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부럽다.
묵고 있는 호텔의 티브이를 켜보니 생겨먹기부터 범죄자처럼 생긴 자가 수갑을 차고 인터뷰를 합니다. 나는 그가 무슨 양심범(?)인 줄 알았습니다. 하긴 중국의 양심범이라야 반체제인사 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 사이 모르는 제2의 천안문 사태라도 있었는가? 하고 자세히 보니 환경파괴범이었습니다. 무슨 공장을 하는 모양인대 오폐수 처리를 함부로 하였다는 고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수갑을 찬 채로 심지어 범인의 가족까지도 인터뷰한 화면을 내보냅니다. 그젠가 귀국하여 우연히 CCTV를 보는데, 무슨 사건을 일으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인들의 얼굴이 수갑을 찬 채로 조금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화면상에 노출 되더군요. 중국은 늘 그렇습니다. 확신 범에 대하여 조금의 아량도 없습니다. 얼어 죽을 인권이니 초상권은 무슨... 별걸 다 부러워한다고 하겠지만, 죄지은 놈들을 제대로 다룬다는 의미에서 중국의 단호함이 부럽다는 것입니다.
좌빨 정권에서 비롯된 포퓰리즘.
우연의 일치일는지 모르지만, 제갈대중 때의 일 일겁니다. 우리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라는 노래와 '에비타'라는 영화가 히트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영화와 노래가 어째서 이 땅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야했는지 지금에야 이해가 갑니다. 이 땅에 소위 포퓰리즘의 서막이 열린 것입니다. 지금도 아르헨티나하면 페론, 에비타, 페로니즘과 포퓰리즘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잘나가던 나라가 일순 3-4류 국가로 전락했을 때 우리는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을 떠올립니다. 두 나라 공히 포퓰리즘의 망령을 떨치지 못해 그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죠. 사실 포퓰리즘이라는 것을 '민중주의’라고 옮기기도 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와전된 번역이었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온정적 접근을 추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민중'을 빙자하거나 사칭한 엉터리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을 주도하는 자들은 언필칭 개혁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말만 개혁일 뿐 실제로는 공허하기 이를 데 없고,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고 권력을 획득하면 소수의 지지자들과 자신들의 이득과 논공행상만 있을 뿐 이미 대중과 유리되는 정치적 편의주의와 기회주의가 포퓰리즘의 본색이기 때문입니다.
제갈대중 정권에서 포퓰리즘의 서막이 열렸다면 노무현 정권 들어 클라이막스로 농익었던 것입니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백수들은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입니다. 이런 한계적 상황에 내몰린 처지에서 길게 볼 여유가 없습니다. 사회를 합리적으로 개혁하는 일보다는 즉각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더 급합니다. 이런 조급한 마음속에 포퓰리즘의 마수는 뻗쳐오고 기회주의자들의 잣대의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물량공세가 시작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돕겠다는데 누가 탓하겠습니까. 저소득 계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각종 정책이 봇물처럼 쏟아냈지만 국민들의 정신상태만 느슨해지고 말았습니다.
포퓰리즘과 인권은 일란성 쌍둥이.
우리 지난날을 반추해 보십시다. 포퓰리즘으로 무장된 좌빨 정권은 개혁이라는 미명을 뒤집어씌우고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갈아엎어버렸습니다. 이미 포퓰리즘의 달콤한 맛에 취해 정신상태가 몽롱하고 해이된 민중 앞에 가장 먼저 파고든 인권주의라는 것입니다. 그 놈의 인권주의는 좌빨 정권을 매도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범법자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방어막을 칩니다. 참, 웃기지요. 잃어버린 10년 좌빨 정권이 태동하기 전에 이 땅엔 인권이라는 게 없었습니까? 인권이 어디 숨었다가 발궹이 정권이 들어서자 가쁜 숨 몰아쉬며 그때야 튀어 나왔는지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 후로 이 나라 이 땅에는 그놈의 인권이 넘쳐흘러 주체를 못하고 있건만 정작 한반도 한민족이라며 자나 깨나 걱정하는 북녘 사람들의 인권은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웃기지도 않는 인권주의와 인권을 주둥이에 달고 주창하는 자들이 포퓰리즘의 가장 큰 수혜자이니 더 웃기고 환장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포퓰리즘이라는 것과 인권이라는 것은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박근혜정부의 성공은 포퓰리즘을 벗어나는 것.
오래 전 어떤 살해범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이거 법적으로 사형을 언도해봐야 말짱 도루묵입니다. 살인마‘유영철’도, 또 유영철에 버금가는 살인마들이 사형언도를 받았지만, 어떤 놈 한 놈 사형 당했다는 걸 못 보았습니다. 천인공노할 금수만도 못한 살인마 또는 그에 준하는 범법자들을 사형선고만 내려놓고, 아까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가며 국립호텔에서 먹여주고 입혀주며 극진히 모시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포퓰리스트(이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즉, 좌빨 정권의 잔대가리 굴림이었습니다. 지엄한 국법으로 사형선고를 내린 흉악범들을 그대로 살려 두는 것은, 저희들 손에 피 안 묻히겠다는 더러운 잔대가리 굴림 아닙니까? 잔대가리를 굴리다 못해 인권을 내세워‘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사주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게 좌빨 정권의 행태였습니다. 따라서 모름지기 박근헤정부는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지도자의 령(令)이 제대로 씨알 먹히게 하려면, 좌빨 정권이 정권유지기반으로 삼은 포퓰리즘을 걷어 내고 벗어나야만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여기까지‘썰’을 푼 것은 오늘 아침 아래의 사설을 읽고 너무도 공감이 가고, 정말 이러지 않고는 이 나라가 지탱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장황하게‘썰’을 풀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이 빌어먹을 자유와 더러운 인권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겁니다.
이상은 좀 지난 얘기를 다시 편집해서 올린 것입니다.

아~! 이 빌어먹을 자유와 더러운 인권이 우리의 오늘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덧붙임,
어떤 띨방한 양반들은 저 베라처무글年의 사퇴를 종용하지만 그게 그래선 안 됩니다.
대통령을 모욕하고 저주한 그 한 년을 처벌해서 뭣합니까?
그렇게 망신주고 처벌해서 원수 갚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그 년 처벌한다고 해서 또 그런 년 나오지 말라는 법 없습니다.
기왕 일을 도모하고자 하시려면 발본색원(拔本塞源),악의 근원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따라서 1차 적으로 우리는 아래의 사진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이번 지자체 선거에 활용해야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다음 대선 때 재활용도 해야 합니다. 즉, 마르고 닳도록 조려먹고, 볶아먹고, 우려먹고, 구워먹고, 튀겨먹고, 마지막엔 매운탕으로 국물 하나 없이 먹읍시다. 그것이야말로 원수를 제대로 갚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