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도 기회는 있습니다.
존경하는 안티다원 박사님께, 안동 시골 조그마한 초옥 허드 레 방 구석에 쳐 박혀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팔순이 된 늙은 촌 놈이 감히 하늘 같은 박사님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너그러이 해량 하여 주실 것이라 믿으면서, 소생의 잡언[雜言]을 경청[傾聽]하여 주신다면 무지한 저로서는 크나큰 영광으로 알고 가슴속에 고마움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육 이 오란 동족상잔의 전쟁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산과 들에 길바닥에 널 부려 져 있는 이름 모를 젊은 군인들과
저의 마을에 같이 살았던 가족들의 참혹한 시신도 보았고, 인민 군에 끌려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 아직도 소식을 모른 체 살아오길 기다리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전쟁과 이스라엘과 후 티 반군에 의한 전쟁을 우리는 지금 티브이 뉴스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시시각각 전쟁의 현장을 보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백성들과 특히 어린 아이들의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75 년 전에 똑같은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을 겪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을 전쟁터에 잃어버린 예는 허다합니다. 저도 육이오 사변이 발생하고 북한군이 안동까지 불과 몇 십 리를 두고서 피난 봇 짐을 대충 꾸려서 가족들이 걸어서 영 천 까지 피난을 석 달 간 갖다 왔습니다. 인민 군이 이북으로 철수를 하고 석 달 만에 집에 와서 보니 곳간은 텅텅 비었고, 농사짓는데 필요한 농우 소와 돼지 몇 마리도 인민 군들과 지방 빨갱이들이 잡아먹고 없더군요. 그나마 우리들은 피난을 가서 고생은 되었지만, 가족들 모두가 목숨을 부지했지만, 고향에 남아있던 분들은
전쟁터에 끌려가고 인민 군에 부 역 갔다가 아군들의 총에 맞아 죽고 한 동네 분들도 있었고, 우리가 식량이 없으니까, 푸 성 귀라도 뜯어먹기 위해서 산과 들을 헤 메이면 으레 전쟁 중에 전사한 아군들과 적군들이 뒤엉켜서 이미 살은 썩어 구더기가 바글 거리고, 냄새가 온 산천을 진동 했었습니다. 저희들은 아직 어려서 시신을 처리하지 못하고, 마을 어른들께 어느 곳에 군인들 시체와 민간인들의 시체가 있다고 하면, 마을 어른들께서 삽과 괭이를 가지고서 이름 없는 무 주 고 혼 들을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기도 했지요.
저는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도 죽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내 손으로 렴을 하고 장사를 지내준 분들만 해도 아마 수백 명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가 젊은 시절 강원도 태백 시 황지 읍 소도 리 동해 광업 소에 막장에서 근무하면서 힘 좀 쓴다고 각 광업 소에서 인명 사고가 나면 저가 가장 먼저 달려가서 구조를 하는 응급구조대였습니다. 저가 근무할 적에 광산에 대형 사고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지하수 유출로 매몰된 사고와 발 파 사고로 인한 붕괴 사고 등에 저는 항상 앞장서서 사람을 구조하다가 보니
매달 작고 큰 사고로 저는 죽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저 손으로 참혹하게 죽은 시신을 수습 할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삶과 죽음의 경지에 대하여 지금도 인생 무상이란 생각을 하여봅니다. 그리고 저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상한 현상을 볼 때가 많아서 젊은 시절, 그 현상들을 지우기 위해서 중이 되기로 하고 절 밥도 먹어보고, 또는 카 톨 릭도 믿어보고 예수교 장로교 중에 고신도 13 년 믿어 보고, 온갖 종교를 믿어보았지만 아직도 저의 머릿속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현상과 기억들과 냄새 등 이상하고도 기이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의 혼 백이 저의 육신을 떠나가는 날, 저는 그런 기억들을 잊을지 모르겠습니다. 계 룡 산에서 수행을 할 적에 어떤 도인이 저를 보고서는 "자네도 특이한 삶을 살아가는 특이한 종자 일세" 하면서 웃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영적인 능력이 랄 가 하는 것을 타고난 사람이 수백 만 분의 일이라고 하더군요. 저와 같은 경우는 어떤 종교나 신을 믿어도 절대 그런 현상은 지워지지 않는 답니다.
그 사람이 죽어지기 전에는 말입니다. 저의 육신은 갈 갈 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고 있어도 이름난 대학 병원의 유명한 의사들도 저의 병명을 그저 신경통[神經痛 = 귀신이 든 병]라 고 만 지어줍니다. 어떤 종교들을 연구하는 작가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초 현상 적인 능력을 가진 초 능력자나 심 령 술사라고 부르더군요. 허지만, 그렇다고 저 같은 무지랭이가 그런 범주에 들 턱이 없지만, 저가 어제 올린 글에 윤 통과 한 동 훈 이를 보고서는 제주 4, 3 사태나 광주 오일 팔을 헌법 전문에 넣는다는 것에
일갈[一喝]을 했습니다. 제주 4, 3 사태나 광주 오일 팔은 아직 미 완의 역사입니다. 그런 것을 권력을 가졌다고,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헌법 전문에 넣는다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입니다. 이번 총선에는 저가 알기론, 북한은 모든 정보 력과 정치력 또는 남한에 파견된 간첩 들을 총동원하여 적 화 통일의 호기로 잡고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 남한을 접수하려고 저들은 광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전 광 훈 목사에 대 하 여는 기독교의 목사로서의 언행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허지만, 전 광 훈 목사와 같은 투사가 없었다면, 사실 윤 석 열 이가 대통령 될 일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자유 민주 대한민국에 실 날 같은 국 운이 남아 있어서 어제 저가 한 동 훈 에게 충 언 한다. 라 는 얘기처럼, 광화문 애국 세력과 사분오열로 흩어진 애국 보수 들을 윤 통과 한 동 훈 이가 끌어 않는다면, 이번 선거는 전화위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천방지축으로 달려왔던 전 광 훈 이가 교 계에 항복하고 잘못했다고 빌 사람은 아니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나라부터
구해야 할 것이기에 전 광 훈과 지 만원 박사와 전라도의 애국 투사 김 상 진 안 정 권 이와 신 해 식 이 봉 규 민 영 삼 등 등 .. 애국 우파 들을 결집 시키는 일은 이제 한 동 훈 의 말 한마디에 달렸습니다. 제주 4, 3 사태와 광주 오일 팔을 헌법 전문에 넣지 않고 총선이 끝나면, 국민투표에 붙여서 미완 의 역사를 국민들께 물어보겠다는 말과 광화문의 애국 우파 들을 모두 얼 싸 안고 한목소리로 국민들께 호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총선은 필 패이고, 우리는 모두 김 정 은의 개 작두에 목이 잘릴 것입니다.
그중에는 저가 가장 먼저이고, 목사 님도 해당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 1,200 만 명은 모두 동시에 처형 될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 목사 중에도 30% 가 종 북 화 되었다고 합니다. 카 톨 릭과 불교 조 계 종은 이미 적 화 되었고, 특히 대형 종교들이 운영하는 사업체 마 져 민 노 총이 접수했다고 합니다. 이제 사전 선거 일이 5 일 남았습니다. 그리고 당일 선거는 10 일입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우선 나라부터 살려 놓고서 전 광 훈 이를 잡아 패던 죽이던, 그때 가서 하십시다. 불초 소생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감사합니다.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