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敎訓 로마史 Digest-29-
BC.241년 모처럼 출동한 로마함대는 시칠리아 西岸의 카르타고 항만기지 마르살라를
쉽게 함락시켰다. 국내파와 국외파간의 정책혼선이 빚어지고 있던 카르타고가 로마군의 교체기를 노려 본격적인 함대 출동을 늦췄기 때문이다.
카르타고는 전선이 느슨해지는 로마군의 교체기간을 틈타 3월까지 시칠리아에 보급을 완료하면서 본격적으로 함대를 출동시킨다는 전략이었다.
해난참사를 거듭 겪고 전번 해전에서도 패주한 로마해군이 감히 해전을 도발해 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카르타고측은 출동 선단을 전함이라기보다 차라리 비무장의 보급선단으로 구성된 수송선단을 그해 이른 봄 시칠리아 바다에 띄웠다.
軍糧과 무기를 만재한 카르타고선단은 北東 진로를 잡고 마르살라와 트라바니 사이의 앞바다에 떠있는 마레티모 섬에 일단 닻을 내렸다. 거기서 시칠리아 서안으로 접근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카르타고함대는 로마해군의 감시가 소홀한 트라바니 북쪽의 에리체라는 곳에 보급물자를 상륙할 작정이던 것이다.
트라바니항은 도외시하고 적함대의 출동만을 기다리고 있던 로마軍 지휘관 카토울스는 적함 출현 보고를 받고 즉시 전군선에 북상을 명령했다.
카르타고함대와의 거리 10킬로 해상에 포진한 로마함대는 적의 움직임을 기다렷다.
3월은 漁撈期로 어선들의 활동이 빈번한 시기이다.
3월 10일 아침, 바람은 서쪽서 불어왔다. 강풍이었다.
카르타고선단이 상륙하려는 에리체 해안은 적이 정박 중인 마레체 섬으로부터 正東에 위치하며 상륙 예정지로 순풍이 불고 있었다.
로마해군은 기상조건으로 보아 적함대가 바람을 타고 나올 것이라는 것을 쉽게 판단할 수있었다. 카르타고군에게는 순풍이고 로마군에는 역풍이었기 때문이다.
강풍에 파고도 높았다.
로마해군으로서는 불리한 여건이었다.
그러나 집정관 카토울스는 불리를 무릎쓰고 해전을 결심했다.
로마군에 유리하다면 적함대가 보급물자를 만재해 움직임이 둔한 반면 이쪽은 操船이 가볍다는 것이었다.
카토울스는 모든 함선에 돛을 내리고 노만으로 출동하라고 명령했다.
전속력으로 西進한 로마함대는 마레티모 섬을 뒤로 하려던 카르타고함대 앞을 가로막았다.
전투태세를 본 카르타고함대도 돛을 내렸다.
해전은 노만을 저어 배를 조종하며 싸우는 것이 관례이므로 돛을 내린다는 것은 해전을 받아드린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 서풍은 여전했다.
돛을 내렸어도 大型船인만큼 강한 힘으로 밀린다.
강풍과 난파에 밀린 카르타고선은 동쪽에 진형을 갖춘 로마함대를 향해 무서운 힘으로 돌진해 왔다.
여기저기서 배끼리 격돌하는 소리가 들리고 부딛친 배로부터 적선에 옮겨 타고 싸우는 병사들의 함성이 주위를 압도했다.
단시간의 격전 끝에 카르타고해군은 귀멸됐다.
50척이 침몰, 70척 이상 나포되고 나머지 수십 척은 바람을 타고 아프리카땅 본국으로 도주해 버렸다.
시칠리아의 하밀카르에게 보내려던 보급물 한점 전하지 못한채 다섯번째 해전서 로마군에 패주한 것이다.
카르타고측 사상자 수는 사료가 전하는 것이 없어 불명하나 카르타고軍 사령관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제1차포에전의 세 번째 사형수가 되었다.
카르타고 정부는 겨울 자연휴전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시칠리아의 하밀카르에 긴급 사절을 보내 로마와의 강화협상을 명했다.
하밀카르의 제의를 받은 집정관 카토울스도 여기에 응했다.
현실을 똑똑히보고 환상을 배제한 피아 두 전선 사령관은 제1차포에니전쟁을 끝내자는데 암묵적 합의를 갖고 강화협상을 시잔한다.
후세에 마키아벨리도 賞讚한 바이지만 로마共和政은 군총사령관이기도한 집정관에 대해 일단 임무를 주어 보낸 뒤에는 元老院일지라도 지령 하나도 내리지 않고 집정관에 모든 것을 일임한다.
임지에서의 전략도 작전계획도 완전히 집정관에 일임되어 있다.
패배를 묻지 않는 것도 마음 놓고 임무에 전념하라는 전제이다.
강화를 제의하는 것도 받는 것도, 조건 제시도 수락도 집정관의 전권 사항이다.
국가 최고기관인 시민집회가 묻는 것은 집정관이 마무리한 강화에 찬성이냐 반대냐를 표시 할따름이다. 시민집회의 투표로 승인되고 비로서 講和는 발효하게 되는것이다.
강화협상 중은 휴전기간이 된다.
BC.241년, Rome의 카토울스 執政官과 Carthago의 하밀카르 장군간에 합의된 강화 내용은 다음 회에 소개하면서 23년 끈 제1차 Poeni戰爭 이야기도 마치고 로마의 악몽 한니발戰爭으로 알려진 제2차포에니전에 임하렵니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