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사태로 전국이 펄펄 끓어 넘친다. 언제나 그러하듯 어떤 사회적 이슈가 등장하면 이놈의 나라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 이념적 대립으로 맞선다. 그리고 정치적 파장으로 몰아가며 대갈빡이 깨지고 쌍코피 터지게 싸움을 한다.
채동욱과 혼외자식. 지극히 개인사다. 일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가십꺼리로 잠시 세인에 입에 올랐다 묻혀버릴 일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중대성은 범부(凡夫)의 범사(凡事)가 아니다. 이 나라 최고 공권력 하고도, 특히 티끌 같은 죄를 져도 그 죄인을 치죄하고 징치하는 기관의 수장이며 따라서 그 어떤 직책(職責)보다 도덕과 윤리성이 강조되는 직위(職位)인 것이다.
그런 인사의 부도덕성을 ‘조선일보’가 특종으로 보도한 것이다. 물론 사건의 결말은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보면 아직 물증은 확실하지 않되 100% 확신(?)범이다. 본인과 주위에서는 극구 부인을 하지만 그들의 행위. 행동. 행각 모두가 그런 추론을 하게끔 한다.
처음 이 사태가 여명을 뚫고 찬란히 떠오르는 햇살처럼 세상에 비추일 때 도하의 언론은 물론 지방의 찌라시까지‘조선일보’기사를 그대로 철자 받침하나 빠트리지 않고 송고 하거나 보도를 했다가, 채동욱의 고소고발(?)이라는 강공 수에 그만 꿀 훔쳐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한마디로 언론의 사명을 망각하거나 포기하며 쥐구멍으로 재빨리 숨고 만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나라 공권력의 최고 수장의 엄포에 뒤 꼭지가 간지러웠는지 무리지어 이번엔 하나같이‘조선일보’의 특종을 범죄시하는 기사와 좌담(특히 종편들...)으로 하루 종일 시간을 때운다.
그젠가?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채널A에 시선이 꽂혔다. 전라도 사투리를 짙게 구사하는 검사 출신의 어떤 변호사라는 자와 턱주가리와 구렛나루에 수염이 잔뜩 자란 시사평론가라는 자가 채널A가 깔아 준 멍석에 앉아 제대로(우리 속언에는 하던 GR도 멍석 깔면 못 한다고 하던데...)하고 있다. 즉 조선일보가 크게 잘못 됐다는 것이다.
이만의 사건? 난 이 사건의 개요를 잘 모른다. 그러나 두 친구가 주장하는 바는, 조선일보가‘이만의’사건에는 입을 다물고 채동욱 사건에는 사실과 다르게 특종으로 낸 것은 이중 잣대며 그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져야 할 것이라고 게거품을 물고 채널A라는 멍석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분노. ‘저거 미/친/凜들이다. 채널A 곧 망하겠다. 저놈들 봐라! 아니 조선일보가 남의 혼외자식 들추는 전문 언론인가? 그리고 저희들은 그런 사건이 있었다면 특종으로 왜 못 다루지?’어디까지나 내 혼자 길길이 뛰며 흥분한 것이다. 조선일보를 편들자는 게 아니다. 삼척동자도 사건의 추이 흐름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유추가 가능하다. 그래도 한 때는 조선일보와 함께 이 나라 민족지로 언론으로 사명을 다 했던 동아일보(채널A, 난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하는‘막일꾼’선배님께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가 저런 허접한 놈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며 채동욱의 공갈포를 피해 나가는 그 모습이 비굴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채널A에만 국한 된 것일까? 도하의 모든 신문과 찌라시 그리고 모든 지상파와 종편이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채동욱의 공갈 포에 겁먹은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 그것을 충족 시켜 주는 기관이 언론이다. 타 언론의 적확한 특종에 박수와 찬사는 보내지 못할망정 오히려 국민의 사명은 망각한 채 형편없는 놈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며 동업자인‘조선일보’특종을 폄훼하고 심지어는 질투까지 하는 언론사들이 과연 언론의 기능과 사명을 다 하고 있는가? 그래서‘비굴한 우리 언론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런 것들....
덧붙임,
채동욱과 이만의 사태를 착각 하는 놈들에게....
이만의는 확인 소송에 응했으며 그 사건(혼외자) 후 대갈빡 깊이 숙이고 사죄를 했다는 것이고
채동욱은 오히려 권력을 앞세워 공갈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이 국민정서를 건드린 것이다.
첨부터 이실직고 했으면 검찰총장의 밸트 아래 사건은 개인사로 묻힐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