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시장이 모르는 홍범도의 정체
1. 무식한 홍준표 시장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다섯 사람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던 모양이다. 육군사관학교라면 6.25전쟁의 영웅들의 흉상이 전시되어야 할 터인데, 왜 하필 관련도 없는 사람들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전시해 놓은 것일까. 문재인 정권의 작품이란다. 문재인 정권에서 해놓은 것치고 정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 등이 이 흉상들을 이전하는 데에 딴지를 걸고 나섰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정치인들이 꼭 이럴 때 시비를 걸고 나선다. 다른 인사들에 비해 홍준표는 대권 주자임에도 그 역사의식은 보수로서는 빵점이다. 홍준표는 예전에도 보수우파 측에서 편찬한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한 적이 있다. 김영삼의 후예답게 홍준표는 무식하다. 무식한 홍준표가 홍범도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까.
2. 봉오동 전투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봉오동 전투의 주인공은 최진동이었다. 봉오동 일대는 최진동의 구역이었고, 여러 자료에서 봉오동 전투의 사령관은 최진동이고 홍범도는 편장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후 최진동은 친일로 변절했고 홍범도는 공산당의 길을 걸었기에 홍범도는 좌익세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명세를 펼 수 있었다.
위키백과에서는 봉오동 전투의 일본군 피해를 전사 157명, 200명 중상, 100명 경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군 피해가 대략 460명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이 숫자는 임정 군무부에서 발표한 숫자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가짜'들이 가장 많이 우굴거리는 곳이 '독립유공자'들이다. 그러니 이 숫자에도 당연히 '짜가'들이 끼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봉오동 전투를 최초로 보도한 1920년의 독립신문에는 '적병 사상자 12명' 이었다. 그러나 임정 발표에서 '120명 섬멸'로 바뀌었다가 이틀 후에는 '적의 사망자 60명, 부상 50명'으로 발표했다가, 또다른 국민간도회의 호외에서는 다시 '150명 섬멸'로 바뀌었다. 전형적인 조센징의 고무줄 전과 발표였다.
그러나 조선의 뻥튀기 독립군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일본군과의 전투는 화적떼질과는 달랐다. 일본군에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들은 전사자를 꼼꼼이 기록하고 그 위패는 야스쿠니 신사에 모셨다. 그러니 '짜가'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홍범도가 수백 명 사살했다고 떠벌린 봉오동 전투의 일본군 피해자는 얼마나 될까. 이번에는 일본군의 말을 들어보자.
봉오동 전투는 전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독립군은 도망 중이고 일본군은 추격 중에 우연히 조우하여 벌어진 간단한 게릴라 전투라고 표현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당시 일본군 추격대는 남양수비대 27명, 증파된 월강추격대 243명 해서 270명 정도가 전부였다. 위키백과에 나타난 일본군 피해 460명은 존재하지 않는 군대였다. 홍범도는 유령의 군대와 전투를 벌인 셈이었다.
당시 일본군 월강추격대의 지휘자는 야스카와 지로 소좌였다. 야스카와 지로는 '봉오동전투상보'라는 보고서를 남겼다. 여기에서는 '2등졸 호리이 시케구니 흉부 관통상 사망, 1등졸 가지우라 간지로와 응원경찰 한 명 부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일본 경찰에서 조사하여 작성한 '복명서', 그리고 조선군사령관이 육군성에 보낸 전보 등, 여러 자료에서 일관적으로 일본군 사망자는 한 명이었다. 봉오동 전투는 '입'으로 떠벌이는 '뻥튀기'와 가로세로 교차 조사하여 기록하는 '시스템'과의 전쟁이었다.
2. 홍범도의 전력
홍범도 역시도 김구처럼 과장과 왜곡으로 점철된 인물이다. 홍범도는 평양에서 천민의 아들로 출생하여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다. 그는 자신의 품삯을 떼어먹은 지주 3형제를 도끼로 죽이고 도주하면서 방랑을 시작했다. 객주집에 머물면서는 과부와 통정을 하다가 과부의 부친이 개가를 강요하자 과부가 자살해버린다. 그러자 홍범도는 과부의 부친과 아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된다.
신계사라는 절에 숨어 들었는데 이번에는 비구니와 바람이 나서 동거하다가 임신한 비구니를 버리고 다시 도망쳤다. 홍범도는 산간을 떠돌다가 포수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일본군이 무장의병을 통제하는 차원에서 총포와 화약을 단속했는데 이때 많은 포수들이 이 방침에 저항하면서 항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홍범도는 동료 포수들을 규합해 친일 인사들을 살해하거나 부호들을 습격하면서 위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홍범도는 문맹에 불학이라 자기 이름 석 자도 쓸 줄 몰랐기에 독립군을 이끌고 지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홍범도는 러시아에서도 유부녀와 간통한 사실이 발각되어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고, 그의 부하들은 무기를 구입하러 군자금을 들고 가서 유흥비로 탕진하기도 했다.
3.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의 가해자
홍범도 흉상이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에 모셔진 것은 대한민국을 모독하려는 이유말고는 타당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홍범도의 흉상이 육군사관학교에 모셔질 만큼의 공적도 없거니와, 홍범도는 독립군 세력을 말살시켰던 '자유시 참변 사건'에서 가해자 편에 섰던 인물이다. 그것만으로도 홍범도는 독립유공자 자격을 박탈해야 마땅한 인물이다.
1921년 만주의 독립군들이 일본의 공세에 근거지를 잃고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독립군들은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로 갈라져 갈등을 빚게 된다. 상해파는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단체로 소련 공산당과는 독립된 조직을 유지하기를 원했고, 이르쿠츠크파는 소련 공산당의 완전한 하부조직으로서 상해파를 통합하라는 지령을 모스크바로부터 받고 있었다.
주도권을 잡은 이르쿠츠크파가 상해파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고 상해파가 이를 거부하자 이르크추크파는 탱크를 동원하여 상해파를 진압해 버린다. 이 사건으로 독립군 사망자는 자료에 따라 36명 또는 272명으로 나타난다. 포로로 잡힌 독립군은 900여 명이었는데 이들은 군사재판을 받았다. 이때 소련 측 3인의 재판위원 중 한명이 홍범도였다.
이 공로로 인하여 1922년 모스크바에서 레닌은 홍범도에게 금화와 권총을 선물했고, 홍범도의 어깨에 소련군 대위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1927년에 홍범도는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홍범도는 독립운동에서는 뻥튀기로 명성을 날렸지만, 공산주의 활동에서는 레닌에게 상장을 받을 정도로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
4. 홍범도의 흉상을 철거해야
독립 유공 공적에서 홍범도만 부풀려진 것은 아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모셔진 흉상 5인들도 그 전과가 부풀려지거나 왜곡으로 선정된 인물들이다. 광복회 사무실이나 광복회 회장실에나 전시해야 마땅할 인물들이 육군사관학교에 진열된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들 5인 흉상은 이전이 아니라 철거하여 폐품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공산주의 활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전시한 것은 국가의 정통성에 파괴하려는 간첩이나 할 짓이다. 이런 흉악한 일을 문재인 정권에서 벌였다니, 인터넷에서 문재인을 향하여 '간첩'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뿐이다.
어디 문재인뿐이랴. 무식하면 용감한 홍준표 같은 정치인도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홍준표는 보수 정치인이라면서 역사에는 좌좀 수준의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 무식하면 공부라도 해야 한다. 홍준표 같은 정치인이 저리도 오랫동안 정치를 하다 보니 대한민국 뿌리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식한 보수 정치인들이여, 정치를 때려치우든가 아니면 역사 공부라도 좀 해라. 이 글은 진명행의 저서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을 참조했다. 이 책에는 사기꾼 독립군들이 등장한다. 홍준표 같은 사람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홍준표는 '반일 종족주의'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 책을 비난하는 사람은 좌익 빨갱이들뿐이다. 이 책은 홍준표의 뇌 속에 빨간 페인트를 지워줄 것이다.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