을 붙들고 늘어졌다.
의사 놈은 얼굴에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대더니 입을 연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재물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탐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런데 보통 자신이 늙으면 그 재물도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저는 일찍부터 사실 재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초연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 시골에서 돈을 멀리하고 의사가 된 것입니다. 영감님, 저도 돈을 탐했다면 아마 서울에서나 도시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부자의사가 되었겠지요"
이 인간이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헛소리를 하는가? 남은 속이 타서 죽겠는데.......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아니 죽을 때까지 돈에 집착을 하는 노인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참, 한심하고 추하지요. 죽을 때 그놈의 돈을 한 푼이라도 갖고 가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아마 돈의 노예가 되어서 그럴 것입니다"
아, 남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하는 순간에 있는데 이 인간은 계속 엉뚱한 설교를 하고 자빠졌다. 나는 입술이 마르고 속이 탔다.
"......영감님, 그래서 부탁드리는 소리인데 오늘 집에 가시면 당장 옷을 갈아입으십시오, 내 몸 외에 걸친 것은 모두 벗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그 벗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아들에게 주세요. 그러면 앞으로 십년은 더 살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보장을 하지요."
"정말 그렇게 되면 내가 앞으로 십년씩이나 그렇게 살 수 있을런가?"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사에게 되물었다.
의사 놈은 나의 표정을 살피더니 나와 약속을 했다.
"약속을 하지요. 그 대신에 영감님부터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일 까지 저에게 그 약속을 지켰다는 전화를 해주십시오, 그 후에 엑스레이를 다시 한 번 찍어서 결과를 보겠습니다. 아마 그때는 완쾌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 나는 날아 갈 것처럼 기뻤다.
당장 나는 그 병원을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젠장, 앞으로 십년을 더 살수 있다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랴?
나는 집으로 와서 사랑방문을 닫아걸고 옷을 하나둘 벗었다. 마지막 내의까지 벗어 제꼈다.
그런데 언제나 나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전대는 어떻게 할까? 아, 여기에는 평생을 모아두었던 농협통장두개와 집문서, 땅문서, 그리고 결혼반지 두개가 있는데.........이것마저 벗어서 아들에게 줄 수는 없지, 이것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갖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벌거벗고 한참 망서렸다. 아니지, 의사는 내 몸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벗어 주라고 했잖아. 그리고
나도 약속을 했고.... 나는 옷을 갈아입은 다음 벽력같은 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애비야, 거기 있느냐?"
"예, 아버지....."
"당장 너희 내외가 이 방으로 오너라"
내방으로 찾아온 아들 내외 앞에 나는 평생 짊어지고 온 무거운 짐을 벗어던졌다.
그놈의 전대를 풀고 나니 하늘을 날아 갈 것처럼 가벼웠다.
아, 이렇게 편하고 가벼운 것을........!! -end-
글쓴이 : 김윤길/이어도
원문출처 : http://forum.chosun.com/bbs.message.view.screen?bbs_id=1040&message_id=1021225¤t_sequence=zzzzz~&start_sequence=zzzzz~&start_page=1¤t_page=1&direction=1&list_ui_type=0&search_field=1&search_word=&search_limit=all&sort_field=0&classified_value=&view_count_id=false
(후기: 우리의 시골 농촌에 가면 아직도 전대를 매고 사는 노인이 더러 있다. 전대를 매고 장날 시장에 가서 소나 돼지도 사서 온다. 평생 돈을 아끼고 아껴서 혼자 남모르게 간직하는 노인의 모습과 시골에서 묵묵히 인술을 펴가는 훌륭한 의사님들을 그려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