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敎訓 로마史 digest-73
*5만 로마軍이 34만 갈리아통합군에 맞서 첫 방어전으로 고투한 BC.52년 알레시아戰鬪
이야기의 시작
Reconstruction of the fortifications in the site of the Battle of Alesia. Retrieved, with permission (see Talk:Battle of Alesia) from Alésia - the battle against the Romans in January 27, 2005

BC.52년 카에사르의 로마군 대 갈리아민족 통합군 간에 전개된 戰場 알레시아전투 요새의 복원도. 5중으로 방어진을 친 참호 함정 토성 목책 망루 등 당시 전투의 熾烈度를 짐작케한다.
[edit] Siege and battle
The Fortifications built by Caesar in Alesia according to the hypothesis of the location in Alise-sainte-Reine
Inset: cross shows location of Alesia in Gaul (modern France). The circle shows the weakness in the north-western section of the contravallation line
카에사르는 갈리아戰役 7년차 BC.52년 알레시아전투를 끝으로 사실상 게르만族을 제외한 서유럽을 완전 평정하고 로마의 北方 방어선을 라인江에 살치하는데 성공한다.
역사상 갈리아민족이 대동단결해서 로마에 대항한 것은 알레시아아전투가 처음이며 마지막이었다.
대소 90 여개 부족으로 갈려 살아온 갈리아족이 단결하여 로마에 대항한 동기는 계획적이기보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어서 정확한 계략도 없었기 때문에 카에사르로서도 확실한 전략을 가지고 대처하는 데미흡했다.
동기는 전년에 首領 아코를 처형한 데대한 원한을 품은 갈리아중부지역의 카르누테스族이 만들었다. 겨울동안 주변부족장들을 접촉,"아코의 운명은 내일 바로 당신의 운명"이라고 불안감을 주고 궐기하여 사전에 그 원인을 제거해야한다고 선동한 것이다. 부족장들은 여기에 호응했다.
카르누테스족의 본거지는 지금의 오를레앙이다.
거기에는 갈리아에서 통상권의 리베이트를 챙기고 있던 카에사르의 교역장려책에 의해 商用 방문하는 로마시민들이 많이 체재했다. 그 중에는 카에사르의 命을 받아 軍糧 소맥의 구입차 와 있던 자들도 있었다.
카르누테스族은 이 민간인들을 습격하여 살해하였다.
카에사르로서는 도저히 용서못할 사건이었다.오를레앙에서 해뜰무렵 일어난 이 참사가 밤 9시 이전에는 240킬로 떨어진 오베르뉴지방에까지 알려졌다.
오베르뉴族은 로마의 南佛속주와 접한 <長髮의 갈리아>(한니발 전쟁 이후 로마인들은 수염도 깎고 머리는 단발이었다)라고 알려진 강력한 부족으로 지금까지는 카에사르에 반항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부족 내에는 親로마파와 反로마파의 대립에서 친로마파가 이겨 반로마파의 두목을 공개처형하였으나 그 동생인 현부족장 밑에서 오베르뉴는 안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처형된 사나이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이름이 베르친제토릭스(Vercingetorix,이하 베르친으로 약칭)라했다.
오를레앙사건 소식을 들은 이 젊은이는 당장 광장에 나가 "지금이야말로 反로마궐기의 호기"라고 외쳤다. 현부족장의 조카가 된다.
조카의 행동이 위험하다고 본 부족장은 그를 오베르뉴의 수도 제르고뷔아에서 추방해 버린다.
그러나 추방된 베르친은 동지들을 규합, 反로마궐기를 꾸준히 준비하여 동지를 이끌고 부족내 쿠데타를 결행하여 숙부인 친로마 부족장을 추방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제 30대 중반의 젊은 베르친은 여기서 갈리아 전민족을 규합하여 로마에 대항하는 장기전을 준비한다.
베르친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갈리아부족 통합군총사령관을 맡고 승패의 열쇠는 갈리아인의 단결에 있다고 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강권을 휘둘렀다.
우선,서약을 지킨다는 보증으로 각 부족은 人質을 제공한다.
둘째,각 부족에는 참전병력을 할당하고 무기를 생상 공출을 한다.
세째,군력에서는 로마의 주전력이 重裝步兵인데 대응하여 각부족은 갈리아 전통의 주전력으로 騎兵을 증강한다.
각부족은 위 지시를 실천하도록 강요하고 불이행시에는 엄벌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약속이 늦어지거나 이행되지 않을 때는 해당부족을 불침이나 귀자르기 또는 눈알 빼기 따위의 가혹한 형벌로 다스린다고 베르첸은 경고하였다.
싸와 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타부족에 대해 이처럼 가혹한 방법으로 대한 예는 갈리아에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베르친의 이 엄격한 처벌 경고가 갈리아인을 통합하는데는 약효가 있었다.이것이 카에사르가 알프스를 넘어 갈리아에 들어가기 전에 입수한 정보의 전부이다.
이상이 그 유명한 <갈리아戰記>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알레시이아전투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정벌차 알프스를 넘으며 <類推論>을 집필하는 여유까지 보인 카에사르
征伐에 나선 카에사르는 알프스를 넘어 3개 지역에 흐트져 冬營 중인 軍團과 어떻게
합류할 것인가조차 생각을 가다듬지 못한채 중부갈리아를 이동 중인 베르친軍의 습격을 받을 위험마저 있었다.
카에사르가 군단 동영지로 향한다면 급조된 1개군단만을 인솔한 거의 무방비에 가까운 軍勢로는 反로마 기운이 충천하는 중부갈리아 진입은 차라리 무모한 모험이었다.
적어도 예년의 알프스 월경 길인 토리노에서 스자溪谷을 올라 알프스를 넘어 南佛속주 동쪽 끝의 로누江에 다달았어도 카에사르에게는 대책이 서지 안았던 것 같다.
그에게 유일한 호재는 갈리아 중부만이 봉기를 했을뿐 센江 이북의 북동부도 가론느江 이남의 아쿠타니아地方도 아직은 반로마항전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한가지 정보였다.
하지만 어떻게해서 군단과 합류하느냐로 머리가 아픈 카에사르임에도 이때 알프스를
넘는 그 경황에서 <Analogy,類推論>이라는 제목으로 문장독본같은 글을 쓰고 있다.
脫稿하자마자 로마로 송고해 筆寫本으로 간행된 이 책은 정치이념으로는 카에사르에
적대하는 원로원파에 속하지만 명석한 문장을 자부하기로는 동지격인 키케로에 바쳤다.
이와같이 집필로 여가를 선용하는 동안에 오히려 적이 그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베르친의 지휘 하에 들어간 갈리아人 부대가 로마의 남불속주를 공격해 온것이다.
베르친의 의도는 남불속주를 공격해서 카에사르를 거기에 묶어두고, 그렇게 함으로써 카에사르와 군단의 합류를 지연시킬 속셈이었던 것이다.
물론 전략은 옳았다. 그러나 상대가 카에사르임을 간과했다.
敵軍 南佛속주에 접근 중이라는 정보를 접하자 카에사르는 다른 모든 選擇枝를 뒤로하고 나르본느로 직행하여 즉각 방위체제를 확립했다. 속주 내 각부족의 전력을 통합하고 北伊에서 인솔해온 신병 1개군단을 배치,수비보다 공격에 나섰다.
예상치 못한 재빠른 대응에 베르친으로부터 병력을 분할받아 남불속주 공격을 맡은 반군은 겁을 먹고 공격은커녕 북쪽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카에사르는 도주하는 적의 배후를 騎兵만으로 추적하여 눈 덮인 산맥을 넘어 진두지휘, 반격에 나섰다.
프랑스의 중부지대는 마치 남쪽의 속주를 北風雪寒으로부터 막으려는듯이 첩첩산중이다. 여기를 아직 봄도 아닌데 넘는 일은 商人들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을 수 백기의 騎兵을 거느리고 강행한 것이다.
2미터나 쌓인 雪山을 넘는 강행군은 그 노고에 흡족한 대가가 답을 해주었다.
오베르뉴지방 주민들로는 서쪽으로부터의 공격이 실퍃했다는 것을 알자 곧바로 동쪽으로도 혹시나 생각했던 敵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카에사르는 산을 넘은 기병대에 의한 주변의 약탈과 방화를 묵인한다.
오베르뉴로부터는 갈리아 중앙부에 冬營 중의 로마군단을 공격하려던 베르친에게 구원을 애걸하는 급보가 전해졌다.
동족의 애원을 무시할 수없었던 베르친은 로마군 동영지 공격을 일단 중지하고 남하를 시작한다. 정세는 카에사르의 예상대로 되어갔다.
중앙지대로부터 남쪽 오베르뉴지방으로 향하고 있던 갈리아군을 카에사르가 기다릴리가 없었다. 진두지휘로 敵地의 교란작전은 이틀에 끝내고 뒤는 막료의 하나인 데키무스 부르투스에 맡겼다.
다만, 젊은 부르투스에게는 陣營으로부터 3일 거리 이내에 한해서만 약탈과 방화를 허용하고 敵의 본대가 접근하면 약탈을 중단하고 카에사르 뒤를 따라 오라고 지시했다.
소수의 기병만을 거느린 카에사르는 리용으로부터 남방 30킬로 내려가 로누江邊 도시로서 토리노로부터 알프스를 넘는 교통로의 갈리아측 현관에 해당하는 남불속주의 최북단도시 비엔누에 일찍 도착,거기서 지난 겨울에 준비해 둔 게르만人 傭兵 기병대 400기를 인수하고 다음 행동에 들어간다.
오베르뉴族 못지않은 강력한 부족 헤드위族은 아직은 베르친에 호응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카에사르는 달갑게 보지는 않았다. 로마의 2개 군단이 冬營하고 있는 링고네스族의 땅으로 가려면 헤드위족의 땅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호부족의 땅을 지나가는데도 기병대가 한무리로 주야 급행군으로 달리는 신중성과 신속성만으로 적을 따돌린 카에사르는 링고네스족의 지역에 동영 중인 2개 군단과의 합류에 성공한다.
합류 즉시 라인강 서안의 토레베리族의 땅에서 동영 중인 2개 군단에 상스에 집결을
명하는 전령을 급파한다. 동시에 카에사르 자신도 이제막 합류한 2개 군단을 거느리고 6개 군단이 동영 중인 상스로 향했다.
이렇게해서 로마의 10개 군단 모두가 카에사르의 지휘 하에 무사 집결한 것을 적장
베르친이 안 것은 합류가 완료되 뒤였다.
카에사르가 다음 단계 취할 작전은 5만의 로마군단으로 34만 갈리아 통합군을 섬멸하는 일이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