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전선(戰船)을 가지고 수 백척의 일본 수군하고 싸우겠다고 하니까
임금은 이순신 장군에게 즉각 수군(水軍)을 버리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때 장군이 임금에게 간청했다.
“제가 비록 보잘 것 없는 미미한 신하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저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음으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적의 수군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제발 싸우게 해주십시오.”
이순신 장군 바로 밑 장군인 경상우수사 배설(裵楔) 등 부하들이 12척 밖에 없다고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판국에 장군은 오히려 12척이나 있다고 하면서 싸울 기회를 달라고
임금에게 간청한 것이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국가존망의 위기 속에 사기가 크게 떨어진 패잔병들을 수습해 기적과 같은 명량대첩을 성취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장병들의 분투(奮鬪)를 이끌어 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울돌목전투) 하루 전에 수많은 적선(敵船)이 침입하고 있다는 척후(斥候) 보고를 받은 후 부하들을 모아 놓고 비장한 각오를 피력했다.
“반드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고(必死則生),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生則死).”
실제 전투에서도 장군의 기함(旗艦) 단독으로 약 1시간 동안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부하들의 동참을 유도했다.
이순신 장군은 긴박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명량대첩이라는 천혜의 요지를 전쟁터로 선택하고, 철쇄의 활용 등 최선의 작전계획을 신속하게 마련하여 적의 침략을 저지했다.
1597년 8월 18일 장군은 회령포에서 12척의 전선(戰船)을 인수 한 후 9월 16일에 명량해전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 달도 안되는 기간에 그것도 곽란(癨亂)으로 인한 통증과 인사불성에 시달리면서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최선의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장군은 이러한 위기를 닥칠 경우를 염려해 오래 전부터 명량해협(울돌목)이 적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지임을 알고 이곳을 이용한 최선의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이다.
장군은 명량해전 하루 전에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1,000명을 두렵게 만들 수 있다.” 라고 격려 하면서 부하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여기서 장군의 솔선수범, 용기, 열정과 몰입, 유비무환 정신 등 고루 갖춘
리더의 핵심역량들을 모두 다 엿볼 수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군인으로서 전략의 탁월성이 더 돋보인다. 장군의 전략이 뛰어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항상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싸운다는 점이다.
실제로 울돌목에서는 적선 일본 배가 아무리 많아도 몇 척 이상 못들어 온다는 점을 파악해 냈다. 결과적으로 장군은 전략적으로 울돌목을 선택한 것뿐만 아니라 물살의 흐름 같은 자연 조건 까지 다 이용했다는 점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훌륭한 지휘관은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싸운다.
이순신 장군의 유비무환 정신으로..
일본 연합함대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세계 5대 해전 중 하나라고 불리우고 있는 쓰시마 해전은 어처구니없게(?)도 이틀 만에 러시아 발틱함대의 완패로 끝났다.
결과는 러시아 군함 26척이 격침ㆍ나포됐으며, 5,000여명이 전사하고, 러시아 제독을 포함해 6,0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
일본군 병원에 입원한 러시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자신을 찾아온 도고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상대였으니 패자가 된 것이 부끄럽지 않소” 당시 도고 제독은 ‘동양의 넬슨’ 즉 일본 국민들이 넬슨처럼 도고 제독을 군신(軍神)이라 칭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고 제독은 “나도 그렇고 영국의 넬슨은 군신(軍神)이라고 할 정도의 인물이 되지 못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뿐이다.
나는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하사관도 안된다. 나를 넬슨에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순신 장군에게는 비교할 수가 없다”라고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朗)의 ‘언덕위에 구름’ 이라는 저서가 있다.
일본에서는 웬만한 사람은 다 읽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어떻게 일본의 현대식 해군이 태어났고, 어떻게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이겼나?’ 하는 일본의 해전사(海戰史)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세계 제일의 바다의 장군이라고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순신은 토요토미 군대가 조선에 침입했을 때 해전에서 이들을 멋지게 물리친 조선의 명장(名將)이다.
이순신은 당시 조선의 문무관리들 중에서 가장 유일하게 너무도 청렴한 인물이였고, 군사통제와 전술능력, 충성심과 용기에 있어서 실로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이상적인 군인이였다.
영국의 넬슨 제독 이전에 바다의 명장이라고 하면 이순신을 빼놓을 수 없고, 유감스럽게도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서는 잊혀 버렸지만, 일본인들은 그를 존경하여 이순신의 업적과 전술을 연구하였다’
말 그대로 당시 조선은 이순신을 잊어버렸지만, 왜(倭)는 적장인 이순신 장군을 연구해서
그 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이기고 결국은 다시 대한제국까지 삼켜버렸다.
결과적으로 조선을 정벌했던 왜군들이 적장을 군신(軍神)으로 존경하고 더 나아가
벤치마킹하여 오늘날 그 후손들이 세계제일의 해군력으로 키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무엇을 배우고 얼마나 알려고 노력했을까?
이순신 장군은 23번 싸워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이런 비결 중 하나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만들어 놓고 싸웠기 때문이다.
그 ‘이길 수 있는 조건’이란 다름이 아닌 완벽한 대비 즉
‘유비무환(有備無患)’정신이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는 준비하는 자, 준비하는 민족에게만 그 미래를 보장해 주었다.
역사에서 깨닫고, 실천하지 못 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다.
장군의 큰 업적을 기리고, 그 애국심과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창조하자.
마침 오늘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4월 28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