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必死的)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두 개의 뜻이 있습니다. 그 하나,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그 둘, 죽을 각오로 힘을 쓰다 입니다. 이 말은 주로 좌빨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대갈빡에 뻐~얼건 수건을 두르고‘필사(必死)’어쩌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요. 그런데 한 놈도 디지는 걸 못 봤습니다. 주데이로만 필사를 외치는 거죠.
그리고 아직도 그 여진(?)이 남아 있습니다마는‘카이스트’학생들의 자살 문제 말입니다. 저는 이런 놈들을 보면‘잘 죽었다’라고 합니다. 제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는 놈들은 남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수년전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수십 명을 쏘아 죽이고 자살한 조某라는 교포학생이 그런 아류죠. 조모라는 놈과는 달리 저희 목숨만 끊은 게 그나마 다행이죠.
사실 저도 죽음(자살)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닙니다. 하던 사업이 철저히 망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 다닐 때가 있었죠.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 한 목숨 죽는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부모형제는? 무엇보다도 마누라와 3남매는?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살아보자고 용기를 냈습니다. 기회를 엿보며 닥치는 대로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살았습니다. 자살이라는 건 어떠한 경우에라도 비겁한 행위입니다. 저 혼자 모든 어려움에서 해방되어 보겠다는 더럽고 치사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살하는 자들을 가장 경멸합니다. 아이고! 얘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렀습니다.^^;;;
계압성(鷄鴨城)을 홀로 지키는 계장군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제 아랫동서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다가 중과부적을 느끼고 뒷날을 도모하며 필사적(必死的)으로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던 것입니다. 저는 계장군의 그 모습에 철학적 가치를 느꼈습니다. 아니 한 가지 득도를 한 것입니다. 그래! 인간이나 짐승이나 필사적(必死的)일 필요가 있겠구나....라는. 하찮은 미물도 필사의 노력으로 구명도생(苟命徒生)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생을 쉽게 포기 한다는 게 말이나 될 소립니까?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 이라고 이름은 이를 두고 하는 얘깁니다. 아무튼 비록 적(?)이지만 존경의 념이 절로 들었습니다. 아울러 굳건한 계장군의 그 모습에 탄복한 저는 계장군을 살려 주기로 했습니다.
계장군의 당당한 위용. 거짓이 아니고 이렇게 접사(?)를 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도 동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린 벗이 됐다. 어떤 분 말씀 대로 장군은 오골계다. 어떤 경우에라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에 놈을 살려 주고 싶었다. 놈은 이제 좁은 아지트엔 거의 없다. 천하(?)를 유유자적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계압성(鷄鴨城)이 자리하고 있는 성(城)터는 향후 제가 지어야할 오장원(吳莊園: 吳家네 장원)의 터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계압성을 허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결국 날은 잡혔고 철옹성 같았던 계압성은 현대적 공성기구에 의해 쉽게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마지막 항장(抗將) 계장군을 향해 속으로 기도 했습니다. “그래! 어디든 멀리멀리 도망가서 잘 살아라! 더 이상 너를 쫒거나 방해 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결국 계압성(鷄鴨城)은 허물어지고 오장원(吳莊園)의 터로 변할 것이다.
드디어 계압성은 허물어지고 오장원(吳莊園)의 터로 변모했고, 성이 허물어짐과 동시에 계장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땐 솔직히 계장군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계장군 존재 자체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이었습니다. 장군의 우렁찬 포효(?)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제 벗이 누구인지 명종(鳴鐘)이가 누구인지 아셨으니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계장군이 명종(鳴鐘)이고 명종이가 이곳에서 사귄 저의 벗입니다.
계압성에서 쫓겨난 계장군의 아지트는 소나무 숲이었다.
첫 닭은 4시를 전후해서 울고 두 번째 닭은 5시를 전후해서 웁니다. 그날 새벽 첫 닭이 울 때 비몽사몽간에 계장군의 울부짖음을 들었으나 설마 계장군일까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계장군의 포효를 들었을 때 분명 계장군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놈의 위치를 찾아 다녔습니다. 얼마 후 놀랍게도 계장군의 아지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장원(吳莊園)의 터 앞엔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습니다. 놈은 소나무 가지 위에 자신의 안식처를 마련하고 매일 장군다운 목소리로 포효를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운지....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계장군의 관사(숙소) 근처에는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매일 계장군께 식수를 포함한 먹을거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계장군이 저를 두려워 않는 것이었습니다.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면서 전혀 적의를 느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된 것입니다. 막역지우는 아니지만 벗이 된 것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비록 미물이지만 새벽마다 포효로 저를 각성(覺醒) 시켜주는 벗에게 이름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벗의 이름을 지어주려고 고민을 좀 했습니다. ‘달구? 닭근혜? 달쉐이?....’ 벼라 별 잡스런 벗의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매일 시간 맞추어 울어주는 자명종(自鳴鐘)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놈의 이름을 명종(鳴鐘)이로 하자! 그리하여 제 벗의 이름이 명종(鳴鐘)이가 된 것입니다. 놈을 부를 땐 명종아! 하고 부르며 놈에게 식수를 포함한 먹을거리를 제공할 때도 반드시 이름을 부르고 준답니다. 그런데 놈은 제 이름은 알아도 성이 계(鷄)씨 인줄 모른답니다. 명종이 제 친구 계명종(鷄鳴鐘)얘기는 그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나의 벗 계명종(鷄鳴鐘)은 언제나 내 곁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놈의 필사적 행동이 이룬 결과이고 또한 비굴하지 않고 의연하며 당당한 행동의 결과이다. 조만간 제천 장날 어여쁜 짝을 마련해 줄 계회이다. 물론 저택은 아니더라도 살만한 집도 마련해 줄 계획이다.
덧붙임,
우리 인간들은 말 못하는 명종이처럼 필사적으로 살아 나가야겠습니다. 사람이 닭만도 못해서야 쓰겠습니까? 제발! 닭 보다 못한 인간 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