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가장 숨가쁜 사회변혁의 혁신을 주도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사건건 반대를 일삼았던 장준하가 있다. 장준하는 5.16혁명이 일어나자 자신의 사상계에 극도의 존경심을 드러낸다. 장준하는 " 5.16 혁명(革命)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無秩序)와 공산주의(共産主義)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 군사혁명(軍事革命)이다. 따라서 5.16 혁명(革命)은 우리들이 육성하고 개화(開花)시켜야 할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이념(理念)에 비추어 볼 때는 불행한 일이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위급한 민족적(民族的) 현실(現實)에서 볼 때는 불가피(不可避)한 일이다."라며 당시의 5.16혁명의 당연함을 역설했었다.
좌파들은 교묘하게 조작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로 매도하고, 장준하는 당대의 항일독립투사로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좌파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다까기 마사오”를 앞세워 당대의 친일파로 만들려 노래를 불러왔지만, 장준하의 창씨개명 “치요모토 슌가와”는 철저하게 숨겨왔다. 그런다고 장준하의 호적에 버젓이 올려있는 “치요모토 슌가와”를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과연 장준하가 대단한 항일독립운동가로 칭송받을 이렇다 할 공로나 또는 그에 비견되는 혁혁한 활동을 했는가를 살펴보면 독립운동가 소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시의 모든 민초가 고통 속에 암흑의 세월을 견딜 때 장준하는 그나마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대척점에 서려 했던 장준하 너무도 달라 보이는 두사람이다. 그러나 한살의 나이차이로 암흑의 시대 일제시대를 지성인으로 살아오며, 치열한 자기투쟁을 통해 단련한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대 그나마 주어진 조건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노력했던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배운 지식이 훗날 박정희, 장준하 모두 조국재건을 위한 도움이 되었다. 박정희와 장준하 두사람의 삶의 과정이 놀라우리만큼 닮아 있다. 다만 박정희는 그를 임신한 어머니가 입이라도 하나 덜고자 낙태를 위해 간장바가지를 들이킬 정도로 가난했지만, 장준하는 한학에 조예가 깊으면서 일찍이 개화되고 신학문에 눈을 뜬 조부가 있었고, 그런 조부는 장준하의 아버지를 당시 엘리트였던 목사로 키웠다. 또한 장준하의 조부는 사비를 털어 학교를 세웠을 정도로 재력있는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정반대이다.
박정희와 장준하 모두 일본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으며, 중등교사로 재직했다. 단 일본식 교육을 받은 과정이 다른 것은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일본육사에 진학했지만 장준하는 유복한 집안을 등에 업고 일본으로 유학가서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의 민초가 일본으로 유학간다는 것은 대단한 경제력과 배경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장준하는 신학을 공부했고, 박정희는 군사학을 공부했다. 신학은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교육 받을 곳이 많았고, 신앙생활을 통한 독학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군사학은 식민시절 일제교육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박정희는 만주군관 졸업 후 임관하여 만주국 군인이 되어 부대장의 부관으로 있다 해방을 맞는다. 장준하는 학도병으로 일제국군대에 자원입대하여 근무하다 탈출 후 광복군에 몇 개월 훈련받다 광복을 맞는다. 장준하의 자원입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장준하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원입대임을 고백했고, 장준하와 절친했던 고향친구인 최기일은 장준하가 동경신학교 재학 중 일본군에 입대하려 하자 이를 만류하였지만 자원입대했다고 증언까지 하고 있어 장준하의 일제국군대 자원입대는 논란의 여지가 끼여틀 틈이 없다. 특히 최기일은 “그는 어떤 뜻을 품었는지 일본군에 입대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회고 하고 있어 매우 자발적인 자원입대였음을 알 수 있다.
좌파들은 장준하가 자원입대했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숨기며, 장준하의 탈출을 놓고 광복군이 되기 위해 “탈출을 위한 기획입대”였다고 진실까지 왜곡하고 있다. 일제국군대에 자원입대하여, 훈련을 받고 전장터에서 몇 개월간 근무하다 탈출하는 것보다, 장준하의 본가가 있는 압록강 연안의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압록강만 건너면 중국이고, 국경을 넘어 광복군을 찾아가는 것이 손쉽고 손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좌파가 주장하는 장준하의 “기획탈출”은 언어도단이자 매우 불손한 진실왜곡인 것이다.
일본군대를 탈출하여 중국이 세운 군사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장준하는 독립이 되던 1945년 2월에 광복군에 편입되어 합류하지만 “차라리 다시 왜군에 항복해서 임시정부를 폭격하러 오고 싶습니다”라고 스스로 울부짖을 정도로 임시정부는 심각한 분열에 있어 실질적으로 장준하가 독립을 위한 투쟁이나 전투를 치를 처지도 되지 못했다. 이 후 장준하는 몇 개월간 미군 전략첩보대(OSS) 대원이 되어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대기하다 광복을 맞는다. 장준하의 실질적 독립운동은 전무한 것이다.
박정희와 장준하 너무나 다른듯 하지만 일제시대를 살은 두사람의 삶이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그런데 어째서 박정희는 친일파고 장준하는 당대의 항일독립투사로 진실을 왜곡하는지 그 뻔뻔함이 대단할 뿐이다.내일 지구종말이 와서 오늘 교회가서 한번 기도한다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박정희가 친일파면 장준하도 친일파이다. 박정희가 훈도였으면 장준하도 훈도였다. 일본식교육을 받은 왜놈정신을 가진 박정희라면 장준하도 왜놈정신을 배우기 위해 자비를 들여 유학까지 갔지 않느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