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曰, 곡불일욕이백 오불일검이흑(鵠不日浴而白, 烏不日黔而黑): 장자 가라사대, “고니(백조)는 날마다 미역 감지 않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새까맣다.”
위의 얘기는 전 정권(이명박 정권)때 감사원장 후보자로 내정됐다가 ‘전관예우’ 논란 등에 휘말린 끝에 사퇴한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자회견에서 인용하며 본인의 심경을 토로했다는 문구다. 쉽게 생각하면 거저 옛 성현의 좋은 말씀을 인용하며 불만을 표출했을 것으로 보나, 다른 한 편으로는 얼마나 분통이 넘치고 한이 맺혔으면 저럴까? 하고 십분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런 걸 한 번 생각해 보자.
허균하면 홍길동전이 연상 되지만, 허균은 홍길동전을 집필하기 전 틈틈이 중국고서를 섭렵하며 옛 선비들의 품행과 삶의 모습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 등을 엄선하여 정리한 한정록이라는 일종의 독서록이 있다. 또한 한정록에는 은거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룬 글과 도가에서 흔히 거론되는 양생술에 대한 희귀한 정보들도 함께 실려 있다.그 중 퇴휴(退休)부분의 글을 한두 개 소개 하고자한다.
이일지(李日知)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이 형부상서까지 올랐었다. 웬만큼 벼슬살이를 했거니와 후진을 위해 자주 사직서를 올리자, 마침내 임금이 윤허하여 낙향을 했던 것이다. 그가 사직을 할 당시 자신의 아내와는 상의하지 않았기에, 임금의 윤허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즉시 행장을 꾸리니, 아내가 깜짝 놀라 “가산이 텅텅 비어 있는데 어찌 이리 갑자기 사직을 했습니까?”하니 일지는 “벼슬이 형부상서에 이르렀으면 이미 내 분수엔 지나친 것이오. 사람에게 어찌 만족이 있을 수 있겠소.” 하더란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언젠가 함 써먹은 것 같기도 하고....범려는 월나라 구천을 패왕으로 만들고 조각배 타고 오호로 떠나갔고, 장자방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이루었지만 전설상의 신선인 적송자를 따라 표연히 떠나갔으니, 이들은 모두 진한시대(秦漢時代)의 인물들 가운데 월등한데가 있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범려가 공을 세우고 물러간 다음 제나라와 초나라로 옮겨 다니면서 다시 천하에 그 이름을 드러냈으니 그의 재주와 식견은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탁월했다는 평이다. 그때 그가 억만의 재물을 일으켜 스스로 들어내지 않고 산림에 은거하며 불쌍한 사람을 구제 했다고 하니 춘추전국 500년사를 통해 끝까지 공명(功名)을 지킨 사람은 범려 한 사람 뿐이라 하겠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모시는 재신(財神)이 범려라는 설이 있다.
이상의 두 가지 고사(古事)를 들었지만 사람이란 들고 나는 순간을 포착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다. 특히 관직이 높을수록 용퇴하기 힘든 게 인지상정 일 것이다. 이번 안대희님의 용퇴는 朴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한 용퇴이다. 바라건대 안대희 내정자의 용퇴를 계기로 대통령과 이 정부가 요구하는‘전관예우 및 官피아 척결’ 그리고 혁명적 국정쇄신에 박차를 가했으면 한다. 더불어 안대희님의 전도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덧붙임,
전일 정동기님의 사퇴시 올렸던 글을 약간 개조해 다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