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 선교사가 제중원을 설립 한 후 밤낮으로 환자가 몰려든다. 연간 1만명을 진료할 정도로 과로에 시달렸다. 몰려드는 환자로 인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알렌을 찾아 온 조선인이 있었다. 노도사로 불리는 노춘경이 찾아와 중국 문헌에 나오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호기심을 생겼다며 관련 책을 빌려 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 기독교 선교는 금지 되어 있었고 발각 되는 경우 목이 달아날 일이라 거절한다.
노춘경은 거절을 받고 돌아서려는 찰라 알렌 책상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노춘경은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알렌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한글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옷소매에 감추고 훔쳐가게 된다. 조선에 최초로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건너 오기 전에 이미 한글 성경이 장안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성경을 훔쳐 간 것이 인연이 되어 노춘경은 알렌에게 조선말을 가르친다. 성경을 읽고 회심한 노춘경은 조선땅에 최초로 설립 된 새문안 교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최초로 세례를 받게 된다, 만주, 일본 등 조선땅 밖에서 조선인 세례자가 있었지만 조선땅에서는 최초의 세례자가 된 것이다.
언더우드는 한양에 들어온 후 한글번역 된 누가복음 보고 놀라게 된다. 암암리에 상당한 분량의 한글번역본 신약성경과 신약성경 쪽본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언더우드는 기독교 선교가 금지 된 조선에서 제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을 하며 입국한 지 2년이 되어서야 첫 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조직하게 된다. 첫교회를 조직할 때 구성원은 서울과 북한에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신앙공동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언더우드는 다음과 같이 본국에 보고하고 있다.
“씨를 뿌려야 할 때 이미 열매를 거두고 있다”
언더우드가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조선에 입국할 때 그의 손에는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수정의 마가복음 번역본 보다 먼저 번역 된 신약성경 전체가 조선 각지에 보급 되어 있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평양 대동강 쑥섬에서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는 이 땅 복음의 밀알이 되어 떨어지고 썩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 첫 번째 열매가 존로스가 백홍준 등의 조선인과 같이 번역한 “예수셩교젼셔”이다. 토마스 선교사는 마차 세대 분량의 한문성경을 가져와서 대동강변에 던지며 순교했다. 그 성경은 평양시에 뿌려 졌고 훗날 마펫 선교사가 노방 설교를 할 때 마펫 선교사에게 한문성경을 읽었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1872년 8월 존 로스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소속으로 중국에 도착한다.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에서 순교한지 6년 후였다. 중국으로 건너오기 직전 목사 안수를 받고 스튜어트와 결혼을 하여 부부가 중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존 로스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으로 중국 선교 책임자로 있는 알렉산더 윌리암슨을 만나게 된다. 알렉산더 윌리암슨은 토마스 선교사가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조선으로 선교를 갈 때 한문성경 등 물심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또한 조선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조선과 청의 민간 무역이 이루어지는 고려문에 가서 조선인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곤 했었다.
존 로스 선교사는 1873년 알렉산더 윌리암슨으로부터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소식을 듣는다. 알렉산더 윌리암슨이 선교를 다녔던 고려문에 정보도 듣게 된다. 중국 선교사로 파송 된 존 로스 선교사는 만주 영구에 가서 선교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존 로스 선교사는 중국 선교 보다는 조선인 선교의 열망을 가슴에 품게 된다.
중국으로 건너 올 때 존로스 선교사는 아내는 임신중이었고 중국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 된다. 아내 수튜어트는 아들 드러몬드를 출산한 후 급격하게 병세가 악화 되면서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갓 태어난 아들과 단 둘이 남게 된 존 로스 선교사는 자녀을 양육할 사람이 필요했고, 본국에 있는 여동생 캐더린을 중국으로 부르게 된다. 중국으로 건너 온 여동생 캐더린은 조카를 양육하며 선교를 돕다가 조선 선교에 열망을 가진 존 로스의 동역자인 맥킨타이 선교사와 중국에서 혼인 한다.
존로스 선교사는 선교 기간 동안 4명의 아이를 잃는 슬픔을 겪는다. 그러나 조선선교의 열망은 꺼진 적이 없었다.
존로스 선교사는 조선인과 청국 상인이 만나 교역을 하고 있는 고려문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고려문을 방문한 존 로스 선교사는 한문성경을 팔며 전도 하였으나 전도에는 관심없는 한국상인들은 영국산 면제품인 “양목”에민 관심을 가졌다. 당시 영국산 양목은 세계 최고의 품질이었고 조선으로 가지고 들어가면 10배의 이문이 남는 장사였다. 고려문에서 장사를 하러 온 백홍준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백홍준은 새문안 교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가 되며 훗날 평양감사에게 잡혀 감옥에서 순교 한다.
존 로스 선교사는 양목에 집착하는 백홍준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양목을 조금 주었고 한문신약성경을 전해준다. 백홍준의 아버지는 한문성경을 읽고 아들에게 준다. 백홍준은 아버지가 한문성경을 읽고 감동을 받아 평안도 의주에서 존로스가 있는 만주 영구까지 찾아간다. 존 로스는 안식년으로 영국에 있어 만나지 못하고 매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나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한다. 백홍준이 공부를 하다 만난 이응찬, 이성하, 김진기 등과 성경 공부 동문이 되고 회심하여 매킨타이어 선교사에게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는다.
중국으로 돌아온 존로스 선교사는 조선에서 천한 아녀자나 쓰는 “암글”을 발견한다. 창제 된지 500년만에 한글이 존 로스 선교사에 의해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역사적 순간이다.
존로스는 어떠한 발음이든 받아 적을 수 있고, 배우기 쉬운 한글로 성경을 번역한다면 조선에는 복음의 불길이 일어날 것을 예감한다.
즉시 존 로스 선교사는 매킨타이어 선교사, 백홍준, 이응찬 등과 같이 신약성경 번역에 나선다.
존로스는 이응찬에게 체계적으로 한글을 배우고 연구하여 1877년 한글의 가로쓰기와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하며 한글교재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을 출판 한고 감격을 남긴다.
"한글 자모는 아름다운 음성문자로 너무나 간단해서 모든 남녀노소가 읽을 수 있습니다. 소리글자이므로 한글로 인쇄된 어떤 책이든 자모만 배우면 읽을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역사가 성경번역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자기나라 언어의 성경을 가지는 것은 단순하게 대중이 성경을 읽는 것만 의미하지 아니다. .성경을 통한 대중의 각성, 지식과 문화의 창달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영어번역 성경이 없었으면 “로미오와 줄리엣”과 “실락원”은 없었다. 즉 세익스피어와 존 밀턴의 명성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 자기말의 성경을 가지는 것은 영적각성을 통한 개인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며, 개인의 가치를 찾은 대중은 현대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17세기, 18세기에는 영국은 해적질로 먹고 살았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영국 출신의 수많은 해적들이 유럽의 바다를 휘저으며 유럽과 캐리비안 해의 상선들을 약탈하여 악명을 떨쳤다. 그런 해적에 불과했던 영국이 문명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을 두고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말을 남겼다.
“성경이 영국을 만들었고 영국이 섹스피어를 낳았다”
조선의 한글성경 의미에 대하여 국어학자 최현배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기독교 때문에 한글이 살았고 한글 때문에 기독교가 빨리 전파 되었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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