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기사를 읽으며 그 기사에 딸린 사진 한 장을 보며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지고 만다. 인간이 어떻게 이정도로 망가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와 함께. 이 친구 한 때는 정말 멀쩡한 사람이었다. 대단한 주연 배우는 아니더라도 조연으로 감초 같은 배역과 연기로 쏠쏠하게 대중에 알려졌던 그야말로 앞날이 기대되는 배우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치에 입문하여 이상한 놈들을 따라다니고 숭배하면서부터 망가지기 시작하며 겉잡을 수없는 지경에 빠진 것이다. ‘조아세’이른바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고 기고만장 악악대기도 한 적이 있는 친구다.
전직 배우'명계남'이란다. 마치 사지가 마비 된 듯 하기도... 비교적 잘 나가던 배우가 노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으로 망가져 보일 때 나는 좌절, 절망, 회의 등 온갖 부정적인 단어가 떠 오른다. 뭐, 사진이 잘 못 찍힐 수도 있다. 실제 이 모습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찰라적 장면은 나로 하여 온갖 부정적 단어만 머리 속에 맴돌게 한다. 하긴 이렇게 망가지는 인간이 어디 이 친구 뿐이랴 마는......
며칠 전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표로 선임 된 김한길을 비롯한 신임지도부가 봉하마을을 찾아가 죽은 노무현의 무덤에 헌화와 분향을 하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위 사진의 주인공‘명계남’이“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용하지 말라”고 고함을 치며 육두를 써가며 욕을 했다는 것이다. 욕을 하던 저희끼리 드잡이를 하던 내 알바는 아니지만, 그 사진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하늘과 귀신은 있는 것일까?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며 가끔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하늘이나 귀신을 원망하는 푸념을 한다. ‘하늘(혹은 하느님)은 있는 거야?’ 또는 ‘귀신은 뭐해!?’라며. 자학에 가까운 외침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나는 위의 사진과 그 사진이 실린 기사를 보며 여태까지 느끼지 못한 어떤 사실에 대해 경악하며 이 썰을 푸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귀신은 분명히 존재 한다는 사실에 또한 경악하고 마는 것이다. 516이 혁명이냐 쿠데타냐를 차치하고 흉탄에 시해된 박정희 대통령과 현임 박근혜 대통령을 빼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을 열거해 놓고 보니 이상하게도 ‘김대중과 노무현’만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정답은 하늘이 무심치 않기 때문이다. 즉 귀신도 종북좌빨은 싫은 나머지 먼저 데려 간 것이다. 나랏 돈을 수천 억 해먹으며 골골거려도 아직은 대한민국에 필요한 존재라고 데려가지 않는 것을 보면 하늘이 있고 귀신이 있는 게 분명하다.
민주당이 망할 수밖에 없는 까닭.
새로 선출된 민주당 대표 김한길이 처음 찾은 곳이 국립묘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은 참배를 하며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묘지에는 참배는커녕 아예 발길조차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랬던 김한길과 그 일당들이 빗속의 악천후를 뚫고 천리 길을 달려 죽은 노무현을 참배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부터'김한길'이 아니고 '천리길'로 개명 해야 할 것이다. 하긴 이런 개망나니 수법은 이번'천리길'과 그의 일당뿐 아니고 민주라는 미명을 붙인 종북좌빨당의 관행이기도 하며 심지어 깡통수리공 안철수까지 흉내 내는 더러운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한번쯤 생각을 더듬어 보자. 하늘이 무심치 않고, 일찌감치 데려간 귀신을 숭배 찬양하는 집단이 온전할 수 있겠느냐 이거다. 자신들과는 이념이 다르고 동조를 하지 않는 즉, 빨/갱/이가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점 이 명색만 민주당이 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인 것이다.
싫어도 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
우리 보다 솔직해 보자. 전임 이명박도 현임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시절이나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라도 죽은‘김대중, 노무현’을 알현(?)했었고 심지어 그들의 미망인인 이휘호와 권양숙 등 가족까지 찾아가기를 주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일까? 그 짓(?)이 정말 좋아서 일까? 절대 아니다. 그게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적장을 적장의 마누라와 가족까지 아울러야 하는 게 민주주의의 바탕이고 숭고한 정신이며 싫지만, 싫어도 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인 것이다. 허울뿐인 민주당과 '천리길'이 뼈저리게 반성하고 느껴야할 대목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