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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반전反戰영화 디어 헌터The Deer Hunter - 탈존 영화

작성자:

탈존

조회: 5746 등록일: 2017-08-26

전쟁은 인간성은 물론, 인간이 이룩한 모든 문명까지도 가차 없이 파괴한다. 그 전쟁에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명분마저 없다면 인간성파괴정도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30여 년 전에 감상했던 마이클 치미노Michael Cimino감독의 반전영화反戰映畵 ‘디어 헌터’는 나의 베트남전 참전기억에 더하여 충격 그 자체였었다.
1978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빈틈없이 꽉 짜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다소 지루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적 변화에 관객이 따라갈 수 있도록 감정이입感情移入시킬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은 영화였다.
어떤 시각으로 보면 디어 헌터는 베트남전쟁영화라기 보다 참전했던 세 병사의 후일담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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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철강도시 우크라이나 이민단지에서 용광로에서 일하며 여유시간에 사슴사냥을 다니던 친구들 중에 마이크(로버트 드니로robert deniro분)와 스티븐(존 사베지john savage분), 닉(크리스토퍼 웰켄christopher walken분) 등 세 명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다.
그러나 몸 성히 돌아온 친구는 마이크 뿐, 닉은 시신으로, 스티븐은 두 다리를 잃어 휠체어에 의지해야하는 몸으로 돌아온다.

 
영화에 복선伏線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예감豫感이 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용광로와 눈 덮인 마을풍경부터 뭔가 언밸런스unbalance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의 첫 장면부터 가라앉은 화면의 색조가 심상치 않은 분위로 몰아간다.
그 언밸런스는 스티븐의 결혼피로연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내일이면 모두 전장으로 가야 하는 세 남자를 위해 마을 사람들은 축제를 벌인다. 소란스럽고 무질서하며 흥겨운 향연은 이 영화에서 전개될 비극을 예고하는 듯 보인다.
닉은 린다(메릴 스트립meryl streep분)에게 청혼하고, 마이크는 린다를 훔쳐보며 스티븐의 신부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이렇게 소란스럽고 흥겨운 축제를 이상하리만큼 우울하게 보여주던 카메라는 어느 순간 스티븐과 안젤라가 포도주를 마시다가 하얀 드레스에 핏빛포도주를 흘리는 장면을 클로즈업close-up함으로써 이 부부의 불행한 결말을 암시한다.
피로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스트리킹streaking을 감행하던 마이크에게 닉이 묻는다.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베트남에서?”
“그래.”
“내 삶의 터전은 여기야. 이곳이 좋다고. 만약 일이 생기면 나 혼자 버려두지 마. 반드시 날 데려와야 해. 약속해줘. 마이크!”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들의 마음이 가벼울 리 없다. 그러나 누구나 닉처럼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불길한 생각을 했기에 불행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불행이 닥칠 조짐을 예감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이크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순간 닉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정해버린 것이 아닐까. 
마이크에게도 스스로 정립하지는 못했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얻어진 예감은 있다.
평소 사냥을 가면서도 필요한 장비를 잘 챙기지 못하는 친구에게 사냥용 부츠를 빌려주지 않겠다며 고집이다. 이미 전쟁터에 서있는 병사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정신적인 무장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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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경험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스티브 결혼식 피로연에 그린베레 군인이 불쑥 나타난다. 곧 베트남에 가야할 마이크와 닉이 궁금증이 발동한다.
“우리도 그린베레로 베트남에 갈 건데. 거긴 어때요?”
마이크의 질문에 군인은 감정 없이 대답한다.
“잘해봐.”
같은 장소에 있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경험이 같을 수는 없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마이크가 만난사람들은 모두 “어땠어? 잘 지냈어?”라고 인사를 건넨다. 때로는 영웅대접도 해준다.
그러나 마이크는 한결같이 “좋았어요. 그랬지 뭐.”라고 대답하거나 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다.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인사치례에 불과하다.
전쟁터를 이해했기에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실상을 말해줄 수 있다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 년에 불과한 시간에 얻어진 이질감은 마이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총 맞은 기분은 어때?”
“별로 안 아파. 그 것이 궁금했지?”
실상에 접근한 친구들의 질문에도 대답은 간단하다.
실은 전쟁을 경험했던 자신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들 친구들의 만남은 지난 일 년을 보낸 현재 이 순간의 만남이 아니다. 마이크와 닉, 스티브가 베트남으로 떠나기 일 년 전의 만남일 뿐이다. 피차 겉돌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안다. 물론 우정이 변했다거나 서로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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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에는 감성보다 냉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작전지역에서 낙오병과 구원병으로 만난 마이크와 닉, 스티브는 북베트남군의 역습으로 포로가 되고 만다. 인간 이하의 처우와 목숨 걸고 벌이는 그 유명한 러시안 룰렛으로 죽어나가는 포로들을 보며 스티브와 닉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오직 마이크만이 순간순간 죽음의 길목을 벗어나면서도 탈출의 기회를 노린다. 탈출은 불가능하다고 결정해버린 닉과 스티브를 설득하여 오히려 러시안 룰렛을 이용하여 탈출에 성공한다.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이 새끼들에게 너의 강인함을 보여주라고!”
운명에 항복하기만 하는 닉과 스티브에게 마이크가 부르짖는 말이다.
탈출에 성공하고서도 얼마나 냉정했느냐에 따라 이들의 행로가 갈라진다.
닉은 어머니의 생일을 기억 못할 만큼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이기지 못한다. 창녀를 찾아봐도 린다를 기억하려 해봐도 이미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수없이 방아쇠를 당겼던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한다. 결국 닉은 탈영하여 러시안 룰렛 도박에 빠져든다.
두 다리를 잃고 귀국한 스티브는 아내를 떠나 병원에서 하릴없는 세월을 죽이고 있다.
냉정한 마이크라고해서 정신적인 충격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역시 러시안 룰렛 도박장에 관객으로 출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이크는 역시 냉정하다. 어머니와 안젤라를 버리고 병원으로 들어 가버린 스티브를 그 누구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스티브의 좌절과 경험을 공유했던 마이크는 병원으로 그를 찾아간다.
기어코 안젤라와 어머니 옆으로 되돌려놓은 마이클의 강단 있는 행동은 감성이 아니라 냉정한 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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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사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고향으로 돌아온 마이크는 친구들이 거창하게 준비한 환영파티를 피해 모텔에서 홀로 밤을 지새운다. 생소했던 것이다. 다음날 친구들이 돌아간 다음 몰래 자기 집으로 돌아간 마이크는 아직도 남아있었던 린다를 만난다.
두 사람의 대화 역시 겉돌기만 한다. 린다가 일하는 슈퍼로 함께 가면서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지만 그 역시 겉돌기는 마찬가지다.
“침대에서 우리 외로움을 달래요.”
“안 돼. 왠지 거리감이 있어. 멀게 느껴져.”
함께하기를 원하는 린다의 제안을 뿌리치고 마이크는 짐을 싸들고 나간다. 두 사람은 그 날 밤 모텔에서 밤을 지새운다.
닉을 사랑했던 린다다. 당연하게도 과거에서의 만남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새로운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단 한발로 사슴을 명중시킬 수 있었던 마이크였지만 전쟁을 경험한 다음에는 차마 사슴을 정조준하지 못한다. 호기롭게 사냥한 사슴을 차에 싣고 돌아오던 과거를 잃은 것이다. 나 역시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후 낚시와 사냥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기에 마이크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어보고서야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일까. 마이크는 친구가 권총으로 장난을 하자 그의 권총을 빼앗아 러시안 룰렛을 해버린다.
베트남에서 러시안 룰렛도박에 빠져버린 닉은 병원에 입원한 스티브에게 끊임없이 돈을 송금한다. 과거를 망각해버려 돌아올 수 없는 닉이지만 불구가 되어버린 친구를 위해 돈을 보내줄 본능적인 심성은 남은 것일까.
돈을 보내는 사람이 닉임을 눈치 챈 마이크는 함락직전의 베트남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미 닉은 마이크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불가피하게 닉과 러시안 룰렛으로 정면대결을 벌이는 마이크다.
차례로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며 고향에서의 기억을 되살려주려고 애타게 설명하는 마이크의 말에 드디어 닉이 반응하는 순간, 발사된 총탄이 닉의 머리를 관통한다.
결국 시체로 돌아온 닉. 장례가 끝나고 옛날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이크는 자신을 버려두지 말라던 닉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일까.
병원에서 돌아온 스티브와 안젤라까지 참석한 자리였지만 슬픔은 끝이 없다. 이들은 과거의 우정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새로운 우정을 다시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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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전쟁을 많이 치룬 나라다.
그 많은 전쟁 중에 명분 있는 전쟁이 얼마나 되는 것일까. 시각에 따라서는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은 그나마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도 굳이 참전을 미루던 중에 일본의 진주만 습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참전했으니 나름대로의 명분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서냉전시대에는 자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목적보다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다른 나라의 전쟁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쟁이 그랬다.
최근의 전쟁은 더욱 그렇다.
그런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은 정신적인 공황恐慌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전쟁에서는 미군을 환영하는 민중이라도 있었다지만 베트남에서는 남베트남 국민들조차 미군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자국민들조차 목숨 걸고 싸웠어도 귀국하는 병사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이럴 때, 전쟁에서 얻어진 정신적인 질환을 치유하기 어렵다.
전쟁영웅을 기리던 영화들이 본격적인 반전주의로 돌아서기 시작한 때가 베트남전쟁부터였다.
 
디어 헌터는 반전주의 영화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겨울들판에서 벌어지는 사슴 사냥, 베트남에서의 끔찍한 러시안 룰렛 장면들, 고향으로 몸은 돌아왔으나 영혼을 잃어버린 병사들.
183분의 긴 러닝타임을 채우는 건 사건이 아니다. 인간을 둘러싼 냉엄한 자연과 열기가 폭발하는 철강공장, 그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비장한 삶이다.
한마디로 답답하기 이를 데 없이 어두운 인간의 삶을 냉정하리만큼 계산하여 그려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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