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敎訓 로마史 Digest-30-시칠리아전선에서 카토울스와 하밀카르간에 이루어진 강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전도에서 철수하고 시칠리아에 대한 일체의 영유권을 포기한다.2. 카르타고는 시라쿠사를 포함한 로마의 동맹국에 대해 전쟁을 도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한다.3. 양국은 함께 포로를 몸값 없이 석방한다.4. 카르타고는 로마에 배상금 2천 2백 탈렌트를 10년간 연부로 지불한다.5. 로마는 카르타고의 자치와 독립권을 존중한다.이런 내용의 강화에 대한 찬부를 물은 로마시민집회에서는 다수가 반대표였다.23년 간이라는 긴 세월의 전쟁이었던 것이다.단순 계산하드라도 희생은 로마측이 컸다.그런데도 승자가 맺은 강화라는게 고작 이것이냐였다.로마시민은 석연치않았던 것이다.이 협상에서도 로마인의 기질, 전장에서는 무자비하고 테이블에서는 온후한 것이 로마인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이런 경우 로마에서는 10인의 원로원 의원으로 구선되는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하도록되어 있다. 그러나 시칠리아에 도착한 그들도 카토울스에 동의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강화 조건이 약간 바뀌었을뿐이다.2천 2백 탈렌트였던 배상금이 천 탈렌트 증액되어 3천 2백 탈렌트로 바뀌고 증액분은 연부가 아니라 강화 발효 즉시 일시불로 정해졌다.그밖에 에가디諸島, 말타島, 판텔레리아島 등의 시칠리아 주변 섬들도 로마령으로 명기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의 農耕만으로도 연간 1만 2천 탈렌트의 수확을 올리는 카르타고로서 배상금 3천 2백 탈렌트는 소분지였으며 말타나 판텔레리아 섬의 로마영유는 기정사실의 추인에 불과했다.로마는 상대가 받아드리기 쉬운 조건으로 강화를 맺은 것이다.귀국한 조사단의 보고를 들은 로마시민들도 이번에는 찬성표를 던졌다.BC.264년부터 23년 간이나 계속된 제1차 포에니전쟁은 241년에 이르러서야 막을 내린다. 카토울스는 그해 6월 로마에 개선하고 로마인들은 평화를 만끽하게 되었다.BC.673년부터 열려있던 戰爭 神 로마의 야누스神殿의 문도 실로 432년만에 닫쳐지고 야누스신에게는 安息의 평화제가 받쳐졌다.로마와 카르타고간에 치른 제1차 포에니전쟁은 西地中海에서 그것도 그 일부뿐인 시칠리아가 戰場이었다는 점에서 형식은 局地戰이었다고 할 것이다.그러나 大國 카르타고와 新興 로마가 대결한 이 전쟁은 투입된 전력의 양으로치더라라도 결코 국지전이 아니었다.이만한 전력을, 그것도 장기간 투입할 수있는 나라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는 이 두 니라말고는 따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전투행위로서는 끝났으나 지중해 세계의 내일을 결정짖는 세력은 이집트도 시리아도 마케도니아도 아닌 카르타고 아니면 로마 중 어느 하나였다.로마에서는 카토울스가 네마리의 白馬가 끄는 凱旋式을 거행하고 있는 같은 시각에 트라바니와 마르살라에서는 시칠리아로부터 카르타고세력의 총퇴각이 시작되고 있었다.하밀카르의 지휘가 잘 먹혀들어서였는지 섬을 떠나는데 난민소동은 빚어지지 않았다.결국 시칠리아 주민의 태반을 점한 그리스人들로서는 카르타고의 시칠리아 철수는 오랜 카르타고 지배에서 로마의 지배로 바뀌는 것뿐이었다.이로써 카르타고는 4백년이란 긴 세월 쌓아올린 시칠리아에서 얻는 이권을 상실했고 지중해 서반부도 잃게 되었다.
역사는 어느 한쪽만을 두둔하지 않는 公器로서 인류를 지켜 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방대한 로마史를 읽으며 느낀다.오늘은 이만...... 시리즈 -31-부터는 Hannibal戰爭에 임합니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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