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PD네의 초청이 있는 날, 그날의 메뉴를 미리 알아보고 정중히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노량진시장에서 물 좋은 생선을 사왔다며 매운탕을 끓인다든가 아니면 무슨 찌개를 끓였으니 오라면, 이미 식사를 했다며 거절을 하고 했다. 두세 번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한번 씩 가는 경우가 자주 있다. 솔직히 가봐야 내 입에 맞는 게 없으니 깨작거리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산까치’는“아! 참! 오사장님 매운 거 못 잡숫지..비린 거 안 잡숫지..”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이런 점이 나는 속상한다. 매운 거 안 먹고 비린 거 안 먹으면 부르지를 말던지 그런 거 말고 다른 걸 좀 내놓던지……매번 말로만…내가 위암수술환자였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 그렇다고 정색을 하며 항의 할 수도 없고. 그래도 나름 잊지 않고 초대장을 보내는 데…이거 환장할 노릇 아닌가?
엊그제의 사달(?)도 그렇다. 딸아이를 미국으로 보내고이PD네가 오랜만에 이 산골에 왔다. 물론 자신들이 내려온다는 기별을 먼저 주고서. 일주일여의 간격을 두고 만났으니 반가운 해후다. 이런저런 인사를 나눈 뒤 저녁에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번 딸아이에게 보여준 호의에 대한 초대다. 그날의 메뉴는‘우거지 선지국’이라는 것이다.
서울 집근처에 대통령도 가끔씩 온다는 유명한‘선지해장국’집이 있다. 그 전엔 매일이다시피 새벽같이 북한산(주로 향로봉)을 오르고 하산을 하면 꼭 그 집을 들려‘선지와 양을 뺀’우거지만의 해장국을 조반으로 맛나게 먹곤 했었다. 사실 나는 선지와 양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우거지로만 채워 진 맑은 해장국에 약간의 후추와 다진 고추양념(다데기)을 넣어먹는다. 따라서 그날의 저녁초대가 그런 정도의‘선지국’으로만 알았다.
여차하면 선지와 양은 버릇대로 건져내면 될 것이고,,,,솔직히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PD와 산까치는 선지국을 끓이기 위한 모든 재료를 나를 위해 사왔다며 꼭 오라고 부부가 번갈아가며 전화를 하는 바람에 지나친 사양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고 약속된 시간에 개울을 건너 이PD네 집으로 마누라와 함께 갔던 것이다.
좌정을 하자, 주방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든‘산까치’님이 드디어 선지국을 내 놓는다. 그것도 적당한 대접이 아닌 양푼으로…(누굴 돼지로 아나??)그렇지만 그것은 이PD네의 호의고 선의다. 탓 할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선지나 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둘 다 빼고 우거지를 많이 넣어달라는 주문을 했으니까. 그리고 우거지 선지국을 먹는 순서대로 후추를 주문한 뒤 얼마간의 후추를 풀고 첫 술을 떠서 넘기는 순간, 정말 찰나적 순간 입안이 화끈거리며 위와 장이 아려 온다. 우선은 뜨겁기도 하지만‘산까치’의 예찬론인‘캡싸이신’의 매운 맛이 나의 위장을 후벼 파는 것이었다. 자칫 온몸으로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아랫배를 움켜잡고 두어 번온 몸을 뒤틀다가 나는 그만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화가 치민다.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서 태연을 가장 할 수 없다. 함께 간 마누라를 남겨 둔 채 혼자 집으로 달려오고 말았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좋은 이웃’ 이PD네의 호의나 선의보다는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이었다. 늘 그러했지만, 내가 매운 거 못 먹고 비린 거 안 먹는 거 알면서….“도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그 매운 선지국을 끓였으며 그 따위를(분통이 터지니 단어를 가려서 쓸 입장이 아니었다.)먹어 라고‘초대’한단 말인가? 미친 거 아냐? 응!?(이 부분은 마누라가 돌아오자마자 터트린 나의 울분대목이다.)”미리 청양고추 태양초를 듬뿍 넣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끓인 줄도 모르고 후추까지 첨가했으니…
집으로 돌아와 혼자서 분을 삭이는 순간 문득 이솝우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여우와 두루미’,두루미를 초대한 여우가 음식을 쟁반에 내 놓자 두루미는 하나도 먹지 못했고, 이에 화가 난 두루미는 여우를 초청하여 주둥이가 긴 병에 음식을 담아냈다는….남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초청이나 초대가 진정한 것인가? 도대체 무슨 맘을 먹고 무슨 목적으로 그런….아무리 좋게 마음을 먹으려 해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내가 언제 저희한테 여우 짓을 했나? 두루미 짓을 했나?
벌떡이며 그렇게 나홀로 성질을 부리고 있을 때 전화가 요란히 운다. 이PD다. 전화가 울거나 말거나 내가 지금 전화 받을 기분인가? 한참을 요란히 울던 전화기가 잠잠해진다. 그때까지도 아려오는 위장을 부여잡고 잠이 들었나보다. 소파에서 웅크린 채로 잠든 오 척 남짓의 내 몸 위로 이불이 덮여 있다. 점심도 굶은 채로 있는 성질 없는 성질부리다 잠든 가련한 몸뚱이에 마누라의 애틋함이 묻어난다.
잠 깬 나에게 마누라의 일성“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전화도 안 받고…이PD내외가 얼마나 미안해 하고 전전긍긍해 하는지 알아요!?”,“뭐야!?도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그 매운 선지국을 끓였으며 그 따위를 먹으라고‘초대’한단 말이야!? 미친 거 아냐?응!?”있는 그대로 마누라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까 만치의 분노는 사라졌다. 한 숨 자고 일어난 나의 목소리엔 울분이라기보다는 이PD내외에 대한 죄스러움이 더 배어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주체 못 할 후회가 밀려온다.‘이 노릇을 어쩐담? 낫살 처 먹더만 망령이 낫나? 치매가 왔나?’ 그제 서야 자책, 자조, 자괴 그리고 자성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거실창밖으로 이PD네 집을 바라보니 그가 왔다갔다 무슨 일인가 열심히 하고 있다. 어쩌지…???
<사진>
개울건너 이PD네집. 내년 초에 정년퇴임이란다. 그도 아담한 전원주택 새로 짓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우린 언제까지 서로 좋은 이웃으로 남을 것이다.
방법이 없다. 진열장을 바라본즉 지지난 주 김포사돈께서 이곳에 오셔서 마시고 남기신 양주(발렌타인 21산: 양주를 못 마신다.)반 병이 눈에 뜨인다.“그래! 저놈이야!”마른안주 몇 가지 주섬주섬…한참 일을 하고 있는 이PD네로 향했다. 그리고 불문곡직“아이고! 지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요!”를 외쳤다. 물론 그쪽에서도“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오히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란다. 그리고 우리는 비록 먹다 남은 양주지만 그렇게‘좋은 이웃’으로 다시 돌아 온 것이다.
덧붙임,
‘불편한 초대’를 썰하면서 특히 마지막 장에‘여우와 두루미’우화를 그려넣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선 며칠 남지 않은 종북좌빨당의 행태가 오버랩됩니다. 중간에 사퇴하는 늠도 문제지만 선거일 막바지에 이르러 세 불리를 느끼고 대선잔치에 끌어들이려는 저 꼼수가 마치 어울리지 않는 초청을 하려는‘여우와 두루미’같다는….아무리 진수성찬이지만 상대가 맛 나게 먹을 수 없는 것들이라면 그것은 친절한 초대가 아니라 불편하고 고역인 것입니다. 물론 저는 앞집 이PD네와 그런 불편과 고역을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이PD네도 매운 고춧가루를 덜 쓰게 될 것입니다. 최소한 저희를 초대한다면…..
BY SS8000 ON 12. 2, 2012 씀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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