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다. 딱 두 가지가 귀찮고 하기 싫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마냥 엉거주춤 내지 뻘줌하게... 거래처와 상담을 하기 위해 이동 중인데 아니면 애인과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가는 중인데 요란한 사이렌이라니? 그리고 뭣 빠지게 뛰어 지하철 입구나 대형 빌딩의 출입구를 포개듯 막아서는 행위. 그리고 매일 정확하게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치루어야 하는 의식. 빨리 가서 상담 끝내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퇴근을 해야 하는데 아니면 애인과 친구와 한 잔 빨 약속이 있는데....도대체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 같은 이따위 짓을 왜 하는 거야? 이놈의 나라는 너무 별나다니까. 그리고 뒤 꼭지로 뚜껑이 열리고 주둥이는 댓 발 기어 나왔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한 달에 한 번 벌이는 민방위훈련 그리고 매일 벌어지는 국기하강 식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귀찮은 존재였다. 그런 게 왜 필요한지도 의식하지 못했다. 특히 퇴근시간 쯤에 애국가와 함께 장엄한 내레이션의‘국기에 대한 맹세’가 울려 퍼지면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할지 그대로 가여 할지? 가자니 다른 사람들은 오른 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경건한 모습(행사)으로 애국적 행동을 하는데... 어쩔 수없이 엉거주춤 내지 뻘줌고 쑥스러운 자세로 태극기가 보이는 곳 아니면 있을만한 곳을 향해 서 있지 않으면 간첩이나 매국노가 될 것 같았던 분위기.
그런데 좀 더 나이가 들어보니 그것은 그냥 했던 게 아니다. 국민을 귀찮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그게 바로 애국심을 자극하는 요식행위였던 것이다. 그 요식행위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구심점(求心點)이었다는 것을 그런 제도(?)가 없어진 후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벌어지고 있는 천재(天災)에 가까운 모든 인재(人災)는 귀찮아도 국민(빨/갱/이 빼고)을 하나로 모은 그런 애국적 요식행위를 없앴기 때문에 벌어지는 심신해이의 산물인 것이다.
영화 속의 덕수씨는 서울대에 다니는 동생의 학비를 위해 나아가 가족들 삶의 터전인 가게‘꽃분이네’를 사수(?)하기 위해 전장 터인 베트남 노무자로 지원하며 아내와 갈등을 빚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부싸움을 벌이는 장소가 공공장소인 모처의 공원이다.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장남으로서만 존재하는 남편의 삶이 안타깝고 화가 난 덕수씨의 아내는 ‘이젠 당신의 삶을 살아 보라’며 절규하는 바로 그 순간 애국가와 국기의 맹세가 흘러나오자 덕수씨는 부부싸움을 멈추고 냉큼 일어나 예의를 갖추지만, 그의 아내는 나와 내 이웃이 그랬듯 뻘쭘한 자세를 취하다가 주위 노인 분들의 눈총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의식(儀式)대열에 합류 한다.
바로 이 장면이다. 朴대통령께서 발 빠르게 이 영화를 보고 온 후 어떤 국무회의석상에서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 보니까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는 것이다.
이 한마디 ‘듣보잡’과 ‘진중권 아류’를 비롯한 종북 빨/갱/이들의 염장을 지른 것이다. 난리도 아니었다. 종북 매체는 물론이고 빨/갱/이들이 대통령을 향해 가래침을 뱉고 돌팔매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오히려‘국제시장’을 진짜‘국제시장化’한 기폭제요 뇌관이 되고 만 것이다.
‘웰컴투동막골’,‘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변호인’등등.... 소위 천만관객을 동원했다며 자랑하던 진짜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영화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치부했기에 관심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듣보잡’과 ‘진중권 아류’를 비롯한 종북 빨/갱/이들의 악담과 패악스런 주둥이 놀림이 나로 하여 42년 만에 아내의 손을 잡고 극장으로 발길을 향하게 한 동기가 된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표현을 쓴다. 나라 안에 있을 땐 무심하던 것들.....국외에서 보는 태극기 나라밖에서 듣는 애국가에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두 눈이 촉촉해 짐을 느낀다고. 어떨 땐 진정한 애국자는 해외교포(노기남 또는 신은미 아류는 제외)분들이라고 얘기한다. 그분들의 글을 보면 확실히 국내에 있는 우리네 글보다 우국지정이 흘러넘침을 알 수 있다.
3부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독일탄광의 막장에서 죽음에 직면했다 살아난 덕수씨는 국기하강 식을 맞으며 애국을 하는데, 뼈 빠지게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답이나 소까지 팔아대며 보내 준 돈으로 독일까지 유학 다녀온 놈들은 대갈빡에 빨간 물 주사를 맞고 돌아와 제 조국의 국기와 국가를 폄훼하는 주둥이를 놀리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의 발언은 대통령 개인을 숭앙해 달라는 게 아니잖은가. 태극기. 애국가. 하강식 그것은 우리 국민을 결집 시킨 모태요 구심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꺼이꺼이 두 번째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