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불멸 없이 몸의 부활 없다.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현대신학의 거두이고 자유주의 신학에 대들어 신정통주의를 만든 장본인이며, 신학 분야에서 20세기 최대의 인물이라고들 한다.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902–1999)도 현대신학의 거두인데, 그는 『영혼불멸이냐 몸의 부활이냐』라는 저서로도 유명하다. 그는 프랑스에서 출생했으나 그가 태어난 지방이 독일 영토였었기 때문에 독일어와 프랑스어 두 개를 잘 구사한다고 알려진다. 그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신학과 고전문학을 공부했고, 알버트 슈바이처의 영향을 받았으며, 루터교 계통의 목사였고,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대화를 강조하는 에큐메니칼(교회연합운동) 운동가이기도 했었다.이 두 사람을 거론하는 이유는 둘 다 영혼관에 있어서 반성경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 상태에서 살다가 죽음과 더불어 이 구조가 해체되는데, 이 두 사람은 사후 영혼이 잠들거나 없어진다는 주장을 한다. 기독교신학에서 사후 영혼의 상태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인데, 이 두 사람은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이 분야에서의 주장 또한 두드러진다. 우리가 주변에서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 같은 데서 영혼이 사후 의식이 없어지고 잠든다고 믿는다고 하여 이단으로 규정한다.
물론 영혼 문제 하나만은 아니지만, 그들의 이미지가 영혼수면설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런데 칼 바르트나 오스카 쿨만 같은 거인들이 이런 반성경적 주장을 해서 신학을 혼란하게 하고 교회 신앙에 해를 입히고 있으니 이를 체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부활에 초점을 두면서 사후에 영혼이 천당에 간다거나 의식이 있어 활동한다는 것을 원천적으로 부인한다. 쿨만은 “기독교는 영혼불멸이 아니고 부활을 믿는다.”라고 외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사후 영혼관에서 차이를 보인다.쿨만은 영혼수면론자이다. 인간이 사망하면서 영혼이 잠들고 의식이 없어진다는 게 수면론자들의 말인데, 쿨만은 이런 수면설자이다. 영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있으되 잠들어 있다가 주의 재림 때 부활하게 된다는 믿음이다. 여기에 비해 칼 바르트는 사후 영혼이 즉각적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신화적이고 비성경적이라고 하면서, 영혼의 독립성 자체가 비성경적이라고 한다.결국 바르트는 수면설보다 더 급진적이다. 그는 ‘중간상태(영혼이 부활 전 천국에서 안식함)’를 아주 해체시킨다. 죽음은 전인격적 종말이라고 하면서, 사후에는 “하나님 기억 속에 보호된다.”는 묘한 말을 한다.
그런데 바르트가 말하는 ‘하나님 속에 기억되고 보호받는다’는 말은 헤겔이나 니체에게서 볼 수 있는 그림이다. 헤겔은 개체 영혼이 죽으면 절대정신으로 흡수되고, 개체가 살았던 의미만 남는다고 한다. 니체는 영혼불멸을 노예도덕의 잔재이며 허상일 뿐이라고 하면서, 개체가 살았던 삶의 흔적들만 ‘영원회귀’ 속으로 흡수돼 영원토록 되풀이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편다.바르트는 헤겔을 비판해놓고도 헤겔의 잔재를 물려받아, 개인이 죽으면 하나님의 기억 속으로 넘겨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예 사후 영혼이 없어지고 그의 삶의 자취만 하나님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는, 무책임하고 반성경적 낭설인 것이다.성경은 분명 중간상태의 천국을 말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에는 순교자들의 영혼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24장로로 표상되는 성도들의 천국생활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구체화되고 있다. 구주 예수께서는 오른편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고, 부자와 나사로의 예를 들어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말씀하셨다(눅 16).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말씀하셨으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하셨다. 바울 사도는 “간절히 원하는 것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사는 것이라. 떠나든지 살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셨다.
성경에서 죽음을 ‘잠’으로 표현하는 것은 육체가 활동을 멈추고 쉬고 있다는 것을 잠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영혼수면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르트나 쿨만 할 것 없이, 성경의 영혼 같은 부분의 말씀들을 모두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기록됐다고 하면서 늘 이원론이 어떻고 플라톤의 영향이 어떻고를 말한다. 소위 좌파 쪽 자유주의 신학이나 민중신학하는 자들은 습관적으로 헬라 철학의 영향을 문제 삼으며 바울신학에 대들고,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부정한다.성경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로서 신성 불가침이며, 누구나 어디의 영향 따위를 논할 대상이 아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이 감동하고 주관하시는 가운데 기록·형성된 계시이고, 구원의 복음인 것이다. 바르트, 쿨만 할 것 없이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을 믿지 않는 것이 단초가 되어 이런 허설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아 성령의 감동감화로 사는 자이다. 신학이니 철학이니 하면서 인간의 머리로 계시를 난도질하다가 결국 허무에 종속되는 군상들이, 보통 교회는 다녔으나 구원받지 못하고 성령의 감화가 없는 상태에서 이성적 논리만으로 덤비다가 바르트나 쿨만식 되는 것이다.영혼불멸 없으면 몸의 부활도 없는 것이다. 자유주의자 성경비평가들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얘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며 히스테리컬해진다. 구원받지 못했거나 믿음이 실종돼서 그런 것이다. 인류의 소망은 성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대속의 복음이다.바르트, 쿨만 아니 그 누구라도 성경에 대적하는 경우라면 경계하고 피하거나, 오류를 교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2026.1.16. 안티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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