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중 자신의 함대를 해산하고 모든 전선을 자침시키고 도망다녔던 원균은 단 한번도 독자적인 전투를 한 적이 없었다. 이순신 장군 함대에 빌붙어 먹으며 목숨이나 구명하던 불쌍한 원균이 드디어 선조와 합작으로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고 탄핵하는데 성공한다.
원균이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던 방법 중 하나가 이순신 장군은 겁쟁이 이며, 왜적이 무서워 전투를 회피하고 있다며 장계를 올려 모함했다. 자신이 삼도수군통제사라면 단숨에 부산포로 진격하여 적을 섬멸하고 전쟁을 끝내겠다며 병법의 병자도 모르는 선조 이연을 현혹하여 왔었다.
그런 원균이 해군참모총장이 되어 독자적인 첫 전투를 벌린다. 원균 옹호론자들이 그토록 게거품 물고 떠들어대는 이름하여 “기문포해전”이다. 참으로 추접스러우며, 치욕스러웠던 기문포 해전의 서막은 원균이 가진 본성의 비열함으로부터 태생적으로 잉태되어 있었다.
전쟁영웅 이순신을 어떻게든 제거해야 했던 서자출신 군왕 선조 이연은 해군참모총장으로 부임한 원균의 승전 소식을 누구보다 눈빠지게 기다리게 된다. 이순신 장군이 승리했듯 누군가 승리만 하여 준다면 이순신 장군의 탄핵의 명분이 충분이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원균의 첫 승전보가 전해지자 입이 찢어져 귀에 걸리게 된다. 1597년 3월 25일 선조실록에 원균에게 후한 상을 내리라고 비망기를 내린다.
비망기로 우승지 정광적(鄭光績)에게 전교하였다. “통제사 원균(元均)이 임명을 받자마자 곧 무용(武勇)을 떨쳐 적선 3척을 포획(捕獲)하고 수급(首級) 47급을 바쳤으니 매우 가상하다. 원균과 공이 있는 사람을 즉시 논상(論賞)하고, 혹 관원을 보내 호군(犒軍)하여 장사(將士)들을 격려할 일을 의계(議啓)하라. 그리고 적의 수급과 계본(啓本)을 가지고 온 사람도 아울러 참작하여 논상할 것으로 비변사에 말하라
목빠지게 기다렸던 원균의 승전보에 얼마나 안달이 났는지 왜적의 수급을 배달한 배달부에게까지 후한 상을 내리라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둘때마다 그토록 옹색하게 굴던 쫀쫀한 좁쌀 선조 이연은 원균 앞에서 한없이 통이 커진다. 선조의 기쁨도 잠시 즉시 비변사에서 원균의 승전에 이의를 제기하며 방정맞게 촐싹거리던 선조에게 제동을 걸게 된다.
같은날 선조실록에 비변사가 선조에게 반발하는 기록이 남는다.
“원균이 바친 수급이 만약 나무를 베러 왕래하는 왜라면 쳐들어와서 사람을 죽인 왜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장(諸將)을 독려하여 역전(力戰), 참획(斬獲)한 그의 공이 참으로 가상하니 논상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으나, 중대한 일인 은명(恩命)은 신하가 경솔히 의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관하(管下)의 공이 있는 사람들은 군공을 마련하여 장계하기를 기다린 뒤에 상전을 거행하시고, 호군(犒軍)에는 따로 사신을 보낼 것이 아니라 한효순(韓孝純)으로 하여금 가서 궤유(饋諭)하게 하는 것이 무방하겠습니다. 계본을 가지고 온 가설 판관(加設判官) 이익경(李益慶)은 승서하고 수군 김영추(金永秋)는 면역(免役)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균에게 큰 상을 내리려던 선조 이연에게 찬물을 끼얹게 되는 사연을 들어보면 기가 막히게 된다. 당시 원균의 전투가 어떠했는지 도원수 권율이 선조 이연에게 올린 장계에서 원균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행으로 얼룩진 기문포 해전의 진상이 드러난다.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의 치보(馳報)에 ‘3월 8일 왜선(倭船) 대·중·소 3척이 거제(巨濟) 기문포(器問浦)에 와서 정박(定泊) 상륙(上陸)하였다 하기에 통제사(統制使)가 즉시 주사(舟師)를 거느리고서 일시에 발선(發船)하여 밤새도록 노를 저어 9일 이른 아침에 기문포에 당도하여 보니, 왜선 3척이 해안(海岸)에 매여 있는데 왜적은 모두 상륙하였고, 산기슭 사이에서 밥짓는 연기가 잠시 일어 나는 중에 왜적 3∼4명이 칼을 번뜩이며 언덕 위에 서 있었다. 통제사가 항왜(降倭) 남여문(南汝文) 등을 보내어 이해(利害)로 회유(誨誘)하게 하였더니, 숨어 있던 왜적 20여 명이 나왔고, 남여문이 왜추(倭酋)와 조용히 담설(談說)하자 숨어 있던 왜적이 다 나왔는데 대개 80여 명이었으며 우리 주사(舟師)의 성대한 위용(威容)을 보고는 엄습을 받을까 의심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였다. 안골포 만호(安骨浦萬戶) 우수(禹壽), 고성 현령(固城縣令) 조응도(趙凝道), 거제 현령 안위(安衛) 등이 탄 배가 다투어 올라가서 항복을 받으니, 장왜(將倭)가 그 무리 7명을 거느리고 와서 통제사의 배로 올라갔다. 통제사가 그에게 술을 주고 배를 타고서 떠날 것을 허락하니 왜적들은 생환(生還)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여 죽 늘어서서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무수히 치사(致辭)하고는 저희 배 있는 데로 내려가서 두 배에 나누어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돛을 달려는 즈음에 통제사가 먼저 지자총통(地字銃筒)을 쏘고 지휘기(持揮旗)를 흔들며 적각(笛角)을 급히 부니, 제선(諸船)이 앞을 다투어 공격하였다. 조응도(趙凝道)가 탄 배는 다른 배보다 상당히 빨라 먼저 적에게로 달려 들어가서 적선을 공격하니 왜적 20여 명이 조응도의 배로 올라와 싸웠는데 조응도와 사부(射夫)·격군(格軍) 등 적의 칼날에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였으나 혹은 물로 뛰어들어 헤엄을 쳐서 나오기도 하고 혹은 다른 배에 구제되기도 하여 살아난 사람이 많았다. 적의 칼을 맞고 물로 뛰어든 조응도를 우수(禹壽)의 배에 건졌으나 잠시 뒤에 죽었다. 적들이 그대로 조응도의 배인 고성(固城)의 배를 타고서 노를 저어 북쪽으로 달아날 때 제선이 포위하여 지자 총통과 현자 총통(玄字銃筒)을 계속 쏘아대니 좌우의 방패(防牌)가 총에 맞아 다 떨어졌고, 화살이 비 오듯 하니 왜적은 허둥대며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임치 첨사(臨淄僉使) 홍견(洪堅), 흥덕 현감(興德縣監) 이용제(李容濟)로 하여금 당화전(唐火箭)과 송거(松炬) 등으로 적선에 불을 지르도록 하여 왜적들이 모두 배에서 뛰어내려 육지를 향해 헤엄칠 때 사살하고서 그 시체를 건져 목을 벤 것이 도합 18급(級)이었다. 변험(辨驗)하여 통제사에게 보내어 수송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권율의 장계에 의하면 섬에 상륙하여 땔감을 구하는 노무병을 발견한 원균은 귀화한 왜적을 노무병에게 보내 안심시키고 원균의 배에 태워 술까지 주며 안심 시킨 뒤 살려 주겠으니 돌아가라고 허락한다. 살려 준 것에 감사하며 배에오른 노무병부대에 갑자기 대포를 쏘며 공격하자, 화가난 왜적의 노무병 20명이 고성군수 조응도의 판옥선에 올라 전함을 탈취하고 배안의 조선군을 무참히 살육하자 조선군 몇몇은 바다로 뛰어들어 탈출하게 되지만 함장 조응도는 노무병에게 죽음을 당하게 된다. 결국 원균은 노무병에게 탈취당한 판옥선을 공격을 가해 노무병 전부를 죽이고, 판옥선까지 탈취 당해 아군의 화력에 불태우게 된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 중 단 한척의 판옥선도 침몰 시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원균은 첫전투에서 노무병 20명에게 배를 탈취 당하고 100명이 넘어가는 조선군과 함장까지 몰살을 당하고 전선 1척까지 불타게 된다. 전투도 비열하게 했지만 적 32명을 베고 아군은 함장과 100여명의 군사가 몰살 당한 것이다. 과정도 비겁했고, 결과도 참혹했다. 이런 전투를 원균은 사기를 쳐서 승전을 거두었다고 난리법석을 피운 것이다.
문제는 당시 왜와 명은 강화회담을 위해 휴전 중이었고, 벌목을 하던 노무병은 경상우도 절도사 김응서가 통행증을 만들어 주어 나무를 베게 허락한 노무병들이었다. 당시 경상우도 절도사로 있던 김응서가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보면
중략 ..... 해중(海中)에서 나를 만나 말하기를 「공문이 없으면 조선 주사가 만나는 대로 쏘아 죽인다 하니 표문(標文)을 만들어 주면 위급할 때 빙거(憑據)로 삼겠다. 」고 하기에 조선국 첨지중추부사(朝鮮國僉知中樞府事) 요시라(要時羅)의 하인이 재목(材木)을 베어 올 일로 옥포(玉浦) 경내(境內)로 가니 금하지 말라는 것으로 서명(署名)하여 보냈는데, 조선 병선(兵船)은 통문(通文)을 무시하고서 이들을 유인해다가 모두 죽였으며, 또 죽도(竹島)의 왜 32명을 조선 주사가 선상(船上)으로 초치(招致)하여 술을 접대하며 거짓 후대(厚待)하였으므로 왜인들은 전혀 낌새를 느끼지 못하고 안심하고 배를 타고 돌아올 때 조선의 제선(諸船)들이 불시에 포를 쏘아 죽도의 왜를 다 죽였으니.... 중략
기문포 해전에서 32명의 왜구 수급을 취한 원균은 15명의 다른 왜적을 유인하여 수급을 베어 총 47두의 수급을 선조에게 바치며 승전했노라 사기행각을 벌린 것이다. 그것에 부화뇌동한 선조 이연은 원균에게 상을 주겠노라 촐랑 거리다 비변사에게 제동 걸리고, 권율과 김응서의 보고에 개망신을 당했다. 하기사 선조 이연 개망신이 한 둘이어야지.
원균을 옹호하는 자들이 주구장천 원균의 승전이었노라 사기를 치고 다니던 기문포 해전의 실상은 수치스러운 정도이다. 이 전투에서 원균의 교활함과 비겁함, 전공을 탐닉하던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문포 해전의 실상 앞에 무슨 명목으로 원균을 맹장이니 명장이니 미사여구를 붙일 수 있는지 그들의 정신세계는 필시 정상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