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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왜곡사전이 필요할 것 같다.

작성자:

탈존

조회: 3032 등록일: 2017-02-19

언어왜곡사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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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오래간만에 제주도를 찾았다. 직장생활하던 시절 출장을 다녀올 때, 서로 통하는 바 있어서 가까이 지냈던 제주연극인 여식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제주도를 찾았으니 비바람 님에게 연락이라도 해야 할까 싶었지만 괜스레 바쁜 분 번거롭게 할 것 같아 삼갔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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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는 내 인생의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곳이다.
  6·25 전, 선친께서 육군 중위로 4·3 사태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셨고 6.25 직후에는 대위로 서귀포 어딘가에 있었던 부대로 전출되는 바람에 이사를 했었다. 1955년 도쯤이었을까, 초등학교를 제주도에서 입학했으니 어찌 추억이 없겠는가.
  <o:p></o:p>
  우리가 이사했던 동네이름이 기억에 아리송하지만 아마도 해녀들이 유독 많이 사는 시골동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동네 앞으로는 내가 동네 아이들에게 수영을 배웠던 한 길 너머 물속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맑디맑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동네 북쪽 한라산 방향으로 삼방산이 아담하게 자리 잡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제주도의 시골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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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돌, 여인이 많다하여 삼다도三多島라 불릴 만큼 집집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 돌덩이로 담을 쌓았고 바닷바람이 워낙 거세서 얼기설기 새끼줄로 초가지붕을 단단하게 동여매었으며, 하다못해 밭마다의 경계 조차 예의 그런 돌로 쌓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채롭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동네에 그 무엇보다 여자들이 많았고 남자가 경제활동을 하는 육지와는 달리 그 여자들이 해녀 등등의 일로 거의 모든 생활을 책임지던 고장이었다는 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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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메기(花蛇)며 살모사, 그 무엇보다도 구렁이들이 많아서 집집마다 집지킴이 구렁이를 우대하던 곳. 돌담 구멍구멍을 미끄러지듯 휘감으며 지나던 구렁이들을 흔히 볼 수 있었던 곳. 어느 날 어머니가 바가지를 들어 올리다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바람에 기절까지 하셨던 곳.
  동네 앞 바다에 지프처럼 생긴 바위를 중심으로 동네 아이들과 자맥질하며 놀던 그 곳. 대변을 볼라치면 배고파 기다리다 못해 엉덩이를 핥아주던 흑돼지가 있던 곳. 1, 2학년이었던 우리 형제가 유일하게 교과서를 가진 학생이었을 만큼 가난했던 곳, 문맹률이 높아 뒤늦게 입학한 열다섯 살이 넘은 동급생들과 함께 공부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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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가족이라 초등학교를 열두 번이나 전학하며 다녔을 만큼 이사가 잦았기로 어찌 제주도를 잊을 수 있을까.
  1학년을 마치기 전에 부산으로 다시 이사를 했었지만 제주도에 가볼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20여 년 전쯤 전국연극제 개막행사를 주관하느라 제주도에 출장 갔을 때, 그곳 연극인들에게 당시 추억을 예기했더니 어쩌면 우리가 살던 곳이 ‘사계리’였을 거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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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았던 그 당시, 아마도 제주도로 이사 간 지 한 달이 지나기 전이었을 것이다.
  두 살 터울인 형과 함께 4․3 사태 때 공비들을 몰아넣고 죽였다는 삼방산 토굴에서 놀다 내려오던 참에 길을 가로지르는 늘메기를 잡아가지고 휘휘 휘두르며 신바람 나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고구마를 캐던 아주머니들이 소리소리 질렀다. 육지 말과는 전혀 다른 제주도 방언을 도데체가 알아들을 수 없어 곤혹스럽기가 짝이 없던 차에 아주머니들의 손짓이 오라는 뜻인 것 같아 쫓아갔더니 뱀을 가리키며 열을 내는 것이 아마도 뱀을 죽이면 안 된다는 뜻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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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어린것들이 귀엽다고 여긴 것일까, 고구마를 듬뿍 주는데 둘이서 가져가기에는 너무 양이 많았었다.
  “아줌마, 보자기 좀 빌려주세요.”
  이웃이기에 내가 눈에 띄는 보자기를 가리키며 잠시 빌려달라고 부탁함과 동시에 아주머니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불처럼 화를 내며 나를 쥐어박기 시작했다.
  사건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내 멱살을 틀어쥐고 어머니에게 끌고 가서는 소리소리 지르며 어머니를 닦아세웠다. 제주도 방언을 알아듣지 못하기는 어머니도 나와 다를 바 없지 않던가. 서로 간에 의사소통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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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한 동네 사람들이 모두들 우리 형제와 어머니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더라는 것이었다.
  어린 눈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 역력했고 그것은 진심인 것으로 느껴졌었다.
  <o:p></o:p>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젊었을 때 육지에서 일을 했었다는 동네 어른께서 나선 다음에야 비로소 사건을 끝낼 수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육지 댁 아주머니가 동네 사람들에게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전갈을 받고 뛰어온 어르신께서는 자초지종을 듣고는 싸움을 말릴 생각도 못한 채 폭소를 터뜨렸다. 심각한 상황에서 폭소라니. 모두들 어르신에게 시선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o:p></o:p>
  어르신께서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에게 차례로 무슨 말인지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말을 듣고서 얼굴을 붉히며 겸연쩍어하던 아주머니들이나 어머니 표정을 지금도 확연하게 기억한다.
  당시 경험을 듣고 피식 웃던 제주연극인들도 ‘발음이 꼭 같은 건 아닙니다.’라면서도 보자기가 무슨 말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직도 그 말뜻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지만 결국 그 사건이 동네사람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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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준말로 교육을 받는 학교 다니는 아이들과는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그 때까지만 해도 시골에 들어가면 표준말을 모르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언어란 의사소통의 약속이다.
  같은 단어, 같은 문법의 말을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 요즘의 사회풍토가 새삼스레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애국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보수적인 사람들과 종북세력이 쓰는 의미가 다르고 민족이라는 단어, 민주화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서로 판이하게 다른 것 같다. 간첩이나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져 위해를 가한 자들을 민주열사라고 지칭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o:p></o:p>
  며칠 전에 보수와 진보의 의미가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의미와 북한에 헌상하려는 빨갱이를 가리키는 용어로 변질되었다고 말했는데, 이러다가는 종북세력용, 민주팔이용 언어왜곡사전이 따로 나와야하는 시대가 도래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민족은 피와는 관련 없이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종북반역자들을 일컬음이요, 민주화란 김일성을 추종하자는 의미요, 애국이란 대한민국이 아닌, 김일성 일가의 왕조를 가리킴을 모른다 하겠는가.
  그놈의 민주화가 우리가 지녔던 인간성마저 파괴한 것은 아닌지 너나할 것 없이 반성해야 할 것 같다.

댓글 : 2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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