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동 촌노가 종교인으로서는 평소에 가장 존경 하였던 분이 한국 불교 조계종 제 8 대 종정을 지내셨던, 서암 [西庵] 대종사 [大宗師 = 큰 가르침을 주신 스님을 일컬는 사후의 시호] 님이시다. 서암 스님의 본명은 송 홍근 [宋鴻根] 이시고, 안동 촌노의 고향인 안동 이시고,
그 어른의 부친은 저의 조부님과 독립 운동을 하신 의병장이시고, 대종사님의 맏 형님이 우리마을에서 사 셨고, 왜경들의 눈을 피해서, 그 당시 인적이 드믄 산골작인 이곳으로 숨어 들어 오신 것이고, 서암 스님의 부친은 의병장을 하신 분이셨기에, 그 당시 태어나신 고향에서는 부호의 집안이었으나,
독립운동으로 인하여, 왜놈들에게 가정이 풍지 박산이 나자, 스님은 1932 년에 화산 스님을 만나서 서악사에서 출가한 후, 3 년의 고된 행자 생활을 마치시고, 37 년 금오스님을 계사로 [수계를 주신 스님]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 하셨고, 새로운 신학을 배우고져, 홀 홀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 가신 것이고,
그 곳에서 막일을 하시면서, 일본 동경 제국대를 입학해서 3 년간 수학하시던 중에 폐결핵을 앓으시고, 고국으로 들어 오셔서, 제방 선원을 떠돌던 1946 년에 계룡사 나한굴 [羅漢窟] 에서, 문득 생과 사의 경계가 없는 께달음의 경지에 오르신 것이고, 스님의 입에서는 오도송과 같은 "본무생사"
[本無生死 = 삶과 죽엄은 본래 없다는 뜻]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면서 득도를 하신 것이고, 오직 평생을 검소하게 수행을 하시면서 중생 구도를 위해서, 전심 전력을 다 하신 분이시고, 불교 진흥의 참 된 지도자로 추앙 받는 그 분은 이 시대에 가장 존경 받는 한국 불교의 큰 스님이시다.
그 분이 입적 하시기전에, 남기신 말씀이 제자들이 열반송 [큰 스님들이 남기시는 유언과 같은 말씀] 을 청하자, 제자들에게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라는 '열반송이 아닌 열반송을 남겼다. 오도송 [悟道訟 = 께달음의 경지를 이르는 말씀] 조차
역시 마찬 가지였다. "오도송인지, 육도송인지 그런거 없어" 또 한, 시자들이 맛난 음식을 해다가 공양시가에 올리면, 서암 스님은 "고목에 비료 줘바야 소용이 없다" 그것을 물리치셨다는 것이다. 그 분이 대한민국의 불교의 최고 큰 어른이신 종정까지 하신 분이시지만, 사심이 없고 평정심을 잃지 않고
우리 불교의 진흥을 위해서 평생을 불사를 하시다가, 열반 하신 분이시다. 그 분이 얼마나 청렴 하신가를 일께워 주는 실화 한 토막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서암 스님의 장 조카인 우리나라에서는 풍수 지리학의 대가이신, 송왕의 박사님과 안동 촌노와는 불과 300 미터 거리인 곳에서, 한 동네에서 태어나고 같이 자란 분이다.
나이로는 그분이 저 보다가는 아래이기에, 형님과 동생으로 친한 사이입니다. 송 박사가 서암 스님 [송박사의 친 삼촌] 의 장 조카이고, 평소에 큰 스님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은 분이다. 서암 스님이 봉화 무위정사 [無爲精舍] 에 계시면서 병환이 위급한 상태일때, 전라도 어느 절에서 제자들이 귀한 산삼을 3 포기를
[30 년정도로 추정] 산삼을 산에서 직접 채취한 것을, 서암 큰 스님에게는 직접 드려보아야 퇴짜를 맞을 것이었기에, 큰 스님의 장조카 [송 박사] 를 통해서 큰스님께 보내드렸더니, 큰스님께서 장 조카를 보고서 노발 대발 하시면서, 너는 어째서 이런 것까지 심부름을 하느냐고 나무라시면서,
그 산삼을 본래의 주인들에게 돌려 주라고 해서 그 것을 돌려 주로 가는 도중에 송 박사가 저의 집에 들려서, 그 산삼을 저는 직접 평생에 처음 보는 신귀한 것이라서 송 박사에게, 허락을 받어서 저가 직접 사진을 촬영 하여 둔 일이 있었고, 그 산삼은 본래의 주인들에게 돌려준 것입니다.
그 때 큰 스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나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갈 육신이고, 그 것은 나에게는 다 필요가 없는 물건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 것을 본래의 주인에게 너가 돌려주고, 그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만 해도, 어릴적에 서암 큰 스님과
저의 부친과는 윗대 선친 어른들의 친분으로 [같이 독립 운동을 하신 것 때문에] 서암 스님이 젊은 시절에 맏 형님 [송 박사의 부친] 을 뵈오려 오실적에는 [동안거 하안거 하기전] 꼭 저의 집에 들리셔서, 저의 아버님과 담소를 나누시고 가신적이 계셨고, 저가 여러번 뵈옵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우리 불교 현대사에 크나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시라는 것이 저는 한편으로 감개가 새롭습니다. 서암 대종사님에 대한 그 분의 일대기는 그분을 가까이 모신분들이나, 제자분들인 스님들이 엮은 책을 보시면 잘 아실 것입니다. "본무생사" [本無生死]라, "삶과 죽엄은 본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태어날적에도
빈손으로 이 세상을 온 것이고, 죽을때도 가져갈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그리 집착 하는 것인가? 지금 참선을 하고 도를 닦고, 중생을 구제해야 스님들이 정치에 개입하고 감나라 포나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고, 성경의 말씀을 따라야 할 성직자들이 정치가 어떻고 하면서,
권력과 물질에 노예가 되어서, 세속의 더러운 똥 물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을 볼 적에는 참으로 한심 하다기 보다가, 이 세상이 말세로구나 하는 생각이 어찌, 저만의 생각이겠습니까? 사회의 질서와 힘의 균형을 받추어 주는 것은 바로 종교이고,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도 역술원 역학 심리 상담사]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