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敎訓 로마史 Digest-37-
*트레비아--제2회전
BC.218년 11월 한나발과의 초대전에서 전멸을 모면하고 피아첸자로 후퇴한 코르네리우스 집정관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포江 지류 트레비아江가 아페닌산맥 계곡의 가장 높은 구릉에 포진했다.
로마군으로서는 취약한 기병의 활동이 전술상 불리한 지대를 택한 것이다.
4개 구단의 월동 숙영지였다.
그러나 한니발은 겨울을 무위도식할 뜻이 없었다.
티치노전투에서 잡은 로마군 포로로부터 인근 카스테죠가 로마군의 보급기지라는 정보를 입수, 거기를 습격해서 카르타고군 보급창으로 삼는다.
주변 갈리아인 부락을 약탈할 것 없이 식량을 확보할수 있게된 한니발은 갈리아인들을 회유하여 그들을 카르타고군에 가세시킨다. 한니발은 해가 바뀌기 전에 한번 더 싸와 이김으로써 전세 추이를 저울질하는 갈리아인들로하여금 내편에 기울도록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이탈리아를 남북 종단행군을 해온 센프로니우스 인솔하의 2개 군단이 겨우 코르네리우스가 기다리고 있는 숙영지에 도착했다. 피아첸자 남방 20킬로 지점에 자리잡은 숙영지에서 병사들이 피로를 풀고 있는 동안 ,두 집정관 사이에는 작전 토의가 거듭되었다.
신중론을 펴는 코르네리우스에 대해 강경한 센프로니우스의 주장이 병사들의 호응을 받아 작전상 선제공격으로 결정되었다.
한니발은 백주 당당히 대군을 트레비아江 기슭까지 전진시켜 로마군 진영과의 거리 불과 7.5킬로에 육박해 왔다. 거기서 한니발은 보란듯이 주변 마을을 약탈하여 로마군을 자극했다.
BC.218년 12월도 다가는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冬至 전날 한니발은 막내동생 마고네를 데리고 주변 지형조사에 나섰다. 트레비아강 서쪽 강변에 우거진 숲을 가리켰다.
<저기가 네가 있어야할 장소다. 보병 1천, 기병 1천을 뽑아 내일 아침 밝기 전에 진지를 나와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 저 숲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숙영지에 돌아온 한니발은 전군에 충분한 식사를 하도록 명했다. 단 내일 아침 밝기 전까지 마치고 불에 덥힌 몸에는 기름을 발라두라고도 했다.
양력 12월 22일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차고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같은 아침이었다.
로마군 병사들은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군막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자리를 걷어차고 일어났다. 敵 騎兵의 습격이었다.
선수를 당한 센프로니우스는 적 기병대의 기습에 기병 전원에 출격명령을 내렸다.
아침 밥 먹일 여유가 없었다. 보병도 마찬가지였다.
추위를 막을 털옷을 짐속에서 꺼낼 겨를이 없었다.
짧은 토가 위에 서둘러 투구를 두르고 칼과 방패만을 들고 막사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보병들의 눈에는 아군 기병의 공격에 못이겨 후퇴하고 있는 적 기병의 모습이었다.
티치노전투를 겪지 않은 센프로니우스도 중장보병도 카르타고군 기병의 주력으로 알려진 누미디아기병과의 대결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로마의 기병과는 차원이 다른 전투력이라고 듣고 있던 누미디아 기병임에도 그들이 지금 밀려 퇴각을 하고 있다.
적을 섬멸할 절호의 기회라고 본 것은 비단 지휘관 센프로니우스뿐이 아니었다.
티치노전투 패배를 설욕할 기회라고 보고 분기하였다.
그깐 총사령관의 추격명령을 기다릴 것도 없이 기병을 선두로 한 전군은 퇴각하는 적을 쫓아 노도같이 밀고 강을 건넜다.
그러나 거기에는 카르타고의 전군이 미리 陣形을 짜고 기다리고 있었다.
치밀한 한니발의 전술에 말려드는 순간이었다.
트레비아강을 거넌 로마 병사들은 가슴까지 젖은 상태에서 공복으로 적과 싸와야했다. 반면 한니발의 병사들은 충분히 배를 채우고 날씨를 보아 몸에 기름까지 발라 비바람을 견디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적을 맞은 것이다.
로마군 지휘관으로서는 지금 그런 사치스런 생각 할 여유가 없었다.
흐터진 지휘 참모들로하여금 진형을 갖추게 하였으나 티치노의 쓰라린 경험이 조금도 교훈이 되지 못했다.
로마진영의 병력은 동맹도시 병사들을 합해 4만, 그 중 騎兵은 4천에도 미달했다.
반면 한니발군은 알프스를 넘은 본대 2만 6천에 갈리아兵까지 가세해서 3만 8천, 거기메 기병이 갈리아 기병을 더해 1만에 달했다.
보병 전력만으로는 호각세였으나 기병 전력은 비교가 안되었다.
고대 전장에서 會戰의 경우 진형을 짤 때 병력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상대적 승패의 가늠자가 된다.
로마군은 상투적 방법으로 군의 주력인 중장보병을 중앙에 배치해서 그 돌격력으로 적의 중앙을 돌파하는 진형을 짜고 있다.
한니발은 반대로 아군 중앙에는 갈리아 보병을 배치하고 양 날개 끌으로 가면서 강력한 전투력이 되게하는 진형을 짠다.
布陣을 보면 전문가가 아니드라도 수믈아홉 젊은이의 의도가 훤히 드려다 보인다.
포위전법은 적의 주전력을 무력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시 전래의 기본 전술이다.
다만 그토록 애써 데리고 온 코끼리만이 이 전투에서 한니발은 배반했다.
알프스를 넘다 지치고 북부 이탈리아의 겨울 추위에 견디지 못한 이녀석들은 조련수들까지 떨트리면서 난동을 부리고 적진 교란은커녕 사방으로 흐터져버리고만 것이다.
로마군은 기본 포진에서부터 지기시작했다.
결국 점점 좁혀오는 한니발군의 포위망에 갇혀 2만의 병사가 전사하고, 집정관 센프로니우스를 포함해서 포위망을 뚫고 피아첸자 본영까지 패주해간 병사는 1만이 안되었다.
반대로 승리한 한니발 측 전사자는 대부분이 갈리아人들이고 본진의 전사자는 헤일정도도 아니었다. 다만 코끼리는 스페인의 카르타헤나 출발시 37두에서 모두 죽거나 실종되고 이 전투 종료시 남은 놈은 한마리뿐이었다.
겨울 진누깨비가 내리는 동짓날 새벽의 싸움은 양쪽 모두에 가혹한 하루를 맛보게했다.
부상으로 전투 지휘를 못한 집정관 코르네리우스도 진막내서 가슴 조리다가 불과 수명의 병사들의 호위를 받고서야 겨우 피아첸자로 도주할 수있었다.
여기서도 한니발은 집정관의 17세 난 아들 스피키오를 두번째 놓쳐버리고만다.
16년 후 숙적 한니발을 카르타고 본토에서 무릎을 꿇리고 로마에 개선하게되는 주인공을 말이다.
트레비아전투의 결과는 기병전으로 끝난 티치노 전투와 달리 보병 기병의 합동 작전이었으며 병사 각자의 전투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지휘관의 전술상의 패배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다음은 세번 째 전투 트라지메노 湖畔戰鬪를 조명해 봅니다.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