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스크랜턴 대부인은 여성 교육의 어머니가 되어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학당을 설립하고 이 땅의 억압 되고 소외 받는 여성의 구원자가 되었다. 이름 조차 없는 조선여인 “간난이” “못난이”는 그녀를 영원히 기억 하여야 할 것이다.
스크랜턴가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조선으로 건너와 일가족이 헌신했다.
메리 스크랜턴 대부인은 남편을 여의고 조선 땅을 밟을 당시 53세의 늦은 나이였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20대였고,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은 29세였다. 젊은 그들도 힘든 조선의 선교에 혼을 불사르고 76세에 양화진에 잠들었다.
미북감리회 해외 선교부는 매클레이 전도사의 보고서를 받고 여성 선교사를 조선으로 보낼 것을 결정한다. 힘든 조선 선교를 감달할 깊은 신앙심과 우수한 자질을 갖춘 여자 선교사를 찾았다.
스크랜턴 대부인은 자신이 조선으로 건너갈 것을 요청하였으나 해외선교부는 젊은 여성 선교사를 찾았다. 스크랜턴 대부인은 미국에서의 그녀의 열정적인 신앙생활과 사회활동이 조선 선교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설득하였다. 해외 선교부는 그녀를 여자선교사로, 남자 선교사는 아펜젤러, 의료선교사는 윌리엄 스크랜턴을 조선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지역교회에 봉사는 것이 먼저라며 며느리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윌리엄 스크랜턴은 예일대학과 뉴욕 의대를 졸업한 미국 최고의 엘리트였다. 미국사회의 상위 1%의 부와 명예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며느리의 주장 또한 틀리지 않았다.
며느리의 강력한 반대로 고민이 깊어질 때 윌리엄 스크랜턴과 그의 손녀는 깊은 병으로 눕게 된다. 스크랜턴 대부인과 며느리는 사경을 헤메는 부녀를 간호하며 인생의 의미를 깨달으며 필사적으로 조선선교를 설득했다.
며느리는 사경을 헤메는 남편과 딸을 살려 달라고 기도 하며 하나님께 서원했다.
“조선에서 뼈를 묻겠다”
메리 스트랜튼가(家) 3대는 1885년 2월 3일 아라빅(Arabic) 호(號)에 승선하며 아펜젤러를 만난다. 그리고 2월 27일에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매클레이 선교사 집에서 여장을 풀며 조선의 갑신정변 소식을 듣는다.
언더우드를 만났고 이수정을 만났다. 그리고 갑신정변으로 일본으로 망명한 왕족 박영효를 만나게 된다. 왕족의 모든 특권을 내려 놓고 실패한 혁명가로 일본의 망명한 박영효의 눈물겨운 호소를 듣는다,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할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 백성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교육과 기독교입니다. 선교사들과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를 통해서 우리 백성을 교육하고 향상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재래 종교는 지금 기운이 다했습니다. 이 백성을 기독교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길은 지금 환히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합법적인 개혁을 하기 이전에 반드시 우리는 교육과 기독교화를 서둘러야만 하겠습니다”
박영효는 메리 스크랜턴 대부인을 만난 후 미국을 둘러 보고 궁궐에서 무당을 불러 밤낮으로 굿판을 벌리고 있는 고종에게 피를 토하는 상소를 올린다.
개화건백서를 통해 국가개혁과 문명개화를 호소했다. 그리고 제정분리와 신앙의 자유를 외쳤다.
“모름지기 종교는 백성에게 맡겨 자유롭게 신봉하게 하고, 정부가 관여 간섭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자고로 종교로 관련된 쟁론으로 말미암아 인심이 동요되고, 나라를 멸망시키고, 사람 목숨을 해치는 일이 수로 셀 수가 없으니 가히 거울로 삼을 수 있습니다 -개화건백서-”
유교 원리주의에 함몰 된 그 시대의 조선에 던진 박영효의 절규는 처절했다.
1896년 4월 21일의 "독립 신문" 논설에 조선 여자의 숙명을 위로하며 숙명을 벗어나는 길은 교육에 있음을 역설한다.
“세상에 불쌍한 인생은 조선 녀편네니,우리가 오늘날 이 불쌍한 네편네들을 위하여 조선 인민에게 말하노라. 녀편네가 사나이 보다 조금도 낮은 인생이 아닌데 사나이들이 천대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나이들이 문명 개화가 못 되어 이치와 인정은 생각치 않고,다만 자기의 팔심만 믿고 압제하려는 것이니 어찌 야만에서 다름이 있으리요…조선 부인네들도 차차 학문이 높아지고 지식이 넓어지면 부인의 권리가 사나이 권리와 같은 줄을 알고 무리한 사나이들을 제어하는 방법을 알리라. 그러기에 우리는 부인네들께 전하오니,아무쪼록 학문을 높이 배워 사나이들보다 행실도 더 높고 지식도 더 넓혀 부인의 권리를 찾아라”
조선의 여인을 사랑한 스크랜턴 대부인은 일본에서 조선에 가는 뱃길에 오르며 조선인이 되었고 민족이 되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즐거우며 선교사들의 생활 조건도 훌륭하나, 나는 내 민족(한국인)에게 가서 그들 속에서 살고 싶다“
조선의 여인을 진정 사랑한 스크랜턴 대부인은 이국 땅 양화진에 민족이 되어 묻혔고 그녀가 운구길은 20리길의 인파가 따르며 그녀를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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