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사태 그리고 우리의 안보와국방
이 글은 2013.1.22에 어느 방송을보고 즉흥적으로 쓴 글임을 밝힌다.
1.21사태라고하는 당시의 투항 무장공비였던 지금의 김신조 목사도 또 칼기 폭파범인 김현희도 방송에 출현하는 자유로운 우리 대한민국의 방송을 본다.
당시 살기위해서 투항을 했다는 지금의 김신조 목사의 말에는 어느정도 공감한다.그리고 1968년당시 자신들의 말단 혁명전위부대는 오로지 박정희 죽이기를위한 훈련을 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그리고 1970년을 기점으로 박정희의 남한과 북한 김일성의 체제 경제에서 남한이 북한을 추월했다는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땅에서 이미 45년을 살아온 그의 주장인 우리의 안보관이 1968년 그때보다 더 튼튼해 졌다는말에는 절대로 동의할수 없는것는 바로 노크귀순이다.귀순하러온 북한군 병사가 최전방 GP를 돌아다니면서 나 귀순하러 왔어요하고 문을 두드리고 알아달라고해도 아무도 관심을 안가지기에 권총을 발사하는 이 현실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이 문제는 얼마전 자주 방송에 나왔던 보위부출신 탈북중위 이철호가 생생히 증언했다.
김신조 일당은 1968년당시 25사단의(어느지역인지 알지만 혹시라도 군사비밀에 저촉될까봐)지역을 뚫고 낮에는숨어자고 밤에만 걸어서 결국은 눈덮힌 한겨울에 3박4일에 걸어서 청와대 앞까지 진출했지만 수경사에서 파병이던 전두환의 청와대의 경비대대에와의 교전에서 사살당하고 1명은 북으로 생환 1명은 투항이라는 사건으로 끝났다.지금도 청와대 뒷산에는 총탄자국이 선명한 소나무가 그날을 말해준다.
김신조 목사는 우리국방의 현실을 아직 너무도 모르고있다.북한의 특수부대가 강하지만 우리의 특수부대도 강하다고?서로의 병력수는 어찌되는가?노크귀순의 문제는 최전방에 근무하는 영관급에서 사단장까지의 지휘관들의 안보의식의 헤이감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보는데 현재 소령부터 사단장까지의 지휘관들이 과연 어느 시기에 위관급 영관급의 세월을 보냈냐이다.
바로 1998~2007의 10년의 좌파정부시절,서해에서 북한이 먼저 함포를 쏘더라도 절대로 대응하지말고 몸으로 밀어내라는 지시를 내리고 빨간 목도리 두르고 일본으로 월드컵 관광간 김대중과 이후 모든것 다 깽판쳐도 북한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우메한 노무현의 영향이다.
지금 우리군은 사령관(중장)부터 이등병까지 군기가 쏙 빠졌다.
이미 15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15년 10년전에 위관급 영관급 장교는 이제 영관급과 장성이 되어있는 현실이 아닌가?
좌파정권 10년의 영향은 이토록 두고두고 우리의 안보현실에 악영향을 미치고있다.
사령관이나 사단장은 정치권이나 육본에 안테나를 돌려놓은 상태로 자기직분을 다 하지않고 노후대책에 골몰하며,일이등병은 정치권에서 언제 복무기간을 줄여주느냐에만 목메달고 비상시에 집에 전화해서 엄마 전쟁난다는데 나어떡해해하고 징징대며,여성계에서는 자신들이 군대가자는 말한마디없이 군 가산점을 무조건 반대만하는 이 현실이 그저 한심스럽다.
안보와 국방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는것이지 타인의 힘이나 손을빌려서 할수있는것이 아니다.
적화통일을노린 김일성의 천추의한은 6.25,1.21,10.26,5.18그리고 김영삼 초청의 1994년의 김영삼 평양 방문약속이었다.만일 김영삼의 평양방문이 성사되고 이후 김일성의 서을 답방이 이루어 진다면,김일성은 남한에 퍼져있는 종북주의자들을 총 동원해 남한 스스로 적화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려 했다는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이러한 위기상황때마다 김일성은 기회를 놓쳤다.우리로서는 천운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적화의 기회는 우리 스스로의 붕괴와 내부 분열로서 그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특히 자유라는 미명하에 입법 행정 사법부는 물론 군대에까지,또 사회 곳곳에 종북주의자들이 창궐하는 지금의 우리나라는 해방직후보다 더 혼란스럽고 어수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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