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가고 있다. 영국 시인 겸 극작가인 T.S. 엘리엇은 대표작 ‘황무지(荒蕪地)’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4월은 일 년 중 네 번째 달이며 봄의 문턱에서 식물이 성장을 시작하도록 대지가 문을 열어 주는 달이다. 4월은 로마인의 ‘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열다’라는 말이 아페리오(aperio)였기 때문에 아프릴리스(Aprilis)가 되었고 지금의 에이프릴(April)이 되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4월은 우리의 가슴 한 곳에 남아 있는 얼어붙은 겨울을 박차고 따스한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세월호 대참사로 인해 우리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로 기억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제주인에게도 4월의 시작은 가슴 아픈 기억의 저편에서 다가선다. 바로 제주4.3사건 때문이다. 냉전시대 유물사관 이념의 희생양이 된 제주도, 이 사건이 발발하기 전 제주는 지금보다 더 매력있는 섬이었다. 도민들은 태생적으로 대체로 소박하고 순박성을 지니고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인문자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제주도는 '신화와 전설의 섬'이라 불리어 질 만큼 어디를 가도 풍부한 스토링이 있어 신비한 분위기가 떠도는 섬이다. 자연조건과 조화하면서 소박한 삶을 영위해 온 제주인들의 꿈이 깃들어지면서 유니크한 문화가 형성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제주도가 자랑하고 있는 삼다(三多: 바람, 돌, 여자), 삼무(三無: 도둑, 대문, 거지), 삼보(三寶: 인심, 자연, 열매), 삼려(三麗: 언어, 식물, 수산물) 등의 정신문화에도 오롯이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4월만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잔인한 달로 기억되고 있다. 제주4.3사건은 제주인의 소박함과 순박성까지도 앗아가 버렸다. 실제로 이로 인한 갈등과 반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제주4.3사건이 정치와 이념성의 한 가운데서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건이 발발한 시대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직원들에 의해 아무것도 모르는 선량한 도민들에게 토지의 무상몰수와 무상분배, 무상교육 등의 공산주의 사상을 선전・선동당하고 조직화된 결과다. 도민들은 순박하기만 했지 사상이 무엇인지 이념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가난하고 순박한 도민들은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무상교육, 부자와 가난한 자 없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달콤한 감언이설(甘言利說)에 현혹되어 주동자의 선전・선동을 무조건 따르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선동에 앞장선 자들은 대부분 신지식인들이었으니 권위가 실릴만 했다. 여기에 당시 공직자의 비리, 인권침해, 3.1발포사건 등은 민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재(在)조선미국군사 기록에 의하면 '제주도의 약 6만 내지 7만으로 추정되는 주민이 남조선노동당에 가입된 상태로 추정된다. 그들은 주로 교육을 받지 못한 농부와 어부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2차 대전과 6.25전후의 곤경 상태에서 남로당이 그들에게 지속적인 경제적 보장을 제의한 것에 쉽게 설득 당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당시 도내 전체 인구(약 27만 여명)를 감안할 때 얼마나 많이 선동에 넘어 갔는지 추정이 가능하고, 상황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미군정의 기록은 그 숫자의 신빙성을 의심한다 해도 당시 도내 좌익세력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사점이 있다.
제주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해 일으킨 무장반란이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의 희생을 불러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바른 처방을 기대할 수 있다. 4.3사건도 성격 규명과 함께 옥석(玉石) 구분이 전제되어야 한다. 폭동 주동자는 법대로 처벌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에게는 명예회복과 함께 적절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4.3공원내 불량위패 제거는 물론이고, 시기상조라는 여론과 맞물려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추념일 지정 여부도 그 연장선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4.3사건이 진정한 역사 교육의 장(場)으로 기능하려면 왜곡, 편향되게 접근된 역사 인식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진정한 화해와 상생은 자기 성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주4.3사건도 여기에 자유로울 수 없다.
4월이 가고 있다. 봄이 문턱에 왔다는 말도 된다. 이제 봄은 왔지만 다른 봄이 기다려진다. 막연히 뭔가를 기다리는 심정보다는 해원(解寃)이라는 새로운 인식으로 접근된 미래와 연결시키는 제주4.3사건의 다른 인식이다. 만약 봄이 변화를 약속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역사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도 하지만 이는 존재의 기록이라는 다른 이름의 역설이다. 우리는 4,3사건이 던지는 교훈을 자각해야 한다. 훗날 역사가 “나라를 위하여, 나라를 사랑했느냐. 시대를 한탄하고 때론 조국을 원망하는 자들아, 시대와 조국을 위하여 지금까지 한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제주4.3사건도 그 연장선에서 고찰해야 한다.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반란이 일어날 때 진압하지 않는 국가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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