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은 정신 서양은 물질”
동양과 서양을 놓고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는 요상한 정신승리 자위질을 했다. 아니 그 오래전부터 서세동점시대부터 서양에 동양이 정복 당하면서 부터 짱깨를 비롯한 동양은 늙어 고추 꼬부라진 노총각처럼 정신승리 자위질을 한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동양의 정신이 서양의 정신보다 앞선 것을 찾아 볼 수 없었고. 그 잘난 동양의 정신적 가치가 내재화 되어 사회로 표출 되어 공공선을 만든다거나 선한 사회규범으로 자리 잡은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개조선 개씹선비의 에헴!하는 개소리 밖에 남은 것이 없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는 황금율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종교개혁시대 칼뱅은 성경의 황금율을 기독교 강요를 통해 단순히 개인적 도덕 훈계가 아니라, 이웃 사랑과 정의로운 사회 질서화 하여 기독교 공동체 규범의 뿌리로 삼았다. 또한, 구약성경의 율법을 제네바 도시에 내재화 하여 시민사회를 만들었고 민주주의를 출발시켰다.
성경의 황금율은 칸트의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으로 이어졌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뜻은 모든 행위 규범의 종착지가 되었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사람을 목적으로 해아 한다는 공중도덕으로 발전하였다.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같은 이러한 가치의 발현이 정신이고 정신문명일 것이다.
저짝 좌빨들에게 위대한 사상가로 추앙받는 함석헌 또한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통해 동양은 정신, 서양은 물질이라는 정신승리 자위질에 여념이 없었다. 동양은 정신, 서양은 물질이라는 전제 아래 뜻으로 풀은 한국 역사는 무슨 개풀 뜯어 먹은 소리고, 뜻으로 역사를 찾는 여정 속에 현학의 똥바다에 빠져 질퍽거리는 함석헌만 있었을 뿐이다.
역사는 역사일 뿐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이 살아온 기록 그것 뿐이다. 명청하게 살았으면 멍청한대로 똑똑하게 살았으면 똑똑하게 살은대로 더하고 빼지도 말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반성 하는 것이 역사이다. 날조하고 왜곡하고 덧방쳐서 정신승리 자위질 하라고 있는 것이 역사가 아니다. 그래도 함석헌은 한국 역사를 두고 “길가에 나 앉아 아무에게나 짓밟힌 늙을 갈보”라며 자성의 목소리도 냈지만, 여전히 정신을 앞세우고 역사를 뜻으로 받아들여 현학의 똥바다에서 철퍼덕 거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함석헌은, 서구는 과학기술과 제도를 발전시켜 물질적 문명은 발전시켰으나 정신이 부족하여 인간 소외로 이어졌고 전쟁과 제국주의를 낳았다고 했다. 함석헌의 서양을 두고 빌어 빌어 처먹을 “눈은 밝으나 가슴은 어두운 문명”이라는 치기 어렸던 표현이 아직도 기억이 새록하다. 그래도 명색이 우치무라 간조의 문하생으로서 퀘이커스트 였으면 야만의 동양과 문명의 서양은 구분할 정도는 되었을 것 같은데 그 좁은 세계관이 안타까울 뿐이다.
서구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이런류의 인간들이 중국이 힘 좀 있다고 몽골과 위구르, 신장, 티벳 침략해서 복속시키고 식민지로 삼은 짱깨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는 등신새끼들이라는 것은 천편일률 공통적이다. 최근에는 힘없는 나라 찾아다니며 끊임 없이 간섭하며 지랄 떨고, 대만 침략하려는 짱깨 제국주의에는 뭐라고 아가리를 벌릴지 의문이다. 하여간 개조선 씹선비의 내로남불은 구역질 난다.
백번을 생각하고 천번을 생각해도 개조선 개씹선비 역사는 해석할 뜻도 없고 뒤돌아 볼 가치도 없는 똥덩어리에 불과하다. 과거의 똥을 퍼다 똥칠갑하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도, 뿌리를 찾는 지혜도 아닌 것이다. 똥싸지른 역사에 반성하고 같은 등신짓거리 하지 않는 것이 역사에 지혜이고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개조선 개씹선비의 그 미개하고, 잔인하며, 야만적이었고, 천박한 성리학의 개뼉따구 정통 계보를 송시열-이항로-최익현으로 보고 있다. 전설 속 신화 아사순국(餓死殉國)의 영웅 최익현은 대마도에서 일본에 저항하며 단식으로 굶어 죽은 애국자로 만들었지만 새빨간 개구라이다. 최익현은 일본인이 주는 맛난 것 먹을 것 다 처먹고, 살 만큼 살다 늙어 죽었다. 구역질 나게 역사 날조 하지 마라. 창피함도 이런 창피함이 없고 개쪽도 이런 개쪽이 없다.
우리 잘난 개씹선비 이항로는 서양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면 개인의 창피함이 아니라 단군이래 한반도에 태어난 인간은 모두 쪽팔려 혀깨물고 자살해야 할 것이다.
“서양에는 육지가 없어 하늘을 쳐다보며 하느님 하느님하고, 죽음을 좋아하고 삶을 가볍게 여기는 갑각류 어패류 같은 미물이다”
“전자를 따르면(서양을 물리지고) 옛 문물 제도를 보전할 수 있지만 후자(서양을 물리지치 못하면)를 따르면 금수(禽獸)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개조선 개씹선비의 그 높은 성리학의 개뼉따구 법통을 이어 받은 대갈통 수준이 저 정도인데 개조선이 그나마 고종이 돈 받고 나라 팔아먹을 정도의 건덕지라도 남았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이항로의 개소리는 지나가는 개가 우물속을 들여다 보고 짖어되는 인식론 수준이었다.
누누이 나는 말해왔다. 개조선 개씹선비의 잔재와 더러움을 불지르지 않으면 개조선 개씹선비의 나라로 다시 더렵혀지고 더럽게 살아 갈 것이라고......
동양은 인식론이 있을수 없었다. 있어도 개인적인 사유에 불과했고, 그 사유를 외부로 발설하면 어디 감히 절대적 존재 앞에 대드느냐며 맞아 죽었다.
서양은 존재론을 인식하기 위한 정신문명이라면 동양은 존재론을 확정 짓기 위한 정신문명이다. 즉, 서양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을 증명하겠다며 신존재증명까지 하는 허황 되어 보이는 문제까지 증명의 잣대를 들이대지만 동양은 절대적인 존재를 증명하면 사문난적으로 목이 달아났다. 동양은 존재론을 확정하기 위해 천(天), 도(道), 리(理), 기(氣)를 동원하여 현학의 똥바다를 만들었다. 감각될 수 없고 구체화 될 수 없는 칠흑 속 현학의 똥바다로 혹세무민했다. 나는 여지껏 살면서 천, 도, 리, 기가 무엇인지, 의미 조차 모른다. 그런데 나뿐이 아니라 길가는 사람 누구를 붙잡고 물어 보아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현학의 똥바다이고 혹세무민인 것이다.
서양은 인식론을 변증화, 공개화, 논리화, 계량화 하였다. 인식은 어떠한 변증도, 검증도, 계량화를 거부할 수 없개 공공 자산화 했다. 그것은 계속해서 진화했고 지금은 인터넷으로 다음은 메타버스로 진화를 가속하고 있다. 그것이 서양을 만든 정식과 물질의 인식론이다.
내가 개조선 개씹선비에게 왜 비가 오냐고 물어보면 우주에 있는 기의 흐름으로 비가 온다고 한다.
그런데 기(氣)가 무엇일까? 지나가는 개가 먹다 버린 개뼉따구일까?
그런데 서양은 명확하다. 땅 위의 수증기가 증발하여 대기로 들어간 후 에어로졸(aerosol)이 되고 그것이 씨앗이 되어 수증기가 모열들어 응결 되고 구름이 생기고 구름끼리 부딪혀 비가 내린다고 말해준다.
도데체 어느놈의 정신 살아 있는 것이야 하늘 처다보면 기 타령하는 놈이 제정신인 것이야 에러로졸을 말해 주는 놈이 제정신인 것이야? 그리고 어느 놈의 정신이 뛰어난 것이야?
이러한 정신수준의 차이는 동양은 서양이 만들어주는 일방적 혜택 속에 살아왔다.
고대 희랍 철학의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헬레니즘을 거치며 연금술의 발달을 가져왔고 계속해서 발전하며 질소비료를 만들어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했다,동양은 환자에게 풀뿌리나 끓여 먹으며 정신승리할 때 서양은 페니실린을 만들고 아스피린을 만들었다. 서양의 물리학(전자·핵·양자·통계)은 원자의 실재와 구조를 밝히며 반도체를 만들어내 현대문명을 만들었다. 동양의 삼성전자 어쩌고 무식한 개소리 하지 마라. 미국이 기술 끊으면 삼성은 한 달 만에 망한다.
온전히 동양은 서양의 뛰어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아왔고, 풍요를 구가하며 개조선 개씹선비의 야만의 세상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다.
오늘도 우리 도올 슨상은 죽어라 기독교와 서양에 욕하기 바쁘다. 여전히 동양의 정신, 서양의 물질 프레임 속에서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이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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