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풍운 속에서 이병주 선생의 대하소설"바람과 구름과 碑"는 한 괴짜 인물 최천중을 내세웠다.
그는 관상가로 출발했지만 단순히 얼굴을 읽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권력의 향방을 예측하며, 자신이 길러낸 지도자를 통해 나라를 움직여 보려는 욕망을 품었다.
그의 기행은 단순한 괴벽이 아니라, 권력의 허망함을 풍자하고 새로운 질서를 시험하려는 몸짓이었다. 그러나 결국 시대의 벽은 높았고, 그의 꿈은 개꿈으로 끝났다.
이 작품은 연재 당시 정치적 상황 때문에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한때 9권으로 마무리되었다가 훗날 유작 정리 과정을 거쳐 10권 완결판으로 자리 잡았다.
나 역시 지금은 9권까지만 손에 쥐고 있어, 나머지 한 권을 채우지 못한 채 책장을 바라보며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세월이 흘러 수년 전 조선TV에서 이 작품을 드라마로 극화했을 때, 최천중의 기행은 다시금 대중 앞에 선명히 드러났다. 그때 느낀 감정은 단순한 소설의 재현이 아니라, 내 젊은 날의 기억과 겹쳐진 추억이었다.
오늘날 전한길이라는 인물의 행보를 보면, 최천중의 기행이 겹쳐 보인다. 그는 정치적 진정성을 내세우며, 때로는 과격한 언사와 돌발 행동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순간의 열정은 뜨겁지만, 곧 울 듯하다가 다시 웃는 모습은 혼란스러운 시대의 초상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그의 순수성을 믿었던 이들도 시간이 갈수록 “천상천하 유독존”의 자기 과시에 가까운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다.
기행은 언제나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그러나 그것이 권력의 실질적 동력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최천중의 관상과 예언이 조선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듯, 전한길의 돌발적 언행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넘어서는 힘으로 작동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기행은 시대를 비추는 흥미로운 풍경일 뿐, 권력의 중심을 움직이는 실질적 힘은 아니다.
역사는 늘 기행의 인물을 기록한다. 그들은 시대의 불안을 드러내고, 권력의 허망함을 풍자하며, 인간 욕망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대개 이루어지지 못한다. 최천중의 개꿈이 그러했고, 오늘날 전한길의 기행도 그 길을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