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창조론
십수 년 전에 쯤, 외신에서 이런 소식을 전한 적이 있었다. 미국 초등학교 학생이 담임 교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교사가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수업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알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가르쳤다는 이유였다. 참고로 미국은 기독교도들이 세운 기독교의 나라였다.
약 4백 년 전쯤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망원경을 직접 제작하여 우주를 관찰하던 과학자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때까지 세상은 지구가 세상의 중심으로, 하늘의 모든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의 세상이었다. 이 과학자가 갈릴레이였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포기하지 않으면 감옥에 갈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
이때 갈릴레이를 로마로 소환하여 유폐시키고 협박을 하던 측이 교황청이었다. 황제는 한 국가의 세속을 다스렸지만, 교황은 국경을 뛰어넘어 기독교 국가의 전 백성들의 정신과 사상을 다스리는 전 우주적인 군주였다. 결국 갈릴레이는 협박에 굴복하여 사면 조건으로 지동설을 포기했다. 그러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는데"
그로부터 2백50년쯤 지나자 교황청이 혼비백산할 일이 발생했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세상 만물은 신이 창조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생물의 태초와 창조가 진화론에 의한 것이었다니,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나왔다는 주장은 그렇다 치고, 진화론은 창조주를 부정하는 불경스러운 주장이었다.
천동설과 지동설, 창조론과 진화론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자 경쟁이었다. 약 15세기까지 신은 인류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절대군주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르네상스가 발원하고 독일의 비텐베르크에서는 종교개혁이 발원하여 신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동설과 진화론은 신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었다. 유럽의 지배자였던 종교에 인간이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의 발흥 때문이었다.
창조론의 근거는 하느님이 아담을 만들고 그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한 구절이었다. 진화론이 나오기 전까지 창조론은 굳건했고, 교황청의 신부들은 지구의 나이를 2억 년 정도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조론의 과학은 정황상의 추정에 의한 것일 뿐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주장은 아니었다.
엄밀하게 표현하면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이다. 즉 진화론은 과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지구를 연구하고 축적한 자료와 증거를 기반으로 인류가 도출해낸 "결과"라고 한다면, 창조론은 성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신도들에게 설교하는 성경의 "내용"일 뿐이다. 따라서 창조론과 진화론은 친공이나 반공처럼 꼭 약자 택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창조론자이므로 진화론을 부정한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창조론에 빠져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을 주입식으로 배우고 교사를 고소하던 미국 초등생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창조론에 대한 맹신의 대가는 지동설을 죄악시하던 중세시대의 교황청처럼 자기의 지적 수준을 우물에 빠진 음모론자들의 수준으로 낙하시키는 것 말고는 없다. 창조론은 종교를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진화론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무신론자이더라도 창조론을 알아야 하고, 유신론자라도 진화론을 배워야 한다.
1920년대에 인류의 진화 연구에 커다란 증거가 되는 북경원인이 발견되었다. 여기 발굴단에는 신부 서품을 받은 지질학자가 있었다. 성경의 창조론을 긍정해야 하는 신부와 북경원인의 발굴에서 진화론을 주장해야 하는 지질학자라는 지위가 한 몸에 있었다. 그가 쓴 저서는 금서가 되었고 두 세대가 흐른 다음에야 그의 저서는 해금될 수 있었다. 교황청이 진화론을 인정한 것은 1958년이 되어서였다. 그것도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가설 이상이라는 단서를 달고서였다.
1950년에 교황 비오 12세는 이런 발언을 했다. "창세기의 설명과 다윈 진화론이 반드시 화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렇게 밝혔다. "창세기에서 창조의 대목을 읽을 때, 하느님을 전능한 마법 지팡이를 든 마법사인 양 상상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대폭발우주론은 신적 창조자의 관여(intervention)와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생물은 생존하기 위하여 진화한다는 사실, 인간이 인간이기 이전의 모습, 지구의 크기, 지구와 달의 거리, 지구의 나이, 인간이 달에 가는 방법, 우주의 끝 등, 이런 것들은 신이 가르쳐주지 않는다. 인간의 능력으로 알아낸 것들이다. 인간은 '신의 세상'에서 탈출하여 도착한 '인간의 세상'에서 과학이라는 동반자를 만나게 되면서 인간도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과학은 성경의 한 구절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최초의 학설은 수많은 반론에 부딪힌다. 학설도 증거가 있어야 하고 반론도 증거가 있어야 한다. "주둥이"로만 주장하는 것은 학설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학설과 반론, 자료와 증거발굴 등의 절차를 거치며 학설은 만들어진다. 이런 학설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절차를 거친 과학은 "진리"라는 왕관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을 겸손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그래서 종교를 긍정하고 종교인을 존경한다. 그러나 창조론은 인간을 신의 창조물로 여겨 인간을 오만하게 한다. 인간은 진화론 앞에서 비로소 겸손하게 된다. 수천만 년 진화의 시간 앞에서 인간은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과학이 밝혀낸 지구의 나이는 46억 년이다. 지구의 탄생과 성장, 우주의 비밀을 밝혀낸 과학은 지구의 종말까지도 밝혀내었다. 과학 앞에서 유한한 것은 없다. 나는 과학 앞에 엎드려 경배 드린다.
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