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뉴질랜드에 있는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웬일이냐?”, “아빠! 외할머니 얘기 너무 사실적으로 올리는 거 아녜요?”, 아마도 페이스 북을 통해 내가 올리는 썰을 보고 있는 모양이다.“사실적? 단어 하나 토씨 하나 틀리거나 왜곡 된 거 없다. 차라리 외할머니가 볼 수만 있다면,,,,아니지 너희 외삼촌들 이모들도 함께 봤으면 더 좋겠다. 요즘 이 아빠가 너무 힘이 든다. 이렇게라도 하소연 아닌 하소연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라는 대화를 나누었다. 오래전 어떤 독자(?)로부터 가족 일상사를 무엇 하러 그렇게 적나라하게 올리느냐며 비아냥조로 댓글을 단적이 있지만 나는 다만 나의 일상에 벌어지는 얘기들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특별히 이번 ‘장모님’을 주제로 삼은 것은 나중에 별도의‘에필로그’로 그 이유를 달아 볼까 한다. 각설하고….
솔직히 얘기하면 나 역시도 비록 매형이 마을 사람들 앞이나 사돈내외분 앞에서 망신을 주긴 했지만, 사람의 그릇이 그 정도뿐인 걸 어쩌랴 싶고 또 불쌍하고 가련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글세 얻을 보증금 기백 만 원도 없는 처지의 사람이 쫓겨나다시피 하는데 마음이 아프긴 마찬가지였던 차인데, 아내가 그런 얘기를 하며 수습 론을 내 놓기를“아래채를 반으로 가르자”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매형이 집을 비워야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 먹장구름 같은 것이 깔려 있었는데 아내의 그 제안은 천상의 나팔소리 같은 구원의 복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로 업자를 부르고 견적을 받고 칸을 치고 매형의 공간에 새롭게 수도도 끌어들이고 주방도 만들고…아무튼 불편함 없이 매형의 공간을 만든 뒤 매형은 약간의 짐만 반으로 가른 아래채 뒤쪽으로 옮기고, 처제의 원룸에서 장모님을 아래채로 온전하게 모시고 이사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장모님이 아래채로 오시고 열흘이 채 가지 않았을 즈음 하루는 조용히 나를 부르신다.“나 좀 서울 작은놈(처남)에게 데려다 주게…”뭐, 들어보나 마나한 말씀은 언제나 작은 처남에게 돈을 받을 게 있다는 얘기를 주야장천으로 했기에 더 듣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런 얘기시라면 더 듣지 않겠습니다.”라고 나오면 어떨 땐(거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위채로 올라오셔서 좌정을 하고 어린애처럼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여전히‘대가리에 똥 밖에 안 찬 년 놈들…’을 외치는 것이었다. 이젠 그 얘기만 들으면 노이로제에 가까운 짜증과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장모님이 작은처남에게 받아야 할 돈이라는 것도 그렇다. 두 번째 결혼을 한 처형이 남편 되는 자의 사업자금으로 장모님 명의의 집을 은행에 저당 잡혔고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자 결국 그 가옥이 경매에 넘어 갔는데 워낙 아까운 생각이 든 작은처남이 경매를 통해 낙찰을 받고 한동안 내 준 이자와 원금을 공제하고 5천여 만 원을 장모님께 넘겨주었는데 그 돈의 행방이 묘연해 진 것이다. 그럼에도 장모님은 경매 당시의 이런저런 과정은 무시하고 작은처남이 자신에게 집값을 제대로 쳐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 돈의 행방에 대해 처가의 모든 식솔은 처형을 의심하고 있지만 워낙 엉뚱한 여자라 의심만 품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호호백발 노인네가 서방질을 한 것도 또 정선의 카지노에서 배팅을 한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갔겠는가. 결국 작은처남은 제 어미에게 좋은 일 한다고 해 놓고 오히려 빚쟁이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장모님의 엉뚱한 속셈을 익히 아는 나였지만 지척에서 마주 바라보고 채근을 하거나 보채는 모습에 하루하루 힘이 들어가는데…..그 때까지 전해만 들었지 설마? 하는 의구심만 가졌을 뿐, 떨어져 있을 땐 몰랐던 장모님의 행동이 서서히 들어나기 시작하며 저 노인네가 과연 내 장모님이 확실한가? 정말 저런 양반이었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산골일기의 주제를‘장모님’으로 잡은 것은 어제도 밝혔지만 이렇게라도 하소연하고 쌓이는 스트레스에 대한 심리적 보상을 받고 싶어서이다. 물론 아내는 장모님과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행태나 사건(?)에 대해 내게 너무 미안해하고 때론 내 입막음을 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선수를 치며 장모님께 큰소리 내는 걸 가끔 목격한다. 그럴 때마다‘큰소리 내지마라, 누가 들으면 제 어미 모신다고 데려와 구박하는 줄 알겠다.’며 내가 말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모님의 납득 안가는 행동을 직접 대해야 하는 요즈음이 너무 괴로운 것이다.
무슨 얘긴 고 하니, 아내와는 지난 8월부터 주말부부가 되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서울 집으로 올라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고 기약 없는 주말부부가 된 것이다. 토요일 저녁 늦게 도착한 후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서울 집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아내가 이곳에 있을 땐 장모님의 엉뚱한 언사나 행동들은 1차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나도 다 아는 사실을 어떤 것은 재방송처럼 아내를 통하여 듣기도 또 아내의 등 뒤에서 지켜봤었지만, 아내가 없는 요즈음은 그 어떤 것도 필터링 되거나 순화되지 않은 채 원천적, 각색이 되지 않은 원본(?)그대로 내 5척 남짓한 단신에 파고들고 꽂혀 드는 것이다.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장모님의 병원 타령이다. 당신이라고 멀쩡하게 살아있고 잘 사는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사위 눈치 보는 더부살이가 어찌 마음이 편하실까. 장모님의 병은 스스로 자초한 마음의 병이고 화병이지 육체적 고통이 동반되는 그런 병이 아니다. 밤낮을 통하여 불현 듯 자식 놈들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고 가슴이 답답하신 모양이다. 그런 증상이 도지면 한밤중에도 고요한 산골의 문짝을 두드리면 자다가 깜짝 놀라 깨어 나가보면‘내가 지금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게 죽겠네. 병원 좀 데려가줘!(항상 똑 같은 메뉴다)’ 뻔 한 병을 119구급차를 부를 수도 없고‘내일 아침에 꼭 모시고 갈 테니 일단 주무십시오.’그렇게 달래지만…그 스트레스를 어찌 필설로 표현할까. 그리고 준비를 마친 뒤 아침에 병원가자고 하면‘자고 일어났더니 괜찮네.’ 그 말씀에 그만 맥이 빠지고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때로는 지나가는 나를 ‘사위! 이리 와봐!’반 명령조로 불러 툇마루에 앉히고 병원 얘기를 하시면“어머니! 어머니는 몸이 아프신 게 아닙니다. 마음이 아프신 게지요. 어머님 연세가 낼모레면 90이세요. 이제 뭘 더 바라십니까? 자식들이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하시고 마음을 다스리세요. 치밀어 오르는 울화는 자식 원망 같은 거 하지마시고 다 내려놓으면 편하십니다. 네?? 우리 그렇게 사십시다. 제가 잘 모실 게요‘라며 마음에도 없는 부처님 같은 말씀을 드려보지만 그때는 해탈하고 득도한 노승처럼’맞는 말 이고말고…나는 사위 앞에서 죽을 껴…‘ 그러나 돌아서면 또 그 타령. 차라리 치매라면 처가 식솔들과 상의하여 노인병원이든 요양소든 모시겠는데…. 억장이 무너지고 환장할 지경이다.
병원도 그렇다. 아내가 있을 땐 아내 차로 내가 운전하며 모시고 가려면 한사코 내 차로 가잔다. 말씀인즉 아내 차는 흔들리고 멀미가 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병원이 골목 안에 있어 주차를 할 수 없다. 주차를 하게 되면 다른 차량이 소통이 안 된다. 따라서 병원 문 앞에 내려드리고 20-30m 전방의 농협마당에 주차를 시킨다. 한 번은 아내에게 그러시더란다.‘저게 남의 자식이라..ㅉㅉㅉ.. 혀를 차며 차를 병원 앞에 안 댄다.’며 투덜거리시기에 아내가‘여기 차대면 다른 차가 못 다니는데…’라며 소리를 냅다 질렀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우리 마누라 최고!’라며 농담한 적도 있었지만, 또한 병원에 도착하면 의사선생의 진료를 받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화병이라고 자가진단을 의사선생님 앞에서 시작하고 수십 년 전의 가정사를 꺼내‘대가리에 똥 밖에 안든….’ 며느리며 자식욕을 일장연설처럼 하기 시작하면 시골병원 의사라 그런지 아니면 노인네들을 주로 다루는 의사라 그런지, 뒤에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도 많건만 웃기만 하고 그 하소연을 다 들어 주고 어떨 땐 30분 40분도 좋다. 그럴 땐 솔직히 의사선생님에게 죄스럽고 황송해서‘장모님 그만 하시죠!’라고 하면 그 의사선생은 오히려‘그냥 두세요. 이게 치룝니다’라고 하며 ‘울화병에 무슨 약이 필요하겠습니까?’란다.
이 모든 게 아내가 있을 땐 병원을 나와 차에서 기다리기라도 하지만 아내가 없으니 고스란히 내 몫이 된 것이다. 이런 날이 연속 되다 보니 의사선생이 뭐라는 게 아니라 중간에 간호사가 말리며 다른 병원으로 가 보시는 게 어떠냐고 퇴짜까지 맞는 것이다.(그래서 요즘은 이웃面 다른 병원으로 다니고 있고 그곳은 주차장이 있다)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진료를 받고 한 달 치 약을 타오면 삼사일 뒤엔 약이 듣지 않는다며 또 병원에 가자며 재촉을 하시는 거다. 돈 들여 타 온 약을 삼사일 먹고 버리기를 얼마이든가. 약이 듣지 않으면 큰 병원(제천 시내나 충주 대학병원)에 가자면‘아니야! 내 병 내가 알아!’라며 큰 병원은 죽어도 못 간단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장모님은 아파서 아픈 게 아니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아내와 주말부부가 된 후이다. 사나흘 도리로 병원에 가자고 조르면 아니 갈 수 없어 모시고 가지만, 때가 어느 때인가? 추수를 앞 둔 농사철(특히 고추수확)에 병원에 모시고 다녀오면 뜨거워 일을 할 수가 없다. 어떨 땐 이렇게 잡썰을 게시판에 올려놓고 먼동이 터기를 기다려 밭으로 가지만 마음이 바쁘기만 하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결국 그 날의 영농은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장모님은 자식이고 딸이고 사위고 그 누구에게도 배려가 없다. 평생을 당신 멋대로 사신 분이다. 그러는 사이 아주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BY SS8000 ON 9. 30, 201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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