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심이 없어서 일어나는 비극은 적지 않다. 삼국지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지의 조조(曺操) 행적에서 그 전형적인 사례를 엿 볼 수 있다. 동탁(董卓)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쫓기는 몸 신세가 된 조조는 진궁(陳宮)과 함께 친지인 여백사(呂伯奢)의 집으로 피신한다. 여백사는 조조를 정중히 받아들이고 그를 대접하기 위해 돼지를 잡게 한다. 이때 하인들이 돼지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의논한다.
"묶어서 죽일까? 그냥 죽일까?" "놓치면 큰일이네. 그냥 묶어서 죽이세" 이 말을 엿들은 성질 급한 조조는 불문곡직하고 장검을 빼어들고 뛰쳐나가 일가(一家) 전부를 몰살시켜 버리고 만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자기를 대접하기 위한 돼지 한마리가 부엌에 있었다. 조조는 그때서야 "아뿔싸" 했지만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일화는 신뢰심이 없는 조조의 성격이 빚어낸 비극을 여실히 그린 이야기다.
'오리일까, 토끼일까?' '소녀일까, 마녀일까?' 이른바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야기는 흥미롭다. 오른쪽 방향을 보고 있는 오리 그림인지, 왼쪽 방향을 보고 있는 토끼 그림인지, 그리고 소녀인지, 마녀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 형상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 안에 존재한다. 어디에 방점을 찍는가에 따라서 하나 그 이상의 모습일 수 있다.
자기를 통해 남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관찰자가 부여하는 관점의 틀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림의 내용이 달라진다. 조조의 조급증이 빚어낸 비극처럼 신뢰심이 없어서 일어나는 비극도 적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사회와 정치판에도 그런 조조신드롬이 판치고 있다. 빠르다 해도 잘못된 결정은 잘된 결정이라 할 수는 없고, 올바른 결정이라도 때가 늦으면 잘된 결정은 아니듯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 중 전격 경질된 윤창중은 기자회견에서 "주미대사관 인턴여성과 함께 술 마신 점은 부적절했지만 엉덩이를 만지는 추행은 하지 않았다"고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도쿠가와이에야스는 ‘참말 같은 거짓말은 해도 좋지만 거짓말 같은 참말은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다분히 정치성 발언인데 윤창중 사건과 맞물려 보면 의미심장하다.
'참다운 정열의 영령에 의해 이루어진 결합 이외에 영원히 그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결합은 없다' 스탕탈의 말이다.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은 해서는 안 될 일을, 윤리는 해야 할 일을 대변한다. 정치인이 도덕군자여야 할 것까지 없다 해도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이 되려면 최소한의 윤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증에 신뢰심까지 없어서 일어나는 비극이라 해도 자업자득일 뿐이다. 어쨌튼 대통령은 밤새워 의회 연설 준비하고 있을 때 대변인이 어린 여(女)인턴과 술자리를 할 수 있는가?
윤창중은 고개를 숙여야 한다. 당장 억울하다고 변명하면 할수록 마치 돌을 안고 물 위에 뜨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 '윤창중'이라는 무거운 돌을 내 던져라. 그러면 진리의 드넓은 바다에 떠 올라 진실한 자기를 살리게 될 것이다. 오리인지 토끼인지, 소녀인지 마녀인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떻게 보이느냐 그리고 믿고 안믿고 문제가 아니다. 세상이 요동친다고 같이 요동칠 수는 없지 않는가? 지금은 겸손할 때다. 엉덩이를 올릴수록 고개는 더 숙여지는 법이다. 불문곡직하고 윤창중은 엉덩이를 더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