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져서, 저가 알기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제 1 부 =
[장기영 부총리 경제개발사 끝없는 전진, 백상 장기영 일대기 한운사 출판]
1964 년 5 월에서 1967 년 10 월까지 3 년 5 개월 동안, 최초 경제계획 부총리 역임 박 대통령으로부터 한국 경제에 불을 붙인 사람으로 격찬을 받은 인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이 나라의 가난을 어떻게 하면 몰아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받고서, 제 생각 같아서는 침(鍼)을 놔야 됩니다. 모두가 땅 바닥에 주저 않아서 나는 가난하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비관(悲觀)만 하고 있습니다.”대통령은 무슨 침을 놓습니까? 장기영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약. 일어나서 일하게 하는 약. 뜻을 품게 하는 약. 의욕을 북돋아 주는 약.
여러 가지 요소가 담긴 침을 놔야 됩니다. 대통령은 장 사장에게 그 침을 가지고 있느냐 하니, 장 사장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런 침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장기영은 한국경제의 최초의 점화자[點火者]로 역사의 대전환 시대에 중요한 역활을 한 사람이다. 백상은 1916 년 생으로 서울에서 출생하고 선린상업을 졸업했다. 그는 야망가[野望家]이며 만능의 재주꾼이다. 그는 한국은행에 입행하여 해방 전까지 함흥에서 근무하고 서울로 와서, 조사부에서 근무 32 세에 조선은행 조사부장[調査部長]이 되었다. 그는 동경지점을 개설하고 6.25 동란에 능력을 발휘 34 세에 부총재로 발탁되었다.
그는 주위의 질시[嫉視]를 받고 부총재직[副總制職]을 사임[辭任]하고, 조선일보 사장직을 맡으면서 부수를 5 만부를 올렸다. 후에 자기 신문사 한국일보를 설립했다. 5.16 군사 혁명 후에 필화사건으로 사임하였다. 장사장이 필화사건으로 한국일보 사장직을 물러나 있을 때, 박 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는다. 대통령은 신문사 사장으로 보도 내용을 모두 읽느냐고 물었다. 장 사장은 모두 읽는다고 한다. 대통령은 잘못을 발견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보도 기자를 불러 치도곤[治盜棍]을 친다고 한다. 제 별명이 왕초입니다. 대통령은 장 사장에게 이 나라의 가난을 어떻게 하면 몰아 낼 수 있을 까요?
장 사장은 제 생각에는 침을 나야 합니다. 모두 땅 바닥에 주저 않아서 나는 가난하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비관만 하고 있습니다. “무슨 침을 놓습니까?” "잠에서 깨어나는 약”“일어나서 일하게 하는 약”“뜻을 품게 하는 약”“의욕을 북돋아 주는 약”“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 침을 나야합니다.” 박의장은 흠, 지금 장 사장은 그 침을 가지고 계십니까.”“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들 수는 있습니다.” 박 의장은 장사장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8 월 어느 날, 대통령으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오나가나 가난한 나라에선 먹는 것이 문제요.” 박 의장은 식량문제가 심각하다.
내년 3 월 말 까지 식량 60 만 톤이 부족합니다. 내가 혁명을 한 것도 이런 가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 것입니다. 당장 급한 대로 소맥분을 구해야 하겠소. “장 사장 수고 좀 해주시오” 미국에서 17 만 5 천 톤을 방출하는데, 미국은 나를 믿지 않습니다. 일본에 오노 반 보쿠 자민당 부 총제에게 밀서를 써 줄 태니, “장 사장께서 늘름한 솜씨로 요리 한번 해주시오” 장사장이 아니면 아무도 해 낼 수가 없소. 5 만 톤만 구해 오십시오! 장 사장에게 부탁합니다. 박의장은 비서실장에게 특별지시를 내린다. 장 사장은 박의장이라는 사람을 자상하게 관찰해 보았다. 깔끔한 인상, 눈빛은 정직, 날카로움,
강한 의지가 뛰어나 올 것 같이 독기라면 심하지만 좀 싸늘하다. 의장님은“가난을 미워하시지요?” 박의장은“어려서부터 너무 가난하게 자라서 그런지 칠천지원수입니다.” 뼛 골에 사무친 한이지요. 이 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운명을 바라보고만 맥없이 사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나는 민족 혼[魂]을 흔들어 깨울 것입니다. 욕을 얻어먹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군복을 벗으면 어떻고, 안 벗으면 어떻습니까? 나는 이 민족을 흔들어 깨울 작정입니다. 근성을 심어 줄 작정입니다. 일어나서 일하라고 말입니다. 일하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다고요. 하고는 장기영을 보았다.
각하! 처음으로 각하의 참 뜻을 알았습니다. 열의를 가지고 알아 모시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모두가 모르고 있습니다. 중대한 역사적 고비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심부름을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하고는 장 사장은 머리를 숙였다. 박의장은 장 사장에게 힘을 빌려주십시오. 정말 중대한 역사의 고빕니다. 공관을 나오는 장 사장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하늘 빛에 색갈이 다른 것 같았다. “진짜 천년의 한을 풀어줄 지도자가 나오는가?” 나라의 백성들의 운명을 바꿔 놓은 대동력[大動力]이 창출되는 것인가? 박의장은 장 사장에게 마패[馬牌 =특사자격]를 주라고 지시한다. 정일권 총리는“박의장은 분명하게
장 사장은 대장부요, 호걸풍입니다. 장 사장은 정일권에게 박의장이 가난을 몰아내겠다는 그 분의 집념[執念]에 감명이 깊었습니다. 정일권은 장 사장에게 정권차원으로 보지 말고 “무엇인가 있습니다.” 나라에 대하여 무언가 굉장한 생각이 있습니다. 박의장은 장 사장을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하십니다. ‘하여간에 성공하고 오십시오. 1963 년 장 사장은 반 보쿠씨를 만나 친서를 전달하니, 그는 박의장의 혁명 사업은 잘 돼 갑니까, 한다. 1964 년 5 월 48 세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으로 발탁된, 그는 일본 경제도 사실 어려운데 하였다. 장 사장은 일본도 어려운데, 박의장께서 각별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의장이 일본이 비밀히 캐나다에서 곡물을 수입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다고 ? 이에 장 사장은 박의장은 지금 한민족의 운명을 바꿔 놓으시겠다는 결심을 하셨습니다. 장 사장은 박의장은 기필코 해 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도 그 분의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장 특사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소맥 10 만 톤, 계약금 60 만 불 12 년 거치 상환하기로 약정을 하고, 귀국하여 박의장에게 보고를 하였다. 1963 년 12 월 11 일 정일권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정일권은 자기하고 내각에 같이 들어가자는 것이다. 이 나라의 운명을 한 번 바꿔 보십시다. 지금은 난장판이지만, 장 사장은
혁명정부를 어떻게 보십니까? 혁명 정부는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을 세우고, 줄 곳 가난을 몰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농어촌의 고리채[高利債]를 탕감하여 주고, 통화개혁으로 한국경제를 구출해 보려고 한 것을 잘 알 아실 것입니다. 세상은 어제의 세상이 아니라고 느끼면서, 경제사정을 좋아지지 않고 민심은 붕 떠 있습니다. 대통령의 집념은 가난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안 되고 있어요. 궁리하든 끝에 장사장의 경륜과 배포, 박력 그리고 내 힘과 의지를 한 묶음으로 해서 비약적인 계기를 만들어 보라는 겁니다. 누가요? 대통령 각하의 말씀입니다. “궁합이 맞아야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는 거 아닙니까?” = 내일 계속 됩니다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