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대선 당시만 해도 사실 여성 대통령후보에 대해 예상외로 여성들이 오히려 부정적이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자가 뭘 해~” “아직 여자는 글쎄?” “우리나라선 여자는 힘들어요”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내 주변에서 적잖게 들려와 실망한 적이 있었다.
내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기보다 잘 난 여성에 대한 여자 특유의 시샘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박근헤 후보를 칭찬 하면 시큰둥한 표정에 무반응이다. 한 번은 내가 그랬다. “맨날 여자들은 남자 밑에서 지낼 거냐구? 사법, 외무 고시 등 각종 공무원 시험에 여성들이 수석을 차지하고 주요대학 수석입학, 수석졸업을 여자가 휩쓰는 판에 무능하고 썩은 남성대통령 시대를 끝장내야지 않겠어?” 이 말에 아내가 고개를 끄떡였지만, 박근혜 후보를 칭찬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지난 대선 투표일엔 평소 나의 세뇌공작(?)에 따라 그래도 박근혜 후보에 한 표를 행사했다.
엊그제 박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방송을 함께 보았다. 정치에 무관심한 아내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 제 깐에는 “박대통령이 얼마나 영어를 잘 하나?”하고 호기심에서 시청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명확하고 자연스런 발음에 깔끔한 표현이 마냥 좋았다. 세계 정상들과 글로벌 CEO들에게 세계경제가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한국 대통령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감동이었다.
사실 나도 2~300명 청중 앞에서 연설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경험상 적어도 10번 정도 리허설을 해야 제대로 된 연설을 할 수 있다. 물론, 주요 요지는 메모로 준비해서 나가지만, 준비가 소홀하면 머리가 캄캄해져서 무슨 말을 했는지 뭐라고 떠들어야할지 당황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아예 원고를 읽는 연사는 최하수로 청중에게 감흥을 줄 수 없음은 물론이다. 요즘에는 모니터가 좌우 앞에 설치되어서 연사가 모니터의 원고를 읽기에 마치 암송하는 것처럼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MB 대통령의 경우는 앞 좌우를 번갈아 보기에 모니터를 보고 있구나 하는 낌새를 챌 수 있었다.
과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명연설을 마친 후, 기자들이 대통령의 동생에게 물었다. “형님이 그리 연설을 잘 하는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동생은 “형님은 오늘 연설을 준비하느라 어제 밤을 꼬박 새셨습니다.” 이렇듯, 연설내용 암기는 물론, 자기 것으로 완전 소화하여 가슴에서 울리는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를 해야 청중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박대통령의 연설 화면을 보면서 모니터가 설치되었나, 화면에 안잡히는 투명 텔레프롬프터가 설치되었나를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대통령이 청중들과 눈을 맞추며 자연스레 연설을 이어가는 모습이 모니터 없이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치되었다 해도 이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그 내용을 머리 속에 완전 숙지된 느낌이었다. 그만큼 매사 준비에 철저한 박대통령의 면모를 다시 확인하면서 참 빈틈없는 분이라는 생각이다.
평소 외국인과 대회 때 “영어 어디서 배웠느냐? 원어민 영어를 구사한다“고 칭찬을 받는 것으로 우쭐대던 아내가 박대통령의 연설을 듣더니 그런다. “발음이 세련되어 듣기에 거북한 곳이 없어요. 대통령 하나는 정말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고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을 칭찬하는 말을 처음 내뱉는다. 그래 내가 말을 받았다. “그렇구 말구. 이제 여성대통령 시대인데 여자들이 못난 남성 아래서 마냥 죽어지낼 까닭이 어디 있냐구? 나도 이제부턴 당신을 섬기며 공처가 노릇을 할 게. 당신이 나보다 영어를 잘 하니까... 하하하~’
“이이 보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나니까 생전 들어보지 못한 소리도 다 들어보네. 호호~”하며 아내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이렇듯, 실력 있는 여성대통령은 비우호적인 계층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으며 서서히 진면모를 드러내는 법이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난 왜 이리 작아지는 가~♪” 못난 남정네들은 찌그러질 수밖에 없는 요즘 세상인 걸 어찌 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