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군대는 募兵制가 아닌 徵兵制이고 병역은 4大 국민의무 중 하나이다. 남자에겐 必須고 여자는 選擇이다.
요즘 국회에서 여성가족위 의원들이 또 軍 加算點을 반대하고 나섰다. 제발 군대가 무엇인지 좀 알아라. 군대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적과 싸우는 집단이다. 내가 살기 위해 적군을 죽여야 한다. 적도 마찬가지이다. 즉 생명을 내 놓는 것이다. 그러면 왜 그래야 하는가? 내 가족 내 국민 내 영토를 위해서다.
군대의 속성은 이렇다. 군대는 헌법이 보장한 폭력을 행사하는 機關이며 人員이다. 그곳은 오직 승리만이 善이며 패배는 곧 惡이다. 그러므로 승리를 위해선 최선의 전투력을 유지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욕망과 자유는 일단 留保해야 한다. 그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즐거운 군대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다.
대한민국 남자는 그 고통을 누구나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개중에 避치 못할 사정이 있어 이 통과의례를 면제해야 하는 境遇가 발생한다. 그것을 병역특혜라고 부른다.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표현이고 군필자에게는 모욕적인 言辭이다. 혜택이란 의무완성자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免除자에게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用語에서부터 불평등이 발생한다.
남자는 군대얘기만 나오면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이 글도 좀 길어질듯 싶으니 양해하시고 읽기를 바란다.
1. 衡平性
加算點 반대자들은 衡平性을 제기한다. 형평은 平等과 그 개념이 좀 다르다. 형평의 衡은 저울을 말한다. 그러므로 형평은 각자의 무게만큼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군필자의 대접은 형평도 아니고 평등도 아니며 거의 逆차별에 가깝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고통은 팔자소관으로 치고 일단 제껴두자. 時間을 따지자. 나는 만 3년을 服務했다. 제대하고 취업을 하고보니 군대 안 간 내 동기생은 진급하여 代理가 되어 있었고 나는 그의 하급자다. 이게 무슨 얄궂은 운명인가? 그래서 군인은 어둠의 자식이고 군대는 썩는 곳이라고 한다. 전직 어느 대통령이 한 말인데 꽤 설득력이 있다. 이것은 형평도 평등도 아닌 차별인 것이다.
다시 형평을 말해보자. 작은 발에 큰 신발을 큰 발에 작은 신발을 주는 것은 差別이고 큰 발 작은 발 가리지 않고 똑 같은 신발을 주는 것은 同等이다. 발의 크기대로 신발을 주는 것은 平等이며 處地에 따라 구두, 운동화, 등산화를 골라 주는 것이 衡平이다. 그러나 지금의 군필자 대접은 작은 발 큰 발에 다른 신발을 주는 차별이다.
2. 資質
그 월남병장은 오락시간에 태권도 품새를 試演하여 인기를 끌었고 그것은 그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태권도 師範이었다. 그의 가격솜씨는 절도가 있었고 정확했으며 나의 부러진 어금니는 그의 발차기 産物이지 싶었다. 그가 제대할 때까지 그와 나는 친형제처럼 잘 지냈다. 이런 경험 등에서 남자는 인간성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다. 이명박 정권은 병역미필정권이라고 불린다. 천안함사태 때, 안보관계장관회의 참석자의 90%가 병역미필이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때 그들이 지하 벙커에 숨어서 숨 죽이고 내 놓은 대책은「예단 말라」「확전 말라」였다. 병역미필 어느 당 원내대표는 보온병을 포탄 탄피라고 해서 세상을 즐겁게 했다. 이것이 병역미필자들의 限界라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3. 錯覺
가산점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이렇다. 그것은 기회균등에 反하고 그래서 헌법정신에 위배되며 가고 싶어도 형편상 못가는 자들의 權益을 무시하는 처사다. 말들은 참 매끄럽고 妖邪스럽다.
우리가 미필자들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그 면제事由의 行態이다. 성한 이빨을 뽑고 손가락을 자르며 考試공부하느라 군대를 못 갔다고 한다. 어느 권력자는 이미 入隊한 아들을 불러내어 허리 MRI사진 한 장으로 공익근무를 배치 받았다. 그런데 그 계통의 권위 있는 의사는 그 영상이 절대로 본인의 것이 아니라며 만일에 그것이 사실이면 감옥을 가겠다고 한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이 사회要職을 占領하고 군필자들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들에 비하여 군필자들은 우직하고 우매하여 術數를 부리지 못하고 끽소리도 못하며 참고 산다. 그들은 또 주장한다. 군대를「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면 된단다. 세상에! 가고 싶은 군대라? 그런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유토피아에도 없다. 그것은 가고 싶은 교도소를 찾는 것과 같다. 이 말에서도 그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바꾸어 말하면 군대는 가기가 싫어 안 간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이런 꿈을 꾼다. 옛날에 제대한 내가 다시 입대하여 군대 생활을 하는 꿈과 내일 모레가 시험인데 준비 하나 없어 부랴부랴 친구들의 노트를 빌어 筆記하는 황당한 그런 꿈을.
그것들이 나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웠고 힘들었으면 30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 지워지지 않고 나타나는가? 다른 기억들은 말랑말랑한데 그 기억은 내 머리 속에 化石이 된 것이다.
그들은 同等을 衡平으로 착각하여 논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편다.
그러면 한 번 물어 보자. 군 가산점제도를 강력히 비판하는 어느 여성단체의 한 엄마가 그의 아들은 징집되어 군대를 갔고 딸은 志願하여 군대를 갔다. 그런데 이웃집 아들은 어찌어찌하여 군면제가 되었다. 이래저래 배가 아파 죽겠는데 그의 아들 딸이 제대하여 취업을 하려고 하니 가산점이 없다. 이래도 그는 군 가산점을 강력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안 된다고 주장하겠는가?
그것은 이런 심리와 逆으로 비슷하다. 어떤 낚시꾼이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그는 마냥 즐거웠다. 왜? 옆의 낚시꾼이 월척의 고기를 끌어 올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놓쳤단다.
착각은 자유지만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황새의 다리를 잘라 뱁새에 붙여주는 것이고 산을 허물어 골을 메우는 처사이다.
4. 結論
군 가산점은 매우 합리적인 제도이다. 그것이 억울하다면 군대 안가는 나라에 移民을 가면된다. 올바른 나라에서 品格있는 삶을 살려면 의무를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것은 공동체의 삶에서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인 것이다.
가산점 주는 것이 그렇게 억울하다면 내가 제안한다. 그래! 군필자에게「加算点」을 주지 말자. 대신 군미필자는 스스로「減算点」을 빼라! 즉 "노블레스 오블리제" 이것을 실천하란 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노(No) 군대!, 오(Oh) 해피!」가 만연되어 나라가 기울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군미필 대통령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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