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하신지 30년이 훨씬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변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권 때 봇물처럼 “이승만 재평가” 쏟아졌지만 근대사의 주역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늘 인색하기만 하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가진 세력들은 입버릇처럼 그 시대 누가 되어도 박정희 대통령 만큼은 했다며 박정희 대통령 폄훼에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불길을 지펴 올린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김영삼과 김대중은 온갖 유언비어를 날조하며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었다. 그런 김영삼과 김대중은 IMF 사태와 신용대란을 일으켜 수많은 실직자를 양산했고, 가정경제의 붕괴로 사회의 기초인 가정이 파탄났으며, 숱한 자살자를 양산했다.
하루 세끼 먹는 것이 소원이던 절대가난의 시절 혹독한 시련을 견디며 투혼으로 산업화의 기적을 쓴 박정희 대통령에 비한다면 김영삼과 김대중 시절은 사회적 인프라가 월등하게 갖춰진 시절 이었다. 그런데 대체 그들은 무엇을 했기에 사상초유의 경제환란 사태를 일으켜 수많은 자살자를 양산하며 민초들을 고통속에 몰아 넣었을까. 그러함에도 누가 되어도 박정희 대통령만큼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천역덕스럽게 할 수 있는지 그들의 무지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광복을 맞이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할 때 까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식민국가에서 벗어난 신생국은 숱한 지도자들이 바뀌었음에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광복을 맞이하였을 때나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을 시작하였을 때나 역시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고 가난했고, 무지했으며, 사회는 불안했다. 광복후 20여년간 이루어 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18년간 집권하며 대한민국의 모든 사회시스템을 바꿔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자들의 공통된 화두는 독재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역사속 독재자인 후세인, 이디아민, 차우세스크까지 동원하여 악독한 독재자로 포장한다. 역사 속 악독한 독재자는 국민을 배불리 먹이지 않았고 교육시키지 않았다. 국민이 배가 부르고 똑똑해진다는 것은 독재자에게는 치명적인 독약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의 배고픔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신앙이었고, 교육시키는 것은 지상최대의 과업이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이러한 말도 되지 않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비방은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이 더했다. 허황된 이상론, 현학적 관념론에 사로잡힌 그 지성들의 무식과 몰상식을 통해 지식의 허영 보게 된다.
2002년 대한민국을 온통 빨갛게 물들인 한일 월드컵 열풍은 다시는 오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대한민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 놓은 히딩크는 하루아침에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은 히딩크는 영웅이 되기 전까지 국내 언론과 축구관계자들로부터 숱한 비난과 비아냥을 받아야만 했다. 평가전만 치루면 5:0으로 대패하자 급기야 별명이 “오대영”이 될 정도로 비난의 목소리는 극심했다.
대한민국은 역대월드컵 무대에서 단 한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다. 조별리그의 구색을 위한 참가자의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못했다. 그런 대한민국을 히딩크는 단번에 세계 4강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다. 히딩크가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며 대한축구협회에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시행작오를 하더라도 간섭하지 않겠다면 선택하겠다” 였다. 전권을 부여받은 히딩크 감독은 절대권력을 쥔 제왕으로 선수들을 훈련시킨다. 히딩크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허약한 체력이 첫 번째 개혁의 대상이었다. 체력적으로 월등한 유럽선수를 넘기 위해서는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이었다. 히딩크의 파워프로그램은 운동이 직업인 선수들의 입에 거품을 물고 살아야 할 정도로 혹독했다. 히딩크에게 항명은 곧 숙청을 의미했다. 따르지 않는 선수는 모두 내 쫒았다. 내노라 하는 실력파는 부질없이 히딩크의 독재아래 모두 숙청 되었고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듣도 보도 못한 선수들이 주전을 꿰찼다. 독재자 히딩크는 훈련이라는 말 대신 선수들을 조련한다는 말을 썼다.
국내여론은 혹독했다. “큰 돈주고 테크닉전수해달라며 데려왔더니 줄창 체력훈련만 시킨다” “이해할수 없는 선수구성과 전술운용이다” “월드컵이 코앞인데 큰일났다” “남의 나라돈만 등쳐먹고 엄한짓하는 이상한 노인네이다” 등 비난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함에도 히딩크는 결코 변명하지 않았고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축구계의 고질적인 악습인 혈연 학연의 연결고리도 모두 끊어 버렸다. 그런 히딩크는 세계를 깜짝놀라게 하겠다며 월드컵에 나섰고 세계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했던 당시의 처참한 사회 실상, 한번도 월드컵에서 승리한 적이 없는 초라한 국가대표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한목표를 가지고 혹독하게 끌고 갈 수 밖에 없었다. 히딩크 대신 누가 되어도 4강에 오를 수 있었을까. 히딩크 이전 수많은 감독들, 이 후 숱한 감독들이 히딩크를 대신하고 있는가.
2차대전 이후 산업화를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선진국도 힘들어 포기했던 조선, 전기, 전자,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등 주력산업을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한 시금석을 놓았다. 그렇게 박정희의 산업화는 중산층을 양산했고 탄탄한 중산층을 통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 국민을 위하여 노래를 부르던 이승만, 장명,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노태우가 박정희 대통령을 대신할 수 있었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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