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교 이야기 (1)
나는 무신론자다.
신이 있다는 곳을 쳐다봤더니 거기에는 푸른 창공만이 있었다.
저 아득한 곳에 창조주가 있다고 했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거대한 우주였다.
서로 잡아먹고 뜯어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동물의 세계를
창조주가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창조주에게서 인간의 행복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25년 전 즈음, 아마도 내가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하기 직전이나, 쓰기 시작할 때 즘 될 때였다. 그때 나는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다.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들딸, 그리고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다.
따뜻한 봄볕이 쏟아지던 화창한 봄날, 나는 휴일을 맞아 모처럼 스케줄이 없는 한가한 일요일의 아침을 만끽하고 있었다. 산들거리는 봄바람이 커튼을 흔들던 아침에 식구들은 저마다의 볼 일이 있는지 집안은 복닥거렸지만, 마음은 호수처럼 잔잔했고 행복한 아침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먼저 깬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절간에 다녀오시겠다면 집을 나섰다. 나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에도 아버지는 저녁이면 동네 사람들과 모여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낭송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종의 동네 어른들의 불교 동아리였다. 사월 초파일이 가까웠는지 그날 아버지는 절간을 찾아 나섰다.
일요일에 특별한 스케줄이 없자 아내는 성당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아내는 처녀 적부터 천주교 신자였다. 아마도 아내가 세례명을 받았던 것도 이때쯤 해서였던 것 같다. 세례명이 머 시라고 했던가, 기억이 가물거린다. 아내만 천주교인이 아니라 처가 집의 처형들도 거의 성당을 다니는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아들 친구들이었다, 그때 아들이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었나.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나갈 준비를 한다. 아빠, 교회 다녀올께. 교회? 웬 교회?? 동네 교회에 무슨 행사가 있는데, 참석하면 선물을 준다고 한다. 무슨 대단한 역적모의를 한 듯 아들 친구들이 회심의 눈빛을 하고 우르르 몰려 나간다.
그날 한가한 일요일에 나는 못다 한 독서를 즐기기로 했다. 독서는 소싯적부터 지금까지 내 최고의 취미이자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읽다가 접어둔 박정희 책을 꺼내 들었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기업인들을 불러 경제를 부흥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절대 못 하겠다는 이병철에게 박정희는 전자산업을 강권하고 있었다. 박정희가 호출했던 기업인들은 정차 대한민국을 경제적 반석 위에 올려놓을 기업인들이었다.
징기스칸에게는 사준사구라는 용맹한 장수들이 있어서 징기스칸의 사후에도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박정희에게는 기업인들이 있었다. 박정희 사후에도 이들은 소국 대한민국을 경제적 대국으로 만드는 용맹한 장수들이었다. 맞다, 배고픈 백성 배부르게 해주는 것이 하느님이고 부처님이지, 종교가 따로 있나. 이날 나는 박정희교(敎)의 신도가 되었다.
아빠가 독서 삼매경에 빠지자, 딸네미는 혼자가 되었다. 아마 초등학교 1~2학년이었을 것이다. 교회에도 끼지 못하고 성당에도 가지 못한 딸네미는 혼자 놀다가 심심했는지 아빠를 다그치기 시작한다. 아빠, 책 그만 읽고 나랑 놀자. 뭐 하면서 놀 건데? 아빠, 나랑 귀신 놀이 하자. 엥, 귀신 놀이??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어떻게 하기는, 그건 나와 딸네미의 오래된 놀이였다. 아빠는 딸이 아주 어릴 적부터 술래잡기를 자주 했다. 딸네미가 술래가 되어 아빠를 찾아내면, 딸네미가 아빠에게 귀신처럼 우왕하면 아빠는 우아왁하면서 무서워 해주는 스토리다. 아빠가 무서워 해주는 이 놀이가 딸네미에게는 최고의 놀이였다.
아빠는 귀신 놀이를 알고 있었지만 독서에 매진하고 싶어 모른 체 하는 것 뿐이었다. 이날 혼자 심심해진 딸네미에게 귀신 놀이는 무료함에서 딸네미를 구원해 줄 최고의 종교였다. 노여워하는 하느님보다 재미를 주는 귀신이 이날 딸네미에게는 구세주였다. 종교의 자유가 만개한 어느 봄 날의 우리 집 풍경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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