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그 양심의 모양새는 어떠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짓은 언제나 양심이란 이름 밑에서 행해져 왔다. 특히 일부 정치인들, 그 이름도 그럴듯한 ‘양심의 명령’이라든가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로 편을 가르고 서로 미워하며 정치를 판다. 알다시피 법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정의의 여신이 한 손에 들고 있는 저울은 법의 형평성을 함의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와 법은 공정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는 정의를 약속한다. 표를 의식한 정치인은 매표하기 위해 정의를 말한다. 정치인은 선거 공약을 내세울 때마다 약속을 들먹이고 속인다. ‘우리 모두를 위해 평등과 정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날이 바뀌고, 정부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정의의 부재는 계속된다. 법 제도 역시 ‘국민은 정의 구현을 요구한다’라면서 정의를 약속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실체는 안 보인다. 불공평 역시 변하지 않는다.
세상이 떠들썩한 사건, 특히 정치적인 사건은 대개 태산명동 서일필이었다. '유전 무죄, 무전유죄', '유귄무죄, 무권유죄' 지OO의 절규가 여전히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가당치도 않은 일부 지도자의 도덕과 양심, 정치인의 정의, 법률가의 공정이라는 이기심에 가득 찬 위선은 아이러니하게 모든 법률이라고 불리는 습관 때문에 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특정인, 특정 계층만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후진 정치 탓일까. 유감스럽게도 적자생존의 정글 법칙에서 적용되고 있는 동물적인 논리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곳에는 대개 권력과 재물이 있다. 여전히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를,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배운 자는 못 배운 자를, 자본가는 노동자를 누른다. 그래서 서민들은 먹고살기에 부대끼면 잠복해 있던 이런저런 사회의 불공정 부재와 불만들을, 선거를 통해 한꺼번에 폭발시키기도 한다.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것은 선한 감정이다. 자신 앞에 부끄러워하는 것은 더 아름답고 용기 있는 감정이다. 남이 갖지 못한 부끄러움을 가진 것만큼 그 사람 도덕적 완성 단계를 확실히 나타내는 것은 없다. 이 정권 여러 꼴들이 어지럽다. 원칙이 통하지 않은 사회, 원인이 무능한 정치에 있다면 이 땅은 아직도 숙제를 안고 되어가고 있는 나라지, 된 나라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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