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5천년 역사 가운데 가장 암울한 역사의 뒤안길을 박차고 일어선 혁명가 박정희. 변명거리일 수도 있는 지정학적 민족의 운명을 고민하며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이라면 박정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하는 데 일본은 100년, 미국은 180년, 영국은 200년이 걸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1961년부터 1997년까지 단 36년 만에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그 1만 달러 소득 달성의 중심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민족의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끊임없는 대륙 세력과 섬나라의 침략에 시달리며 적절히 견제하는 틈바구니에서 지속돼 온 가난으로부터의 자유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이러한 명제는 근대 한국 정치가들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사명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들은 이러한 민족의 운명을 해결하지 못했다. 사적(私的)인 자기인식으로 정치적인 입지구축과 자리 보존에만 혈안이 되어 여전히 이념의 과잉, 정책과 지도력의 빈곤으로 권력지향 시민단체에 의존하여 기존질서 파괴하고 해체하는 데 골몰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했을 뿐이다.
사실 정치적 라이벌이라고 하는 YS와 DJ도 박정희가 보여준 철학과 비전, 국가관리 능력은 물론, 도덕적. 윤리적 수준면에서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목표들을 흐려놓았으며, 정치적 편의에 의존함으로써 자신들의 개인적 목표와 이익에 관련되어 있는 부정자금을 조달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여기에 일부 대중들의 변덕스러운 조급성,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정치인들과 일부 시민단체, 그리고 무책임한 일부 대중매체들이 가세해 도덕적 해이와 사회기강의 문란에 한 몫을 담당해 왔다.
어쩌면 DJ의 '제2의 건국' '햇볕정책' 등 거대 담론과, YS의 '역사 바로세우기' 등 큰 그림에만 집착했던 것도 영웅 컴플렉스에서 나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런 영웅 콤플렉스 이면에는 박정희에 대한 정치적인 르상티망과 맞물린 열등감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영웅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지도자는 남다르게 일에 대한 열정, 책임감, 통찰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박정희에게는 이런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경제개발계획 성공적 추진은 그 연장선에 있다.
지도자의 철학과 영도력은 중요하다. 그들은 한국 경제가 성장한 것은 박정희의 영도력 때문이라기보다 국민이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억지를 부린다.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고도성장이 이루어진 것이지, 박정희가 잘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국민들이 게을렀기 때문이라는 것도 된다. 이런 주장은 북한 경제가 낙후한 것은 김일성의 위대한(?) 영도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가 게을렀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력이 후대까지 빛을 내고 있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설계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부국강병의 길목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 운동,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화학 공업 육성책 등은 물론 자주국방에 대한 신앙심에 가까운 선택과 집중은 안보의식 고취와 세계경제대국의 반열에 이르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 설계가 원대해서 신앙인지, 신앙이 투철해서 설계가 큰 것인지 가름하기 어렵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대한민국 건설의 설계는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군(軍) 정풍(整風)에서 시발된 5・16혁명은 어쩌면 시대적인 요청이었을지도 모른다. 공산주의와 대립하며 전쟁으로 폐허상태임에도 우왕좌왕했던 당시 정치권에 대한 준엄한 국민의 고발도 한 몫했다. 반목과 불신감의 냉소주의로 인한 혼란과 분열, 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땅에서 가난과 굶주림의 고통 등 만연된 패배주의는 국민들의 삶의 의욕마져 상실시켰다. 이런 때 '우리도 할 수 있다' '잘 살아 보자'는 자신감을 심어준 지도자가 바로 박정희었다. 그것은 반만년 역사의 가난을 벗겨버리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 이념은 민족증흥이었다. 그 본질은 의식구조 개편과 새로운 가치관 정립을 추구하는 자기개혁의 행동철학을 강조하는 정신혁명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5・16혁명은 그 시발이었다. 여러가지 아젠다 중에 큰 틀에서 보면 특히 '경제개발 5계년 계획' '국민교육헌장' '새마을 운동' '서정쇄신' 등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관심과 연구대상이 될 정도였다. 실제로 오늘날 중국 부흥의 초석을 깔았던 등소평이 추진한 개혁 개방정책과 실용주의 경제정책은 박정희를 모델로 했다는 것이 관련학자들의 견해다.
우리는 박정희를 영웅(英雄)이라고 부른다. 영웅은 세상을 보는 안목과 통찰력, 목표를 향한 탄탄한 설계와 집요한 의지, 당당함과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꼿꼿한 정신과 추진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숱한 고난에서도 끝까지 국민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도 있어야 한다. 영웅은 그 시대가 뜻하고 갈망하는 것을 파악하여 현실로 이루어내는 인물이다. 영웅은 훌륭해 보이는 공론조차도 그 속에 갖가지 허위가 담겨 있음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고, 모든 담론은 물론 반대와 저항을 무릅쓰며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한다.
박정희는 5・16혁명을 전환점으로 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땅에서 가난과 굶주림의 고통에서부터 패배주의에 젖어 실의에 빠진 대한민국의 방향을 틀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했던가?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박정희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스스로 불가마속으로 뛰어 들었다. 당당하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했던 혁명가 박정희, 우리는 대한민국 제2 도약을 향한 선택의 길목에 서 있다. 박정희와 5・16 혁명 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