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곧 다른 존재와 관계하는 것이다. 나와 다르게 느껴지는 존재가 없다면 나도 없는 것. 그들의 모습이 나의 또 다른 모습임이 보이기 시작하면 반성反省하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올 것인 즉…….’
누군가가 쓴 글이다.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약점弱點이 있다.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도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면 읽은 책 제목과 필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만큼 학자로써의 자질資質을 타고나지 못한 셈이다.
반면에 강점强點도 있다.
비록 제목과 필자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번 읽고 이해를 함으로써 감동을 느낀 내용은 제법 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타고나기를 워낙 기억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그런 현상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스스로 잘나지는 못했으되 남이 쓴 글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재능이나마 타고나서인지 어느 스님께서 썼다는 윗글이 끊임없이 나를 반성하게 해 주었으니 학자자질을 타고나지 못했음을 슬퍼할 이유는 없다.
바로 이웃에 70이 넘으신 할머니가 계신다.
집이 가까워서 그렇겠지만 우리 집에 자주 들르시는데 평소 딸에게 많이 화가나 계신 분이다.
“어렸을 땐 말을 잘 듣는 아이였는데 시집을 가더니 변했어. 글쎄, 하지 말라는 짓거리만 하고 다니니 남 보기 창피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듣고 보면 그분 따님은 오히려 요즘 가정주부들이 지닌 보편타당성 있는 사고와 가치관을 지닌 평범한 아주머니에 불과했다. 왜 내 눈에는 보통 아주머니로 보이는 분이 어머니에게는 못된 딸로 둔갑해 버리는 걸까.
판단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 무엇이든 판단하고자 할 때의 기준점은 누구나 에고티즘egotism으로부터 시작한다.
에고티즘이란 이기주의利己主義를 말하는 에고이즘egoism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자기중심주의自己中心主義다. 그 자기중심주의라는 것이 이기주의만큼이나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이 판단의 시작은 그곳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러나 판단기준의 출발점은 에고티즘이되 인품에 따라 객관성客觀性으로 변화한다. 말하자면 이웃집 할머니는 세상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젊은 시절 기준에 묶여 있는 셈이다.
이 할머니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의문에 빠진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내가 할머니에게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
나는 할머니에게 투영된 나 자신의 모습을 본다.
‘혹, 나는 가장이라는 강압적인 힘으로 가족을 지배하려 하지는 않았을까. 가족을 위해 이만큼 희생했으니 가족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내 말을 듣지 않고 네 마음대로 하는 것은 나쁜 짓이고 나를 배신하는 짓이다.’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하기에 딸이 못마땅한 것일가. 아울러 내게도 그런 판단기준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는 거다.
내가 만일 가장으로써 우리 가정을 그렇게 운영했다면 나는 희생의 논리를 앞세워 가족을 병들게 만든 원흉元兇이 되고 말았을 거라는 것이다.
내가 강압이나 그 어떤 희생으로 가족을 조종하려드는 식으로 아이들을 키웠다면 우리 아이들은 사회에서나 직장에서, 녀석들이 꾸민 가정에서도 내게서 배운 대로 남들을 조종하려 들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녀석들은 자기 식대로 조종이 잘 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조종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할 것이며 모든 판단을 이렇게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로 일관할 게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아무리 종북좌경분자들이 싫고 밉더라도, 막무가내莫無可奈 악다구니를 내세워 세상 사람들이 더러워서 피하게 만든 후 그 틈을 노려 상황을 장악掌握하는 그들의 비인간적인 투쟁방식鬪爭方式만큼은 닮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설혹 김정은을 선호하는 자들로부터 나라를 되찾아 자유민주주의 세상을 열더라도 이미 그들 식으로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인성을 상실해버린 사회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싶어서였다.
나는 가능하면 우리 이웃집 할머니 같은 극심한 에고티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사회 시민이라면 내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할 근거를 제시하는 대신 반대하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생각 자체를 경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음은 내가 행한 일들에서 나의 에고티즘 적 사고의 결과를 쉽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저, 보수우익이라고 자처하는 나만이라도 저들, 이분법적 사고에 악다구니만 남은 종북분자, 혹은 민주팔이들을 닮아 나 자신을 타락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자각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