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는 유럽과 러시아, 중국대륙,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진출 할 수 있는 대륙진출과 해양진출이 가능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만주국에서 기차에 오르면 불과 보름 안에 파리와 모스크바에 당도할 수 있었고, 뤼순항에서 출항 한 군함은 서해바다를 통해 인도양으로 나아갔고, 한반도로 내려와 부산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 할 수 있는 만주는 구한말 열강의 국익이 충돌하는 거대한 화약고였다.
만주의 패권을 두고 일러전쟁이 일어난 20세기 초는 세계질서는 영국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에 도전하는 러시아는 영국과 국운을 걸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불과 120만의 인구로 여타국을 압도하는 부국이 된 네덜란드는 바다의 마부로 불리며 바닷길을 지배했다. 최초로 근대적 증권시장이 처음으로 개설 된 곳이 네덜란드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바다를 제패한 영국은 해가지지 않은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당대를 지배한 영국의 해군력에 러시아는 모든 바닷길이 봉쇄 되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한 바닷길은 크림전쟁으로 좌절 되었고, 인도양을 향한 뱃길은 아프카니스탄에서 좌절되었다. 헐값에 알라스카를 미국에 넘긴 것도 바닷길에 혈안이 된 러시아가 캐나다를 식민지를 두고 있는 영국세력을 미국을 통해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영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싸움을 두고 영국의 정보장교 아서 코널리는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명명했다.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모든 요로요처가 영국에 의해 봉쇄 된 러시아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만주 진출을 통한 대한해협을 얻고자 했다. 러시아는 아편전쟁으로 갈기 갈기 찢어진 청나라를 기망하여 연해주를 영구 할양을 받아 블라디보스톡을 건설했다. 그러나 일년에 5개월은 얼어 버리는 바닷길이었다. 러시아는 대한해협을 통하여 1861년 대마도를 무단점령하고 대마도 조차를 일본에 요구했다. 일본은 영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두척의 영국 군함은 러시아를 대마도에서 쫒아냈다.
만주에 진출한 러시아를 놓고 영국은 고민이 깊었다. 세계 최강의 육군을 가진 러시아와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합친 것 보다 넓은 만주대륙에서 전쟁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영국은 일본을 통해 러시아와 대리전을 계획했다. 나폴레옹과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00여년 동안 “명예로운 고립”을 자처하며 국가간 동맹을 맺지 않았다. 100년 만에 명예로운 고립을 깨고 일본을 동맹국으로 끌어 들었다. 영일동맹을 맺은 영국은 일본에 군함과 무기를 주고, 러시아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군사정보를 넘겨 주었으며, 국제금융을 움직여 일본에 전비를 조달해 주었다. 국제자본이 러시아의 전비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시켰다. 국제여론을 움직여 일본과 러시아를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만든다. 영국의 덕분에 국제여론은 일본에 호의적이었고 일러전쟁 막바지 모든 전쟁수행 능력이 고갈 되어 역전의 위기에 놓인 일본을 미국의 시어도르 루스벨트가 전쟁 중재자로 나서 일본을 승리자로 선언해 주었다.
일본의 외교전도 눈부셨다. 아카시 모토지로를 스파이로 보내 러시아의 레닌과 가폰신부 등에게 막대한 혁명자금을 주며 소요사태를 일으켜 후방을 교란시켰다. 레닌을 비롯하여 모든 공산분열주의자 중 아카시 모토지로의 돈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눈부신 스파이 활동을 두고 “아카시 모토지로는 일본군 10개 사단이 할 일을 혼자서 해냈다”라고 극찬했다.
일러전쟁 막바지 탄환이 모두 소진 되어 더 이상 전쟁 수행능력을 상실한 위기에 처하자 이토 히로부미는 미국에 손을 벌렸다. 이토 히로부미는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가네코 겐타로를 보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후 문명개화의 서구세계를 배우기 위하여 일본국가 예산 2%를 쏟아 부어 이와쿠라 사절단을 꾸렸다.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 당대의 실력자들이 승선한 이와쿠라 사절단에 영주의 수행원으로 올라탄 18세의 가네코 겐타로는 첫 방문지인 미국에 도착한 후 하선했다. 영민했던 가네코 겐타로는 접시를 닦으며 하버드에 진학하여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동창생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찾은 가네코 겐타로는 영문판으로 번역 된 일본의 소설 “무사도”를 선물했고 마초기질을 가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무사도에 빠져 들었고 일본에 빠져 들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기꺼이 전쟁수행역량의 고갈로 위기에 빠진 일본을 구하며 일본을 승전국으로 공인하여 주었다.
난마와 같이 헝클어지고 숨막히는 긴장이 일상인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슬기로웠고 강인했다. 일본의 실력자는 고종을 비롯한 조선의 씹선비와는 자질과 품격과 지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노예근성에 찌들은 고종과 조선은 상국 짱깨를 대신할 황제국으로 러시아를 선택했고 온갖 굴욕적인 짓거리를 서슴치 않았다. 어찌 이런 조선의 개새끼들과 메이지 유신을 이끈 지사들과 품격을 비교할 수 있을까 말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대륙을 가로지르며 시시각각 만주를 향해 부설되고 있었다. 당대최강을 자랑하는 러시아 육군이 철도로 수송되어 만주에 주둔하면 중국 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의 안보는 하루아침에 풍전등화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의 막후 조정에 움직이고 있는 교활한 일본, 온갖 열강에게 뜯기며 조선이라도 속국으로 남겨 체면을 지키려는 중국,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는 러시아의 야욕은 난마처럼 헝클어져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을 때 고종과 민비는 무당 굿판을 벌리며 오로지 왕실의 개밥그릇을 지키기 위하여 인아거일(引俄拒日)을 외치며 러시아의 속국을 자처했다. 한반도에 진출한 러시아는 고종과 민비를 조종하며 부산 조차를 요구했다. 고종은 외무대신 민종묵에게 밀지를 내려 러시아에게 절영도(부산 영도) 조차를 승인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부산 조차 소식을 들은 영국은 경악했고, 일본을 통한 대리전을 결정했다. 러일전쟁 와중에 뤼순이 함락되고 결정적으로 승기를 잡은 일본군이 봉천의 러시아 대군을 소탕하고 있을 때 아둔패기 또라이 고종새끼는 러시아 짜아르에게 하루빨리 러시아군을 조선에 주둔시켜 달라고 친서를 보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일본은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전쟁배상금 한푼 받지 못했다. 남만주철도와 만주 일부에 만족해야 했다.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은 만주에서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볼세비키 혁명으로 힘을 얻은 공산세력은 필연적으로 팽창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폴란드 침공, 힘겹게 유럽각국의 도움을 받아 폴란드는 공산세력을 몰아 냈지만 공산세력의 팽창은 당장의 현실이 되었고 무주공산 만주로의 팽창은 필연이었다.
1921년 모택동은 상하이에서 공산당을 창당했고, 공산세력은 자유시참변으로 조선 독립군의 씨를 말렸다. 이어지는 몽골의 붉은혁명은 2번째 공산국가로 건설 되었다. 공산세력의 만주로의 팽창은 당장의 현실로 다가왔다.
그래서 일본은 만주를 군사전진기지로, 공산세력의 팽창을 막는 완충지대로, 중국대륙 침략의 전초기지가 필요했다.
일본이 러시아의 남하와 공산세력의 팽창에 굴복하였다면 한반도는 볼세비키 혁명의 실험장이 될 것은 뻔한 이치이고 일본 열도의 공산화 또한 현실화 되었다. 그렇게 공산화 된 조선은 청나라가 중공이 되고, 몽골과 동유럽국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소련의 괴뢰국, 위성국가로 전락하게 되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은 본토예산 3년치에 해당되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고 UN을 탈퇴하고 만주국 건설과 공업화에 매달린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였다. 고종과 민비 같은 미친 것들이 지배한 미개한 조선이 일본과 운명공동체가 된 것은 식민지배의 치욕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최소한 만주국의 탄생은 빨갱이 나라의 처참한 몰골로 살아야 하는 비참한 운명은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따라서 만주국의 탄생은 우리에게 축복이었다는 역사적 진실에 겸손해야 할 것이다.
나라를 망친 민비를 국모로 부활시켜 온갖 요사스런 거짓말을 앞세워 역사왜곡에 미쳐 있는 우리의 자화상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역사를 날조하여 자아도취에 빠진 조센진의 슬픈 자화상 말이다. 조선시대와 구한말의 역사는 당장이라도 불지르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 그 잘난 양반과 성리학, 내 머리는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 없다는 객기가 가소로울 뿐이다. 과연 4%에 불과한 갓 쓴 양반이 지배한 조선에서 그깟 상투 자를 사람이 얼마나 되었다고 아직도 내목을 자를지언정 상투를 자를 수 없다는 개소리를 리바이벌하는지 모르겠다
일본의 강요로 인해 일어난 갑오개혁으로 봉건폐습이 혁파되고 백성 절반을 차지한 노비를 계급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우리는 스스로 계급해방과 과거제 폐지와 같은 혁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이웃나라 일본이 해주었다. 개혁과 혁명을 할 수 없었던 무능함이 부끄러운 것이지 일본의 힘으로 혁명과 개혁이 이루어진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무능한 우리를 일깨워 갑오개혁을 해준 일본이 고마운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 의해 이루어진 갑오개혁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며 굳이 갑오경장으로 부르는 무식하고 미개한 역사학자가 아직도 이나라 주류에 서서 개나발이나 불어 되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누구의 손에 이루어졌든 그 결과가 개혁이고 혁명이면 개혁이고 혁명이다. 일본이 해주었기 때문에 개혁이 아니라는 무식한 새끼가 역사학자라면 지나가는 똥개는 예수 아비 쯤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조센진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백번 들어도 억울할 것이 없다.
계급해방과 성리학탈레반을 몰아낸 갑오개혁, 러시아와 공산세력 팽창을 만주 이북으로 묶어주고 우리도 일부나마 참여 되어 건설 된 근대근가 만주국, 그래서 우리에게 nation-building의 천금과 같은 경험을 주었고, 청년 박정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 준 일본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