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운을 위하여 수일간 기도를 하면서, 보인 것은 ?
온천지가 암흑천지이고, 산과 들 강에는 풀 한포기 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그야말로 적막강산 寂寞江山 이었다. 목이 말라서 물을 찾아, 온 천지를 찾아보아도 물이 흐르는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하나, 그물은 이미 젯 빛으로 붉은 흙탕물로 오염이 되어 있고, 사람이 마시기에는 더럽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물뿐이었지만, 그물 마 져 조금 흐르다가 우리가 떠 먹으려고 그자 릴 찾아가면, 물길이 금방 끈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목말라 하면서도 목을 축이기 위하여, 온 산천을 헤 매이다 가 나의 환영 幻影 은
곧바로 멈추어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도학을 공부한 사람이고, 역학을 육십 오년간 배운 사람이다. 어릴 적 내가 말을 배우고, 사물을 바라볼 나일 적에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물체를 본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현실 세계와, 우리가 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할 다른 미지의 세상을 한 거번에 나의 눈에, 코에 냄새까지 느낄 정도로 선명하게 나의 머릿속에, 나의 오감 五感 에 투시 透視 가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들도 나처럼 세상의 물체가 그렇게 보이고, 말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나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태어날 적부터 특이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어떨 적에는 내가 길을 가다가 보면, 어떤 노인 분들이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해서 구경하러 그곳에 가면 금방 장기바둑을 두던 노인들이 자취도 보이지 않았고, 우리 마을에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나에게 이리가면, 어디로 가 느 냐 ! 내가 이름도 모르는 지명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 또, 어떨 적에는 우리 마을 사람 옆에 다른 낯모른 사람들이 같이 걸어가는 것도 보였고 또, 때로는 내가 가던 이
다른 방향이고, 다른 동네로 내가 걸어가는 때도 있었고, 낯모를 분들이 나에게 너는 어디에 살고 있는데, 여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절대로 오지 못하는데, 너는 어떻게 여길 왔니 ? 하고 물어 보길 레,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마을 두꺼비 바위 위에서 나 혼자 잠시 잠간 졸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을 보면, 특히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을 보면 그분이 언제 어느 때, 돌아가신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럴 적에는 저의 부모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저놈 아는 세 살 때 홍역을 앓다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깨어나더니, 아마 마마 귀신이 덮어 쒸 웠는지 ? 어릴 적에 어미젖이 없어서 기운이 약해서 그런지 헛소릴 하는 걸로 치부를 할 적에는 나는 무척 섭섭했지만, 그런 일은 비일비재 非一非再 했다. 그리 고, 공부를 하기가 죽기 보다가 싫었다. 육형제에 제일 꼴 지로 태어나서, 위에 형님들이 다섯 분이 계시니까, 온갖 궂은일은 나에게 돌아오고, 밥도 가장 꼴 지로 먹었고, 뒷설거지는 모두 내차지이고, 입은 옷도 학교 책도 위에 형님들이 쓰고 남은 것을 가져야 했다. 거가다가 제일 위에 큰 형님은 육이오 사변 당시에 고등학교
3 학년 재학 중에 학도병으로 입대하시면서, 군대생활을 제주도 제 1 훈련소에 훈련병 사격 조교로 육년간 복무하시다가, 전국 육해공군 사격대회에서 일등을 여러 번 하신 분이시고, 전쟁 참전 용사로 태극 무공훈장까지 받으신 분이시고, 제대를 하고서도 군대 군기가 남아서 걸핏하면, 동생들 주어 패는 것이 특기였다. 나는 큰 형님에게 어릴 적부터 엄청 두들겨 맞았다. 결국 형님의 사격술을 내가 이어 받은 모양인지 ? 나도 예비군 전국 사격대회에서 특등사수로 뽑힌 적이 있었다. 큰 형님은 그 당시 전쟁 중이고, 36 사단 창설 당시에,
군인들은 외출 할 적에는 반드시 실탄이 장전된 칼빈 총을 항상 휴대하고 있었기에, 나는 큰 형님의 사격술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본다. 나의 큰형님은 그 당시 논밭에 꿩과 비둘기와 강에는 청둥오리들이 엄청 많았고, 산에는 토끼와 노루 산돼지도 많아서 항상 총을 가지고, 수렵을 나가시면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나가면, 하루새벽에 보통 산토끼 꿩 수십 마리는 잡아서 오고, 그것을 어머님은 요리해서 우리 식구도 먹고, 그 당시 외출 나온 군인들도 같이 먹었다. 나도 아마 큰형님의 사격술을 배운 것이고, 우리집안 형제들이 사격에는
디엔에이가 특출 했는 모양이다. 나하고는 큰 형님과 열여섯 살 차이가 난다. 그래 서, 큰 형님이 가장 겁이 났다. 무조건 큰 형님은 아버지 보다가 더 엄했고, 우리 집에 군기반장이셨던 것이다. 남들 한태 맞고 집에 들어오면, 큰 형님 한태 혼 줄이 났다. 사내놈이 병신같이 남 한태 두들겨 맞고 온다고, 얼 차례를 수없이 받았다. 그래서 나는 무술을 배웠고, 그것도 차력술이란 무시무시한 격파 술까지 혼자서 배운 것이다. 나는 시간만 나면 달밤에 체조한다고, 우리 집에서 약 2 키로 떨어진 송 야천 강가에 밤에 나가서 혼자서,
자갈을 손으로 격파하는 훈련도 엄청 했었다. 왼 간한 나무는 나의 오른손 손바닥에 뚝뚝 부러질 정도의 격파 술을 배웠다. 그리고 나와같은 비슷한 체격의 애들은 여러 명이 나에게 걸리면, 그날이 바로 인생 종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싸움은 절대 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차돌을 깨는 격파 술을 익힌 내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가 서독 광부를 지원했다가 경력 부족으로 퇴짜당하고, 강원도 함백산 8 부 능선에 자리 잡은 동해 광업소에 입사했다가, 모 정보기관에서 모집하는 특작부대에 차출 지원한 것이
결국은 내가 그동안 배운 무술을 합법적으로 사용한 것이 어쩌면, 나의 운명인 모양이다. 내가 젊은 시절에 도를 닦는다고, 전국의 기가 세다는 이름난 명산과 사찰의 수련 지 手鍊地 를 찾아다니면서, 터득한 도가 결국은 나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팔순이 넘는 생을 살아오면서, 권력자들이나 힘 있는 자들에게는 지금 것 굴복하지 않고, 목숨을 내어 놓고 살아온 것이 이젠 죽어도 여한은 없다. 안동 송현 초등학교 제 12 회 87 명 동기생 중에 85 등을 했던 내가, 지금은 우리나라 이름 있는 출판사와 신문과 인터넷에 펴낸 종이책과 전자책이
무려 16 권이고, 아직 책으로 펴낼 원고만 해도 오억 자가 넘는다. 책으로 펴낸다면, 약 1 백 권 이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표창장과 감사장 감사패를 수백 장을 받았다. 그리 고, 상 賞 중에는 효자상과 청백리상은 안동 김 씨 족보에까지 등재가 됐으니, 이젠 여한이 없다. 내가 지금 죽는다고 해도 나에 대한 글과 내가 쓴 책은 역사책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전해질 것이니까 말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어리석은 우리 국민들이 배에 기름이 너무 차고, 더러운 숙변이 창자속에 틀여 박혀서
세상 물정을 모르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내가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전하노니” 이제 우리 한반도는 무서운 전란에 휩싸일 것이다. 마주달리는 기관차가 서로 부딪치는 현상이다. 김 정은 애송이는 마약을 복용하고, 천지 분별을 하지 못하는 미친개이다. 그리고 남한에서 쇠뇌 된, 그들의 추종자들 역시 이제 남과 북에서 마주 달려오는 폭주 기관차를 세워야 하는데, 그들 마 져 이미 정신세계가 마비된 자들이다. 병 오년 한해도
이제 음력으로 석 달 남았다. 지성을 갖추고, 이성 理性 을 가진 자들은 살아날 것이지만, 오천만 명중에 삼천만은 모두 상천을 가지도 못하고, 중천을 떠도는 황천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한반도는 다시 80 년 전에 미개한 민족으로 다시 되돌아 갈 것이다. 오호라 통제여 ~ ! !
-- 안동 촌노 --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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