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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은 사라질 뿐이다

작성자:

비바람

조회: 7931 등록일: 2016-01-09

그 많던 논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초창기에 인터넷에 발들 디뎠을 때에는 기라성 같은 논객들이 별처럼 떠 있었다. 내가 아버지처럼 형님처럼 모셨던 델모나코, 미국에서 독설을 날리던 씨비스킷, 명빠 대표논객이던 시대유감, 무명씨, 베리타스, 그리고 사기꾼으로 낙인 찍혔던 구름~, 걸핏하면 소송 협박하던 파아란, 박빠 논쟁으로 나와 일전을 벌였던 얼음공주까지.
 


비바람도 저들과 함께 명멸의 운명을 같이 해야 했을 터인데, 비바람은 아직 구차하게 버티고 있고 그들은 이제 없다. 그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러나 그들의 글은 아직 인터넷 구석구석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글이 살아있다면 논객은 죽은 것이 아니다. 다만 사라졌을 뿐이다.
 


논객에게 언제든지 일전을 불사할 상대 논객이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동지의 맹을 맺고 같이 동행하는 논객이 있다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동지이건 라이벌이건 그들이 하나 둘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논객의 이별에는 개인사의 흥망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도 함께 하기 때문이다.
 


많은 논객들이 스러지면서 나를 아프게 했다. 그 많은 논객들 중에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논객이 있다. '한반도'이다. 한반도는 논객넷의 창립멤버는 아니었지만 창립 초기에 대표논객을 달고 논객넷의 기반을 잡는데 지대한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별똥별처럼 스러졌다.
 


한반도는 논설의 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의 글은 폭발력이 있었다. 빨갱이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반도는 시기적절하게 강력한 논설을 게재했고, 트위터나 링크를 타고 논객넷에는 구름 같은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가히 한반도는 대논객이라는 명성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한반도가 보이지 않았을 때 나는 절망과 충격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한반도가 얼마나 대단한 논객이었는지는 수치가 증명한다. 한반도가 활약한 기간은 약 1년 정도였다. 그 기간에 그는 700여 편의 논설을 게재했다. 논설의 무게감도 상당했다. 논객넷에서 가장 많이 쓰는 논객들이 지금쯤에야 그가 쓴 글의 분량에 당도했거나 추월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재 편수가 빈약한 논객넷으로서는 한반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는 게 당연했다.
 


한반도가 활동을 중단했지만 그의 간판이 2년 가까이 떠있던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엊그제 나는 한반도의 간판을 내렸다. 덩달아 아픈 가슴도 나아졌으면 좋으련만 가슴 위에는 더 무거운 바위덩이가 얹혀졌다. 작년에 나는 총장님과 총무님에게 한반도 자택 방문을 부탁했었다. 서울에 있는 여러 사정으로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작년에 한번 한반도와 통화가 이루어졌다.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복귀하겠다고 했다. 물론 나에 대한 예의상 나온 대답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고마웠다. 가끔 한반도 전화를 걸면 신호가 간다. 그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통화는 안되지만 나의 전화음이 공간을 넘어 그에게 날아가 어딘가에 항상 그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리라 믿고 있다.
 


폭발적으로 논설을 토해내던 한반도는 막상 떠나갈 때에는 인사말조차 하지 못했다. 대논객에게는 황급한 퇴장이거나 초라한 퇴장이었다. 그러나 그건 장엄한 퇴장이었다. 정재학은 떠나면서 시끌벅적했다. 요란한 팡파레를 울리며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퇴장하는 모습에 어울리는 장면은 아니다. 대논객이 입장하는 장면이라면 모를까.
 


논객은 논설로서 세상을 흔들어야 한다. 세상을 흔들었으되 떠날 때 침묵하는 것은 장엄한 풍경이다. 그러나 떠나면서 호수에 돌을 던지고 집을 흔드는 것은 장엄했던 논객을 초라한 풍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떠난다. 모든 논객은 언젠가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객의 글이 살아있는 한 논객은 영원하다.
 
 
 




비바람

댓글 : 4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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