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씀에 이르기를,"책인지심(責人之心)으로 책기(責己)하고 서기지심(恕己之心)으로 서인(恕人)하라"즉,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 하라고 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티끌만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면 자신이 저지른 과오나 잘못은 저 자신에게 최대한 관대하고, 타인의 그것에는 추상같은 호령으로 일갈한다. 나라에 지엄한 법이 시퍼렇게 살아있건만, 그 법이 어떤 권력자들에게만 유리하게 되어있는 양, 지엄한 법을 고무줄처럼 당겼다 줄였다 저희 편리한대로 적용시켜 때로는 법이 있는 것인지도 무색할 정도로 고무줄 법을 활용하나니 같은 행위나 위법이라도 저희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불륜 법을 적용 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박정희 대통령과 선친-
박정희 대통령과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사돈의 8촌은커녕 8의 제곱인 64촌도 걸리지 않는 연고가 없는 분들이다. 그러나 두 분은 너무도 공통점이 많다. 우선 같은 해에 태어나셨고, 키가 자그마하니 닮으셨고, 일제강점기라는 같은 시대를 사셨으며, 무엇보다도 두 분은 법집행에 엄하셨다는 것이다. 법(法)하니까, 나의 선친께서 법조계나 입법기관에 관여하신 게 아닐까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게 아닌 단지 지방법원 말단공무원으로 수십 년 근무하시다 어느 순간에 변호사 사무장으로 이직을 하시고 퇴직한 후 말년을 복덕방을 하시며 동네에서 벌어지는 대소사의 민. 형사 사건의 자문(?)역으로 보내신 것 외에는 법과는 전혀 무관한 분이시다.
법이란 존엄(尊嚴)한 것-
나의 성장기에 선친께서는 가끔씩 나에게 엄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초주검이 가깝도록 사형(私刑)을 가하셨다. 고문의 달인 이근안의 수법을 잘 모르지만, 선친께서 나에게 가한 수법이 그에 못지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변함없다. 그런 모진 고문을 받아가며 질곡(?)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이렇게 살아남았고 그 덕분에 오늘도 열심히 조토마에 썰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군사독재가 서슬이 파랗고 유신헌법이 국민을 옥죄었어도 당시는 당시의 실정에 맞게 제정된 법이며 그에 걸 맞는 법집행을 했을 터인 즉 암울한 시대였느니 질곡의 세월이었느니 시어(詩語)처럼 남발하지만 그런 법에 적응하지 못하는 몇몇 인간과 군상들만 괴로웠지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렇게 떳떳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법이란 어떠한 법이든 일단 만들어지고 제정이 됐다면 법위에 상위하는 어떠한 존재도 없어야하며 존엄 그 자체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존엄한 법을 준수(遵守)하며 세상의 질서가 잡혀 나가는 것이니, 하물며 여염집에도 나름의 불문법인 가법이 엄연히 존재하여 가법(家法)에 의하여 징계를 하거나 사형(私刑)을 가해도 어떤 것은 국가적 실정법이 이를 책임 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엄격한 법적용을 하신 박정희 대통령과 나의 선친은 너무도 닮으신 것 이다.
덜 떨어진 군상(群像)들-
나의 썰과는 약간 빗나간 얘기이지만, 가끔씩 이곳이나(토론마당)다른 싸이트에서 김대중이나 노무현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나 글들에'5공이나 군사독제정권 같으면 신문이 폐간 되었거나 잡혀가서 죽었을 것'이라는 공포에 가까운 협박을 일삼는 놈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정도의(덜 떨어진 군상들의 기준이나 잣대)기사나 글들에 대해 묵인 또는 양해하는 것은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정권이 민주주의의 첨단이 아니라, 저희들이 먼저 법을 어긴 죄책감인 것을 꼭 그렇게 공포스런 싸가지 없는 주둥이를 놀리는 놈들이 있는 것이다. 놈들은 물론 대중교 광신도이거나 노사모일 확률이 순도 99.99% 이겠지만, 이런 놈들이 착각하는 것은 이 나마의 민주화를 저희 광신도나 노사모 아류가 지켜온 것으로 엄청난 착각을 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날 권력의 중심부에서 국권을 농락하는 386세대라는 작자들은 저희들만이 오늘날 민주화의 초석이 된 양 함부로 주둥이 놀리며 놀고 자빠졌다. 그들의 부모세대도 형과 누나 또는 아래 동생들 세대도 그들과 같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왔고 또 오늘날을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저희들 덕으로 이루어진 민주화에 이들이 무임승차나 편승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법불가우존(法不加于尊)하는 세력들-
법불가우존이라는 말은 법은 있되, 존귀한 사람이 불법행위를 했을 때 법은 그 존귀한 분에게 법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조조에게나 있음직한 말이다. 법불가우존은 한마디로 법체계 훼손인 것이다. 김대중정권이나 노무현정권의 가장 악랄하고 더러운 실정(失政)은 국법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불법행위를 하다가 국민들의 불만이나 불평을 살 경우, 통치권 행사라는 말 한마디로 면책특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미 국법 따위는 안중에 없는 것이다. 나라 법이 통치권행사 라는 말 한마디의 쫄따구로 전락한 마당에 법인들 권위가 있을 턱이 없다. 원래 법이라는 것이 존엄(尊嚴)하고 만인에 평등해야만 준수도 하고 질서도 잡히는 법인데, 대표로 만들어 주었더니 법 자체를 훼손하고 위반한다면 국민인들 그 법을 지키고 따르고 싶겠는가? 좀은 비약적 해석이지만 민주화가 된 후 법체계 무너지고 법의 존엄성이 파괴되어 나라의 대통령이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이라, 대통령 따위도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한 즉 저들이 위법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판에 무슨 권위로 국민에게 준법정신을 호소하겠는가. 비록 지극히 엄한 유신헌법이나 초주검에 가까운 사형(私刑)을 당했지만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의 시절이 그립고 선친이 지금도 살아 계셨으면 하는 바람은 왜일까?
법은 약속이고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에 위앙이라는 승상이 있었다. 위앙은 어느 때 느슨한 국법을 고치겠다고 왕에게 인준을 얻었다. 그리고 법 개정에 골몰하여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위앙은 즉시 그 법령을 선포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리 새로운 법령을 선포한댔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위앙은 함양시 남문에 3장 길이의 나무를 세웠다. 한 관리로 하여금 그 나무를 지키게 했다. 그 나무 곁엔 위앙이 백성들에게 알리는 게시문이 붙어 있었다."누구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가 있으면 금화 열량을 주노라!!!" 그 게시판을 보는 백성들은 많았으나, 모두가 머리를 갸웃 거리며 의심하기만 한다. 며칠 뒤 위앙은 다시"이 나무를 옮기는 자가 있으면 금화 50냥을 주노라!!!"그러나 백성들의 의심은 더욱 크 가고 아무도 옮기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어떤 술 취한 백성이 그 광경을 보고"반드시 무슨 내막이 있는 모양이다. 50냥 다 주지는 않더라도 얼마간이야 주지 않겠는가. 좌우지간 옮겨보자."라며 그 나무를 뽑아들고 북문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나무를 지키던 관리는 그 백성을 데리고 위앙 앞으로 갔다. 위앙은 그 백성을 크게 칭찬하고 금 50냥을 주었고, 이 소문은 당장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백성들은"위앙은 명령만 내리면 꼭 실행하는 양반이구나."라며 환호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 날로 위앙은 새 법령을 선포 하였다.
준법정신을 함양 하자-
세월호 참사는 현직 관료들이 전직 선배 관료에게 전관예우를 해주면서 규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것이 한 원인이라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즉 전관예우에 따른 적폐현상이 세월호와 같은 끔찍한 참상을 몰고 온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런 참상을 몰고온 적폐를 일소하는 개혁적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법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지키지 않는다면 말짤 도로묵인 것이다. 그동안 관련법이 없어서 적폐가 쌓인 것이 아니다. 법을 지킬 준법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위법을 해도 솜방망이로 처분을 내리니 불법하는 사례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법이 법같지 않으니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다. 위앙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계기가 될 만한 국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자신이 만든 법에 의거하여 죽임을 당했다. 법집행에 지위고하가 없었던 것이다. <前官예우금지법'까지 만들었지만… "전관예우 여전">며칠 전 기사의 제목이다. 법을 집행하는 관에서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의미다. 개혁적인 새로운 법이 옥상옥(屋上屋)이 안되려면 <前官예우금지법>의 준법정신부터 가르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