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80년대부터 주사파의 조직적인 이념의 의식화. 고정화, 조직화 전교조식 교육 방향에 따른 정치권력에 의한 역사 왜곡의 결과는 컸다. 실제로 관제 언론과 전방위 메신저 등을 통한 조직적인 프로파간다로 4·3사건의 역사가 왜곡된 채 고착화되고 문화화되어 대중에 스며들고 있다. 문화는 정치와는 달리 가랑비에 옷이 젖듯 스며드는 속성이 있다. 한번 물들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가령 ‘이승만이 제주도민을 학살하여 도민이 민중 봉기, 4·3사건이 일어났다’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4·3사건 때 이승만이 제주도민을 대량 학살했다’라는 황당무계한 선동이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중앙당과 남로당 전남道당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제주島당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고 북한 김일성 정권의 노선에 따라 공산 통일을 위하여 일으킨 폭동·반란 사건이다. 그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다수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약점을 뒤집어씌우는 통일전선 전술로 일관하고 있다. 그 중심에 프로파간다(선전·선동)가 있다. 그들이 이 사건을 모의하고 일으킨 시점은 이승만 대통령 취임 이전 미군정 시기가 아닌가. 하지만, 조작된 역사는 반복된 선전·선동으로 이미 대중에게 스며들었다. 사실 4·3사건은 무주공산 해방공간 전후 1946년 1월 찬탁투쟁→9월 총파업투쟁→10월 대구10·1투쟁→1947년 3월 3·1절 기념투쟁→제주3·10파업투쟁→7·27투쟁→8·15투쟁→1948년 2월 2·7구국투쟁→4월 제주4·3투쟁→5월 5·10선거저지투쟁→8월 8·25북한정권창건지원투쟁→1950년 6월 6·25남침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무장 폭동의 중심에서 反대한민국적인 색채가 강했다. 남로당과 그 추종자들은 4·3사건을 민중항쟁이라 미화하고 있지만 여러 기록과 증언으로 보면 남로당 무장 폭동·반란사(史)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한편, 건국 초기 1949년 5월 5일 국군 수백 명(2개 대대)이 동시에 월북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일어났다. 이런 비상한 시국, 비상사태에서 국가의 안녕을 위하여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한 것을 꼬투리 잡고 주사파는 지금도 양민 학살(자)로 프레임 씌우고 있다.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이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 내란 프레임 씌우기와 그 성격이 비슷해 소름이 돋는다. 어쨌든 4·3사건처럼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정치권력에 의해 좌편향 역사로 왜곡됐다. 늦었지만 스며든 그 붉은 물을 빼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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