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칼을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역사이다. 즉 사무라이의 칼질에 의해 역사가 순환했다. 개조선 개씹선비의 사회가 구역질 나는 위선의 염병지랄로 지탱이 되었듯 일본은 사무라이의 칼질로 지탱이 되었다.
흔히 사무라이는 명예와 복종으로 미화 포장 되지만 칼로서 먹고 사는 사무라이의 입 또한 먹어야만 사는 입이고 개조선 개씹선비의 탐욕처럼 약자에게 칼질해서 먹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명작 황야의 7인은 7인의 사무라이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7명의 사무라이가 농민과 마을을 약탈하는 산적과 맞선다는 스토리가 멕시코 국경으로, 칼은 리벌버로 바뀌었을 뿐 서사와 스토리가 동일하게 전개 된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 마을을 약탈하는 산적들 또한 몰락한 사무라이가 배가 고파 농민과 마을을 털어 먹으려 한 것이다. 명예고 나발이고 배고프면 칼질의 방향이 주군을 위한 충성이 아니라 죄없는 농민의 목을 향하는 것이다.
산적은 몰락한 사무라이로서 전쟁이 끝난 뒤 생존 수단을 잃은 사무라이로 구성 되어 있으며 말을 타고 집단전술을 쓰며 갑옷과 투구를 쓰고 칼과 창을 휘둘렀다.
사무라이의 밥줄은 전쟁이다. 여하튼 전장터로 나가 칼을 휘둘러야만 먹고 살수 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시대 평화가 지속되며 고용주 즉 다이묘가 더 이상 칼질하는 사무라이에게 밥을 줄 이유가 없었고, 녹봉도 토지도 주지 않았다. 그나마 재수 좋은 사무라이는 하급 관리로 발탁되어 즉 시골 면서기가 되어 근근이 밥이나 축내는 계급이 되었고 그것도 얻지 못한 사무라이는 동네 양아치가 되거나 산적이 된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시대 밥줄이 끊겨 방황하는 사무라이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지방의 실력자를 찾아가 자신을 받아 주지 않으면 사무라이의 명예를 걸고 할복하겠다고 마당에 주저 앉아 곤조를 부렸다.
지방의 실력자는 사무라이가 마당에 주저 앉아 할복하면 충직한 사무라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매정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을까봐 할복하겠다고 땡깡 피우는 사무라이에게 적당한 재물을 주어 돌려 보냈다. 그것이 유행이 되어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픈 사무라이가 찾아와 곤조를 피우자 질려서 그러면 할복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돈푼이나 뜯으려 했던 사무라이는 생살을 가를 용기는 없고 개망신 떨며 물러나는 일이 벌어졌다.
더구나 사무라이 자존심에 생업을 가질수 없게 되면서 상인에게 돈을 빌려 갚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사무라이 신세로 전락했다. 이러한 몰락한 사무라이 전통이 내려와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 양아치 야쿠자가로 흡수되었다. 아무리 이쁘게 보아도 그저 양아치에 불과한 일본의 야쿠자들이 입만 벌리면 사무라이 명예 운운하며 꼴값 떤다.
종로 건달 양아치에 불과한 김두한이 어느날 협객으로 포장 되어 영웅화 되었듯 일본의 양아치 야쿠자 또한 그저 약자의 등골을 빼처먹는 건달 양아치일 뿐이다. 이토록 사무라이가 몰락하게 된 것은 도쿠가와 시대 참근교대와 천하보청으로 사무라이의 힘을 끊임없이 무력화 시키며 배신의 싹을 잘라낸 결과였다.
당연히 하급 사무라이들의 불만은 시대를 지날수록 깊어졌고 그 불만이 응축되어 분출한 것이 밥도 주지 않는 다이묘를 조지고 족쳐 천황을 섬기자며 대정봉환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하급 사무라이의 불만이 폭발한 사회적 에너지가 주도한 순기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무시받고 천대 받던 하급 사무라이가 어느날 권력에 취하며 그 개밥그릇을 자자손손 빨겠다며 천황을 신격화 하고 혹세무민하며 신성 군국주의로 치닫게 된다.
참근교대와 천하보청은 지방 다이묘의 권력과 사무라이를 철저하게 공격했고 확실하게 돈줄을 빼앗게 되면서 중상주의 시대를 여는 순기능을 가져오게 된다.
지방권력인 다이묘의 현금을 말려 죽이는 제도였던 참근교대의 구조는 1년은 자기 영지, 1년은 에도 상주 했고 인질로 잡힌 가족은 에도에 상주했다. 따라서 수백~수천 명의 수행원 동반할 수 밖에 없었다. 에도로 올라올 때는 위세를 과시하기 위하여 수천명의 수행원을 대동하며 행렬 비용, 숙박, 의복, 무기 유지, 에도 저택 유지비, 접대, 의례, 사교비 등으로 막대한 돈이 뿌려졌다. 즉 지방에 축적될 돈이 전부 에도로 빨려 들어갔다.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지방 특산물을 가져다 에도에서 거래하며 상권이 형성되고 물산이 거래되며 돈이 돌면서 에도는 상업도시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더구나 천하보청으로 다이묘 재정을 공공사업 세금으로 전환 하며 성을 신축하고 도시를 정비하고 하천을 정비하고 길을 닦고 하수구를 정비하면서 도시 인프라가 건설되어 에도는 거대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막부는 비용은 대지 않고, 다이묘에게 부담시키는 중앙 프로젝트는 다이묘 재정 고갈, 지방 군사력 투자를 하지 못하게 하여 힘이 빠졌고 대신 건설, 노무, 자재 시장이 확대 되며 돈은 사라지지 않고 도시 경제로 재분배 되었다. 도시는 번성했고 상업이 발달하며 일본 역사상 가장 호황기라는 겐노쿠(元禄) 시대의 호황이 만개했다.
돈을 만지는 상인의 권력이 커지면서 시대의 주인공은 상인이 되었다. 사무라이는 시대의 잔여물로 밀려났다. 상인의 경제권과 돈줄이 사무라이를 밀어내는 시대적 전환기가 도래하며 중심축은 상인으로 옮겨졌다.
당시 에도의 번성에 대해 저술관으로 조선통신사의 일행으로 참여한 신유하와 김인겸은 해유록과 일동장유가에서 에도의 번성을 적고 있다.
"푸른 색 기와와 돌로 멋을 낸 지방의 관아는 그 크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대로에는 비단 옷을 차려 입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어떻게 왜인들은 백성들이 비단 옷을 입고 다닌단 말인가? 매 해 끼니를 굶어 고생하는 우리 조선 백성들을 생각하니 왜인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해유록)“
”100만채는 있다고 생각되는 집 모두는 기와집이다. 굉장하다. 오사카의 부호의 집은 “조선 최대의 대저택” 10배 이상의 넓이로 구리기둥에 내부는 황금으로 장식 되어 있다. 이 사치스러움은 비정상이다. 도시의 크기는 약 40Km 정도로 모두가 번영하고 있다. 믿을 수 없다.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낙원이란 사실은 오사카의 일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도시가 있을 수 있을 까? 한양 번화가의 10,000배의 발전이다. 북경을 접해본 통역 통신사가 있지만 그도 “북경의 번영도 오사카에는 진다라고 말했다. 짐승과 같은 인간들이 2천년 동안 이렇게 평화봅게 번영하고 있었다니 원망스럽다 (일동장유가)”
당시 에도는 인구 50만에 불과한 유럽의 파리를 압도했고 인구 3억의 짱깨 베이징도 처바르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거리에는 극장과 상점, 서점이 빼곡이 들어찼다. 세계 최초로 신문이 발간 되어 유포 되었다. 즉 요미우리 신문이 이때 시작 된 것이다.
개씹선비가 한량으로 거지새끼로 밥충이로 밥이나 축내며 염병 떨었듯이 상인에게 돈을 빌려 쓰고 갚지 못해 도망 다니는 사무라이는 낭인이 되어 떠돌았다. 배고프게 떠돌던 낭인들이 민가로 내려와 도적질 하는 것을 영화화 한 것이 7인의 사무라무라이다.
끊임없이 사무라이는 몰락을 거듭하며 일본을 상징하는 양아치새끼들 즉, 야쿠자로 이어졌다. 갑옷을 대신하여 문신(이레즈미,入墨)을 새기고 할복을 대신해서 손가락을 자르는 염병지랄로 계승 되었다. 일본 양아치 새끼들 염병지랄을 배워 우리나라 양아치 새끼들이 문신 새기며 꼴값떠는 전통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하튼 일본의 겐로쿠 시대의 호황은 일본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 대중 소비, 도시 문화 황금기를 불러왔고 무사 중심 사회에서 상인, 장인, 도시민 중심 사회로 이전되며 전쟁은 사라지고 경제와 문화가 폭발하는 번영기를 일구어냈다. 조선에서 발행되는 책의 수백배가 발행 되면서 지식과 정보가 대중화 되었다.
종교개혁과 직업 소명론, 산업혁명을 통해 성장한 서구의 중상주의 시대는 상인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면서 시민사회를 탄생시켰다. 그들은 지금의 민주주의를 탄생시키는 새로운 사상과 신념, 학문과 지식, 아젠다와 헤게모니를 제시하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시대를 이끄는 주역으로 현대사회를 낳았지만 일본의 중상주의 시대를 견인한 일본 상인은 그러하지를 못했다. 즉, 상인의 돈은 건설, 유통, 소비, 금융을 불러오며 시대를 변화시켰지만 돈냄새 맡는 것에 만족했다.
몰락한 사무라이는 낭인이 되어 양아치가 되거나 궁여지책으로 다이묘의 하급관료로서 하급 행정을 맡으며 책읽는 사무라이로 변신했다. 개조선 개씹선비의 양반질과 같이 땀흘리며 생업에 종사할 수도 없게 되면서 칼은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장식에 불과했고, 칼 대신 책을 읽었다. 그들은 임진왜란 이후 개조선에서 유입된 개씹선비의 성리학 서책도 읽었다.
그렇게 접한 성리학은 그저 관념론에 그쳤던 일본의 유학을 실전적 이념으로 변신하게 만들며 밥처먹고 똥싸는 인간에 불과한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모시는 신성 군국주의로 가는 이념적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 즉 개조선 개씹선비의 더러운 성리학이 사무라이 우물에 독약을 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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