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개혁교회는 장로교이다. 스코틀랜드 존 녹스에 의해 시작 된 스코틀랜드의 개혁교회 장로교는 칼빈주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아 칼빈주의가 장로교라 불릴 정도이다. 인간이 교회의 수장 된 구교를 전면 부정하고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 머리 됨을 따른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개혁교회 중 장로교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힐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헌신적인 선교를 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가 남긴 유산이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 장로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언더우드가는 4대를 이어가며 이 땅을 섬겼고, 언더우드 타자기를 만든 언더우드의 친형 존 토머스 언더우드는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버금가는 부를 창출했고 문화의 아이콘이 된 거대 기업을 일구며 이 땅에 막대한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
영국에서 아버지 존 언더우드와 메리 사이에서 6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언더우드의 아버지 존 언더우드는 발명가였으며 등사용 잉크와 타자기 리본 등을 발명하여 직접 공장까지 운영하였지만 사업실패와 이어 아내의 죽음까지 맞이하면서 언더우드 선교사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다.
가난한 이민자로서 힘든 생활 속에 신앙생활에 충실했다. 만학도였던 언더우드는 7마일을 걸어서 통학하며 밤 자정까지 공부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힘든 학업을 이어가며 뉴욕대학교를 졸업한다. 대학을 졸업하는 해 아버지가 별세하는 슬픔 속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와 선교사 훈련을 받게 된다.
어력서부터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언더우드는 인도 선교를 준비하며 힌디어와 의학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한국 선교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우연히 듣게 된 미북장로회 해외선교국의 조선선교에 대한 강연을 듣는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왜 너 자신이 가지않느냐?"
1년간 고심 끝에 한국 선교를 결정하고 선교본부에 조선 파송의 청원서를 냈으나 자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때 마침 뉴욕에 있는 한 개혁교회에서 1년에 1,500달러 조건으로 그를 청빙하여 청빙을 수락하는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려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다.
"한국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한국은 어떻게 될까?"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 음성을 듣고 선교본부를 다시 찾았을 때 브루클린의 평신도 맥윌리엄스가 한국선교에 써달라고 보낸 1,250달러가 헌금되어 있었다. 그때가 1884년 7월 28일이었다.
상해에 선교사로 파송 된 알렌은 중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 선교사로 보내 달라고 막무가내로 선교국을 압박하였다. 선교국은 알렌에게 한국 파송을 허락한다는 전보를 보내고 6일째 되는 날이었다.
병인박해의 서슬이 살아 있던 당시 조선은 선교가 원천적으로 봉쇄 되어 있었다. 조선으로 건너 온 알렌 선교사를 미국 공사 푸트는 미공사관 무급의사로 취업한다는 조건으로 조선에 입국하게 한다. 그러나 알렌은 갑신정변으로 죽어가는 민영익을 살려 냄으로서 조선 선교의 발판이 되는 제중원을 설립한다.
강력한 쇄국정책의 폐쇄 된 조선에 이방인의 개신교 선교가 불가능함 을 알고 있음에도 조선 선교 고집을 부린 것이나 조선에 비하여 월등하게 좋은 선교조건을 갖춘 중국에서 굳이 조선으로 오겠다고 고집을 피운 알렌의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알렌의 조선행 고집은 하나님의 이끈 역사함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언더우드는 1884년 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여름에 한국 선교사로 정식 임명 받고 11월에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러나 12월 4일 갑신정변이 터졌음에도 12일 후 12월 16일 한국 선교를 위해 일본으로 출발한다.
언더우드는 조선에 건너 오기 전 약혼녀와 조선에 같이 갈 것을 부탁한다.
"그 곳에서는 무얼 먹고 살고 있나요?"
"모르겠소."
"병원은 있나요?"
"그럼 당신은 조선에 대해 아는 게 뭔가요?"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그곳에 주님을 모르는 1,000만의 민중이 살고 있다는 것 뿐이오."
일본으로 가는 배편에는 파혼한 언더우드는 단신으로 올랐다. 여행용 가방 하나, 타자기 한 대, 대형 카메라 하나가 그의 짐 모두였다.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한 언더우드는 3개월간 머물며 조선 선교를 준비한다. 미국성서공회의 루미스로부터 급박하게 돌아가는 조선 정국을 들었음에도 일본에서 성경 번역을 하고 있는 이수정도 만나 조선말을 배운다.
정변의 실패로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 박영효 등을 만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조선 사정을 구체적으로 듣게 된다. 주한 푸트 공사는 갑신정변으로 요동치고 있는 정국을 이유로 조선입국을 만류 한다.
하나님으로 부터 조선선교의 사명을 받은 언더우드 선교사는 고집을 굽히지 않고 기어이 조선행 배에 오른다.
김옥균과 매클레이 선교사의 활약으로 미북감리교 선교단은 아펜젤러와 메리 스크랜턴 모자를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하고 일본으로 건너온다.
언더우드는 일본에서 조선 입국을 준비하며 예정에 없는 스크랜튼 대부인과 아펜젤러를 만나게 된다. 북미감리교 해외선교단에서 조선으로 파송한 아펜젤러와 스크랜튼 대부인 가족을 만난다. 스크랜튼 대부인은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가족이 선교길에 나섰다.
언더우드는 장로교 아펜젤러는 감리교 소속이었지만 교파를 초월하여 이 땅에 최초 선교사로 들어와 개신교 복음을 전한 상징적인 대표적인 선교사가 된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와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의 퍼스트와 미들네임의 이니셜을 따서 두명을 가르쳐 "위대한 H.G들" 라고 불렀다. 1883년 가을 하트포드에서 전 미국 신학생 수양회에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각각 자신의 신학교 대표로 참석하여 교분을 나누었지만 교류는 없었다.
조선 선교를 대표하는 그들은 이땅에 교육과 의료라는 문명을 열어주며 하나님이 주신 각각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깊은 우정을 쌓는다.
대한민국 골목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연세00병원"으로 대표되는 언더우드가 남긴 의료사역과 이승만과 주시경 등 기라성 같은 그 시대를 선도한 인물들을 길러낸 아펜젤러의 교육사역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고치고" "가르치는" 사역을 어깨에 하나 씩 짊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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